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축구 칼럼리스트, KS리서치 연구소장)
왕중왕전 진출팀들에 대한 정보와 함께 그 팀에 진학할 수 있을 지, 중학교 감독들을 비롯 가능한 인맥을 동원하여 진학을 타진하는 것이 주요한 관심사이다.
그 이유는 대학진학을 위해서 전국대회 8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왕중왕전에 진출하는 팀에 들어가야 한다는 인식이 선수와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성적이 좋은 상위권 고교팀에는 진학 지원자가 넘쳐나는 반면에 중.하위권 팀에는 진학기피 현상이 일어나 선수 수급에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지원자가 몰리는 상위권 팀에는 신입생 모집 시 체육특기자로 인정되는 인원 14명 외에도 중학교 졸업 축구선수들을 일반학생으로 둔갑시키는 편법까지 동원해서 선수들을 충원하고 있다. 그 수가 대부분 20명이 넘으며 어떤 팀은 30명을 넘는 경우도 있다.
축구부 전체 인원 30명을 채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학교가 있는 반면, 신입생만 30명이 넘는 학교가 있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교육 당국에서는 학년당 선수 인원을 경기정원의 130% 이내로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축구의 경우 경기정원(11명)의 130%인 14명까지 체육특기자로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고 경쟁을 통해 3분의 2의 선수를 낙오시키는 일부 명문 고등학교 축구부의 행태는 한국 청소년 축구의 암울한 현실이기도 하다. 낙오된 3분의 2의 선수, 이는 과반이상의 수임에도 아무런 장치 없이 현실에 버려지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무책임한 처사는 반교육적인 처사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입시제도로부터 연유한다. 그 동안 개인 기량이 좋은 선수들 위주로 체육 특기생을 선발했지만 2014년도 대학입시부터는 각 대학이 전국대회 입상 실적과 청소년 대표 선수 경력, 면접 등을 종합 판단하여 체육특기자를 선발, 이에 따라 팀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이 체육특기생 입학 자격에 전국대회 8강 이내 라는 조건을 달면서 고교 지도자 및 선수, 학부모들에게 성적에 대한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교팀들의 경우 1년에 방학 중 열리는 두 번의 전국대회(동계. 하계 각 1회)에만 참여할 수 있는데,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8강에 들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근래에 고등부 팀들의 경기를 보면 상대팀의 실력이 조금만 좋아도 대놓고 수비만하다 역습 기회만 노리며 공격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전술이 일정 정도 통하고 있어서 이기기 위해 학부모들이 오히려 감독에게 권유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이기는 법을 가르치는 감독이 유능한 감독이고, 대학을 잘 보내는 감독이 훌륭한 감독으로 치부되는 것이 지금에 한국학원 축구판의 현실이다.
‘승리하는 법을 가르치기 전에 어떻게 축구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슈틸리케 국가대표팀 감독의 쓴 소리를 명심하고, 성적에만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축구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 할 것이다.
기량이 좋은 선수가 입상 실적이 없어 축구계를 떠나고 입상 실적만으로 선발된 선수는 기량이 없어 도태되는 상황이 속출된다면 향후 몇 년 내에 한국축구의 진짜 위기가 찾아 올 것이다.
어떻게 축구를 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닌 이기기만을 위한 축구를 가르치는 것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컨닝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현행 입시제도의 대폭적인 개선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일선 학교 체육지도자들은 체육특기자 진학이 불가능해진 학생 선수들에게도 학생 선수가 아닌 일반 학생으로서 체대 진학 방법을 모색, 가능하게 해 주는 등 진학 지도를 적극적으로 해서 이들의 잠재적 능력이 사장되지 않도록 올바른 지도가 필요하다.
한국축구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피땀 흘린 선수들의 열정과 물심양면으로 뒷바리지 해온 부모들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선수들의 노력과 부모들의 헌신이 제로섬 경쟁이 아닌 포지티브섬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축구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한국축구의 탄탄한 저변 확대를 위한 최우선의 과제이기도 하다.
김정훈(축구 칼럼리스트, KS리서치 연구소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