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도 감지덕지 ‘그럴 때 있었지’
▲ 하지원(왼쪽)·김정은.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용준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 <외출>에 출연하면서 약 7억∼10억원을 받는 걸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데뷔작이라고 알려진 영화 <첫사랑 백서>에선 출연료다운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배용준은 새내기 스태프로 영화에 참여했다가 감독 눈에 들어 얼떨결에 카메라 앞에 선 것이라 스태프 월급 이외의 출연료는 지급받지 못했다.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 중 한 명인 송강호가 그의 본격적인 영화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초록물고기>에서 받은 개런티는 단돈 1백50만원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그 돈은 송강호한테 큰 액수였다. 두 달 연습, 한 달 공연에 50만원의 출연료를 받는 ‘연극쟁이’에겐 꽤 매력적인 액수였던 것. 그런데 이 영화의 성공 이후 그의 개런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공행진을 한다. <남극일기>에서는 ‘5억+α’를 받아 50만원대의 출연료를 받던 연극판 시절과 비교하면 거의 1백배의 상승을 기록한 것.
잇따른 흥행 실패로 기가 꺾였지만 여전히 개런티만큼은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는 한석규 역시 출발은 미미했다. KBS 성우 출신이었던 그는 MBC 공채 탤런트로 합격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했는데 1991년 <우리들의 천국>의 단역 출연이 첫 작품이었다. 그때 한석규가 받은 출연료는 1만원 안팎. 당시 그는 막 공채 탤런트에 합격해서 수습 기간중이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수습료에 해당되는 출연료를 받았던 것이다.
▲ 김선아(왼쪽), 배용준. | ||
하지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야말로 누구보다도 가장 잘나가는 여배우이지만, 데뷔하기까지 눈물겨운 무명시절을 보내야 했다. TV 화면에 얼굴을 내비치기 위해 수십, 수백번 오디션을 봐야 했고, 출연료 없이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출연만 시켜달라고 매달려야 했다. 그로 인해 그녀가 무보수로 출연한 뮤직 비디오와 단편 영화가 수두룩하다.
지금은 서로 캐스팅하지 못해 안달인 김선아와 김정은 역시 출발은 매끄럽지 못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힌 김선아는 원래 GOD 멤버였다. 피아노를 전공해서 가수가 되는 게 꿈이었던 김선아는 GOD가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 얼굴을 알리기 위해 지방공연을 다닐 때 함께 움직였다. 지금은 아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배우 김선아에게 가수이던 시절도 있었다.
김정은 역시 얼굴을 알리기 위해 각종 케이블 방송과 뮤직 비디오에 거의 무보수로 출연했는데, 최민수와 심은하가 주연한 <아찌 아빠>에서 최민수에게 취조받는 불량소녀 역으로 잠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지금 한창 영화와 CF계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장진영 역시 TV에선 빛을 못 본 케이스. 간호사로 출연한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선 단역에 해당하는 출연료를 받았다.
이처럼 억대를 호가하는 스타들에겐 누구나 힘든 무명시절이 있었다. 단숨에 스타로 등극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 출연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과 피 말리는 경쟁을 뚫고 나가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기자들은 방송국에서 정해놓은 등급제에 묶여 평생 제자리걸음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영화로 많은 연기자들이 진출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탤런트들 사이에서 영화에 출연해 대박을 터뜨린 다음, 보란듯이 드라마로 컴백하고 싶다는 바람은 차라리 간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