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AV여신을 ‘청순미 스타’로 홍보
“그 즈음 에로비디오는 한 번에 심의가 나오는 일이 절대 없었다. 심의에 들어가면 어느 어느 장면이 안 된다며 심의가 반려됐고 지적받은 장면을 다시 편집해서 넣으면 다시 다른 부분이 문제가 돼 또 반려가 됐다. 그렇게 최소 서너 차례는 심의를 넣어야 겨우 심의가 나왔다.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이 관계자는 2001년 초 에로비디오 업계가 사실상 문을 닫은 계기 역시 심의였다고 설명했다.
“에로비디오의 경우 수년을 거쳐 심의 기준이 조금씩 관대해졌다. 그래서 스쳐지나가는 장면에선 살짝 헤어누드도 허용되는 수준까지 갔다가 갑자기 대대적인 단속을 한다. 그럼 다시 심의 기준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2001년 초 대대적인 단속으로 에로비디오 제작사 여러 곳이 문을 닫았고 당시 에로 업계 인력의 상당수가 비교적 심의에서 자유로운 인터넷 성인방송 시장으로 흘러갔고 거기도 심의가 심해지면서 아예 해외로 나가 불법 인터넷 성인방송을 제작한 이들도 있다. 그렇게 에로비디오의 시대가 끝나고 기나긴 불황이 시작된 것이다.”
부가판권 시장을 기반으로 에로 업계가 조금씩 부활의 기지개를 펼치고 있지만 지금 업계가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에로영화가 아닌 독립 영화로 포장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심의는 이제 그리 두려운 대상이 아니다. 사실상 사전 심의가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후 심의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을 조심해야 한다. 자칫 에로영화 가운데 아청법에서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음란물’로 규정되는 작품이 나올 경우 엄청난 후폭풍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직 에로영화 제작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아청법이 합헌 판정을 받아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데 그게 참 모호하다. 이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래도 문제가 된 <은교>를 비롯한 극장 개봉 영화들은 그런 모호함을 잘 극복하는 데 에로영화라면 바로 문제가 될 것이다. 과거 심의가 문제이던 시절과 똑같다. 그때도 극장 개봉 영화는 작품성이 있기 때문에 괜찮고 에로비디오는 안된다는 게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논리였는데 아청법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그런 위험이 있는 영화는 아예 만들지 않으려 하고 있는데 혹시 몰라 독립영화로 포장하려 하는 것이다. 아무리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 장면이 들어가도 독립 영화는 작품성이 있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반면 에로영화는 조금만 야해도 손가락질을 받고 기대만큼 야하지 않다고 여기는 이들은 불법 포르노를 찾는다. 에로 업계가 힘든 까닭이다.”
오히려 자체 제작보다 수입에 더 치중하는 업체들도 있다. 특히 일본이 주무대다. AV(Adult Video)의 천국인 일본에는 수많은 에로영화들이 존재한다. 일본 에로비디오를 저렴한 가격에 수입해온 뒤 그럴싸하게 포장해 하루, 아니 단 한 회라도 극장에서 개봉한 뒤 일본 에로비디오가 아닌 극장 개봉용 일본 영화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들여온 일본 AV가 부가판권 시장에서 꽤 괜찮은 반응을 얻어내기도 했다. 에로영화 제작사 관계자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어차피 에로영화가 대중을 만나는 공간은 극장이 아닌 TV(VOD 서비스)나 컴퓨터(다운로드 서비스)다. 극장은 홍보 마케팅의 수단일 뿐이다. 국내에서 제작한 에로영화는 대부분 성인물로 따로 장르가 돼 있어 오히려 대중의 접근이 차단된 느낌이 있다. 달리 일본 에로비디오를 수입해 일본 영화로 포장하면 일반 영화 섹션으로 구분돼 대중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간혹 국내에서 에로영화를 제작하는 것보다 수입 비용이 더 드는 일본 에로비디오도 있지만 수입이 더 많기 때문에 그쪽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이제는 에로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흥행이 가능하다.”
이런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공급되기도 한다. 일본의 AV 배우가 출연한 영화인데 마치 그가 일본 연예계에서 각광받는 청순미의 스타인 양 홍보가 되기도 하며, 노출이 거의 없던 일본 여배우의 파격 노출이 실린 영화로 홍보가 됐지만 알고 보니 그 여배우 역시 수많은 AV에 출연한 일본 에로배우인 경우가 종종 있는 것. 해당 영화에 대한 정보가 국내 인터넷으론 확인이 어려운 까닭에 블로그 등을 통해 이런 잘못된 정보를 일부러 흘리면서 온라인에서 화제몰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