▲ <파리의 연인> 김정은과 박신양. 아래왼쪽은 <해바라기>의 김정은. <유리>의 박신양. | ||
‘전 국민의 연인’ 김정은이 SBS 특별기획 <파리의 연인> 제작진에게 7회 방송분을 찍을 때 간절히 호소한 말이다.
“너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해고야! 이제 더 이상 너를 곁에 두고 싶지 않아”라는 기주(박신양분)의 말에 충격을 받고 수영장으로 뛰어드는 장면에서 김정은은 자칫 뒤로 쓰러질 경우 머리를 다칠 위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뒤로 쓰러질 것을 고집했다. 게다가 물 속 바닥까지 몸이 가라앉기 위해 호주머니에 납덩이 5개를 가득 넣은 채….
김정은은 무명시절의 아픔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빡빡 깎은 머리로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던 MBC 메디컬 드라마 <해바라기(98년)>. 이 드라마를 통해 김정은이란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그녀는 처음부터 그 역할을 차지했던 게 아니었다. 당시 각광받던 신인 여배우 A의 배역이었지만, “빡빡머리는 절대 할 수 없다”는 A의 거부에 김정은한테 돌아간 것.
예나 지금이나 활발한 ‘에너자이저’를 자처하는 그녀도 당시 가족들한테는 머리 깎은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의 엄청난 변화를 꼭꼭 숨긴 채 촬영을 하다 뒤늦게 어머니한테 발각(?)되었는데 표현도 못하고 한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김정은은 이렇게 결심했단다. 반드시 성공하겠노라고!
“한번 더!”
역시 빡빡 깎은 머리로 데뷔한 박신양. 그는 난해하기로 소문난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를 영화한 <유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비견되는 33세의 청년 수도승을 열연한 적이 있었다. 꿰뚫어보는 듯한 강렬한 눈매로 강한 인상을 남긴 그가 모든 여성들의 꿈인 ‘달콤하고 듬직한 연인’으로 돌아왔다.
파리에서 도박으로 딴 돈다발을 수영장에 흩뿌리는 장면을 찍다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지 두 달도 채 안된 박신양이 얼마 전 극중 김정은을 사이에 놓고 이동건과 격한 몸싸움을 벌이는 아이스하키 장면을 찍었다. 아직 수술 후 통증이 제대로 가라앉지 않았고 여전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박신양은 그 장면을 촬영하며 여러 차례 ‘한번 더!’를 외쳤다고 한다. ‘재활군’인 박신양이 이토록 그 장면에 매달린 이유가 뭘까. 워낙 완벽주의자로 소문난 탓이기도 하지만 남자로서 그의 강한 자존심 때문이다.
영화 <편지> <약속>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박신양은 <인디안 썸머> <4인용 식탁>이 연이어 실패하자 ‘배우’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 방법을 모색하다가 <파리의 연인> 섭외가 들어온 것. 결과는 대만족! 만약 박신양이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 성공한 뒤에 출연섭외를 받았다면? 어쩌면 우린 박신양표 ‘한기주’를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욕을 많이 먹을수록 힘이 나요.”
기주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면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문윤아 역의 오주은. 그녀는 일찌감치 현실을 직시했다. 악녀 연기를 잘만 하면 송윤아(<미스터 Q>에서 김민종과 김희선 사이를 방해하는 악녀)나 박예진(<발리에서 생긴 일>에서의 악녀)처럼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변비 광고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오주은은, 지난 2003년 권상우, 명세빈과 함께 출연한 SBS <태양 속으로>에서 깜찍 발랄한 간호사역을 맡아 열연했지만 밋밋한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문윤아역을 인생 역전의 발판을 삼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좀 더 김정은을 괴롭히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말한다. 좀 더 표독스럽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거는 문윤아처럼 말이다.
한편 이미 세 가지 버전의 엔딩신을 파리에서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파리에 가서 찍을 수도 있다고 시사한 제작사 ‘캐슬 인 더 스카이’의 이찬규 대표에게도 <파리의 연인>은 남다른 작품이다. 드라마를 집필하는 김은숙-강은정 작가에게 ‘파리에서 촬영한 것을 의식하지 말고 대본을 새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는 그 역시 드라마 작가 출신. MBC <무동이네집> <걸어서 하늘까지> 등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프로덕션을 차린다고 해서 주변에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드디어 ‘사고’를 친 것이다. 대개의 군소 프로덕션이 그렇듯이 그도 약 7~8년은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 <파리의 연인>을 만나게 됐고 제작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돈은 생각 않고 또 일을 내겠다는 이 대표, 작가는 역시 영원한 작가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