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벽력 통보에도 날 믿고 의사를 믿었다”
한국과 세계보건기구(WHO) 메르스 합동평가단이 지난 13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서 평가단 활동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보건복지부
지난 5월 중순 경기도 평택시 신장동에 위치한 오산 미공군기지(K-55). 그곳 연병장에선 부대원들끼리 축구 시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군대에서 축구는 가장 인기 있고 흔한 운동이다. 또 ‘전투 축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른 어떤 축구보다 군대 축구가 격렬하기도 하다. 의욕이 앞서 부상자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날 시합에서도 사고가 발생했다. 김 아무개 원사가 넘어져 다리를 크게 다친 것.
김 원사는 응급처치 후 근방에서 제일 큰 병원인 평택성모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는 아킬레스건 파열로 인한 발목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5월 14일부터 해당 병원 7층에 있는 7병동에서 입원에 들어간 뒤 5월 27일까지 2주간 입원치료를 받았다. 이 때문에 김 원사는 부대에 장기 병가를 신청하고 발목 치료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메르스’라는 병명 자체를 알지 못하던 때였다.
5월 20일 질병관리본부의 발표로 메르스 첫 확진자(1번 환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김 원사는 그 환자가 자신과 같은 병원 환자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는 27일 발목 수술 부위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퇴원 수속을 마치고 목발에 의지한 채 집으로 향했다.
며칠 뒤 김 원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퇴원 뒤 위로휴가를 받아 쉬고 있던 때였다. 평택보건소였다. ‘메르스 환자와 같은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격리가 필요하다’는 게 통화의 요지. 앞서 언급했듯 평택성모병원은 1번 환자가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치료를 받았던 곳. 김 원사는 보건소의 역학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청천벽력 같았다. ‘많고 많은 병원 중에 왜 하필 그곳에서’란 생각도 들 만했다.
김 원사는 일단 부대로 연락해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사실상 가택격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일종의 안도감마저 들었다. 군이 바빠졌다. 군내 첫 메르스 의심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공군은 김 원사를 경기 성남의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김 원사를 혼자 국군수도병원으로 이동하게 할 수 없었던 공군은 응급차를 지원했다.
지난 2일 운전병 1명과, 인솔자 1명이 김 원사와 함께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 공군은 이들에게 당시 보건당국의 지침대로 마스크를 씌우고 소독 조치를 했지만 메르스 의심 환자와 밀접접촉을 했기 때문에 사실상 격리는 예정돼 있었다. 군은 이들 2명은 물론 평택성모병원으로 김 원사를 면회 갔던 6명까지 총 8명을 국군 대전통합병원으로 보내 격리했다. 이와 동시에 군은 김 원사를 병문안했던 6명과 접촉한 간부 41명에게 자가 격리를, 병사 27명에게는 생활관 격리 조치를 내렸다.
국군수도병원은 지난 3일 김 원사에게 메르스 1차 양성 판정을 내리고 그의 검체를 4일 질병관리본부로 보냈다. 최종 확진 판정을 의뢰하기 위해서였다. 이 무렵 김 원사에게 미열이 났고, 어깨와 팔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과 뻐근함이 전해오기 시작했다. 기침은 없었다. 잠을 못 잘 정도의 심한 통증이 동반되지는 않았다. 군인으로서 평소에 체력관리를 꾸준히 한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여지없이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일 김 원사에게 ‘37번’이라는 번호를 부여했다. 메르스 확진이었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는 37번 환자를 1, 9, 11, 12, 14번 환자와 동일 의료기관 환자라고 밝혔다.
1번 환자가 평택성모병원에 머물렀지만 김 원사의 입원 병동 위층인 8층(8병동)에서 치료를 받았고, 첫 증상 발현일이 1번 환자가 병원에 있던 기간인 5월 15~17일에서 잠복기 범위를 벗어난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김 원사는 1번 환자의 2차 감염자가 아닌 병원 내 3차 감염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김 원사는 확진 이후 음압병실로 옮겨 본격 치료를 받았다. 음압병실은 내·외부 기압차를 이용해 내부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설계된 특수병실이다. 이곳에서 방역복을 착용한 의료진들은 매일 수시로 김 원사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또한 대증치료법도 시행됐다. ‘대증치료’란 열이 나면 해열제, 근육통이 생기면 진통제를 주면서 몸에서 바이러스가 없어지기를 기다리며 스스로의 면역력으로 바이러스를 이겨내도록 돕는 보조 치료법이다.
‘다른 환자들보다 증세가 경미하다’는 의료진들의 다행스러운 소견에 김 원사는 더욱 힘을 얻었다. 병실에 마냥 누워 있기보다는 책을 읽고 가능한 운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군인이다 보니 평상시 습관처럼 된 체력 단련이었다.
“국군수도병원에서 시행한 대증치료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의료진을 믿고 완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체력관리를 꾸준히 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의료진을 믿고 나 자신을 믿는다’는, 최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치료에 임했다.”
그의 말처럼 ‘긍정의 힘’으로 점차 완치라는 고지를 향해 속도를 높이던 김 원사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은 자신으로 인한 격리자들이었다. 그는 “그저 미안하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나오고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공군본부 관계자는 “김 원사 면회 인원 6명, 후송 인원 2명, 총 8명의 직접 접촉자들이 최종 음성 판정을 받음에 따라, 자동으로 6명과 접촉했던 간접 접촉자 70여 명에 대한 격리도 해제됐다”고 밝혔다.
김 원사는 국군수도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은 지 8일 만인 지난 11일 완치돼 퇴원했다. 그는 “의료진과 가족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완치될 수 있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고 완치 소감을 밝혔다.
완치의 기쁨도 잠시, 김 원사는 퇴원 직후인 지난 12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메르스 환자들에게 제공할 혈장을 추출하기 위해서였다. 항체가 형성된 김 원사의 혈장을 환자에게 주입해 바이러스로부터 저항력을 갖도록 할 목적이었다. 완치됐다고는 해도 이 병원은 메르스 환자가 입원해 있는 곳.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평소 군인으로서 영공 방위 임무 완수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완치를 계기로 다른 방법으로도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릴 수 있게 됐다. 특히 위중한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도 혈장 제공을) 계속할 것이다.”
혈장 주입은 뚜렷한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질병에 사용되는 전통적 치료법이며 과거 에볼라 등 다른 전염병 치료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둔 치료법으로 통한다. 2시간여에 걸쳐 채혈된 김 원사의 400㏄ 용량의 혈장은 다른 메르스 환자에게 주입됐다.
김 원사는 퇴원 이후 충북 청주로 내려갔다.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안정을 취하기 위해서다. 공군본부 관계자는 “항공우주의료원에서 2~3주 안정을 취한 후에 현업으로 복귀할 예정이다”며 “의학적 치료가 더 필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군대다보니까 혹시나 있을지 모를 영향에 대비해 추가 관찰이 필요했고, 본인도 갑자기 현업으로 복귀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조치해 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원사는 “완치 이후 심리적 안정을 되찾았고, 현재는 업무 복귀를 준비 중이다. 다리 부상도 아무 문제없이 회복 중이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