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모유 논쟁의 핵심은?
지난 3월 방송된 EBS 환경 다큐 <하나뿐인 지구>의 ‘모유 잔혹사’가 엄마들 사이에 여전히 이슈다. 모유수유 중인 엄마 5명의 라이프 패턴을 취재하고 그들의 모유를 채취, 전문기관에 분석을 의뢰했다. 이들 모두 아이에게 보다 나은 모유를 주고자 커피도 끊고 음식도 가려 먹으며 애쓰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엄마들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유에서 예측하지 못한 물질이 검출되었다. 카페인, 니코틴, 알코올이 아닌 ‘환경호르몬’이 나온 것. 모유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은 뇌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진 비스페놀A, 카드뮴, 수은 등 중금속이었다. 모유 분석을 받은 엄마들은 물론 방송을 보던 엄마들도 충격에 빠졌다.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패닉에 빠진 엄마들의 한탄이 쏟아졌다.
‘밤낮으로 고생하며 수유 했는데 앞으로 무얼 먹이라는 것이냐?’, ‘분유가 더 좋다는 건가?’, ‘대안 없는 방송이 무슨 의미냐’는 항의 글은 물론 ‘분유사 협찬으로 방송이 제작되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돌았다. 환경의 의미를 되짚어보자는 기획 의도와는 별개로 모유수유로 고생하던 엄마들은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아기를 위한 첫 음식으로 모유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기본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 각국 엄마들의 모유에서 환경유해물질이 검출되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다수의 엄마들에게 불안감과 죄책감을 안겨줘 죄송하다‘는 제작진의 해명이 이어졌다.
사실 모유 속의 환경호르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모유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다는 것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여러 논문과 보고를 통해 알려져 왔던 사실이다. 화장품, 각종 캔, 육가공 식품, 코팅 프라이팬…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너무나 많은 환경호르몬에 노출되어 있기에 이를 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당연히 모유에도 환경유해물질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특히 여성의 가슴은 지방이 밀집된 신체 부위인데, 지방은 환경유해물질과 친하기 때문에 유독 가슴에 환경유해물질이 축적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모유 속에 유해물질이 미량 포함되어 있을지라도 모유의 우수성이 뛰어나고 모유수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훨씬 많기 때문에 24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모유수유 전문가들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마더세이프상담센터의 한정열 센터장 역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환경호르몬은 모유수유 하는 엄마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임신부를 검사하면 수치가 안 나올까요?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몇 해 전 식약처와 함께 인체 내 PBDEs(환경호르몬)의 수치를 조사했어요. 엄마의 혈액에서도 나오고, 탯줄에서도 나오고, 물론 모유에서도 나왔죠. 환경호르몬은 모유수유 아기보다 오히려 뱃속에서 기관을 형성하고 있는 태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에요. 물론 모유 안에도 환경호르몬이 있어요. 하지만 모유는 영양학적으로나 면역학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완벽하지요. 무엇보다 엄마와 아이의 애착 형성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단편적으로만 생각할 수 없는 문제예요. 지구가 깨끗해진 다음에 임신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렇듯 모유 속의 환경호르몬 문제는 21세기 인류가 처한 딜레마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 식품을 먹고, 친환경 자재로 지은 집에 살고, 24시간 공기청정기를 사용한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병들고 피폐해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리는 ‘지구’라는 커다란 자궁 안에서 지구가 주는 모든 것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는 태아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구의 생태계 문제는 결국 내 문제, 우리 가족의 문제, 그리고 앞으로 이 땅에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문제로 귀결된다.
Conclusion 모유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생물 농축’이라는 개념이 있다. 환경 유해물질이 생물체 내로 유입된 후 분해되지 않고 남아 있다가 먹이사슬을 통해 위로 전달되면서 점점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이다. 그런데 결국 먹이사슬의 최상위는 인간이고 아이는 최상위에 위치한 엄마로부터 젖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건강한 모유를 먹이고 싶다면 엄마가 먹는 모든 음식이 깨끗해야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환경 역시 깨끗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모유가 아닌 분유를 먹이면 될까? 단순히 ‘화학물질’이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분유가 덜 오염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젖소보다 사람의 먹이사슬이 더 높고 성장주기 또한 길기 때문이다. 모유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먹거리이기 때문에 먹이사슬의 상단에 위치하고 있어 다른 식품에 비해 POPs의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POPs(Persistent Organic Pollutants)는 먹이사슬을 통해 동식물 안에 축적되어 면역체계를 교란시키고 중추신경계 손상을 초래하는 유해물질로 우리말로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이라 불린다. 단, POPs에 대한 노출을 원천적으로 피하는 것은 어려우니 인체에 존재하는 POPs의 원활한 배출을 위해 노력하며 보다 건강한 모유를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Solution 7 건강한 모유를 먹이기 위한 현실적인 조언
피할 수 없다면 배출이 답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일상생활 속에서 내분비 교란물질로 알려진 환경호르몬, 화학물질을 최대한 멀리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선이다. 프탈레이트가 함유된 화장품과 샴푸는 자제하고 비닐과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식품, 캔 음료와 통조림 식품을 자제하자. 하지만 산골짜기로 들어가 자급자족하지 않는 이상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롭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플라스틱 장난감, 인조가죽, 바닥재 등 생활 속에서 접하게 되는 환경호르몬 물질은 부지기수다. 가능한 피하는 것이 좋지만, 지나치게 여기에만 몰두하면 삶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경북대학교 예방의학과 이덕희 교수는 이미 상당량의 POPs 물질이 인체 내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POPs를 배출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1. 모유수유 기간 동안 다이어트는 생각도 하지 말자
현대인에게 있어 지방은 몸매를 망가뜨리고 건강을 위협하는 원흉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10년 학계에서는 지방조직의 존재 이유를 ‘화학물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인체 내에 POPs가 들어오더라도 우리 인체는 이 물질을 아주 서서히 배출시킬 수 있는 능력밖에 지니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POPs 물질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배출되기 전까지 어딘가 머무를 곳이 필요한데 그나마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지방조직이다. 인체로 들어온 POPs는 일단 지방층에 축적되어 있다가 지속적으로 혈중으로 흘러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방조직이 다른 주요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최근 저농도 화학물질에 노출될 경우 비만이 야기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데, 이 또한 생명체가 가진 일종의 ‘적응 반응’이라 판단할 수 있다. 한마디로 화학물질의 저장 장소를 인체가 미리 알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갑작스레 지방조직의 양이 줄어들면 그나마 그 안에 안전하게 자리 잡고 있던 POPs가 혈중으로 흘러나오고 인체의 주요 장기로 전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모유수유 기간 동안 다이어트는 절대 금해야 한다. 출산 후에도 애 하나는 남아 있는 것 같은 뱃살을 보면 언제쯤 원래 몸매로 되돌아갈까 싶어 한숨이 나온다. 연예인들은 어쩜 그리도 출산하자마자 아가씨 몸매를 되찾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하지만 출산 직후의 급격한 다이어트는 모유 속 환경호르몬 수치를 높일 뿐이다. 지방조직에서 흘러나온 화학물질이 모유에도 녹아들게 된다. 특히 임신 때 주의하지 않고 살을 찌우다 출산 후 급격하게 살을 빼는 것이 가장 나쁘다. 임신 기간 중 갑자기 살이 찌면 외부에서 들어온 화학물질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지방조직에 축적되기 때문에 출산 후 급격한 다이어트는 더욱 치명적이다. 임신 기간에 10~12kg 이상 체중이 증가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2. 수유 기간 동안 양질의 식사도 필수다
적극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지 않더라도 수유 기간 동안 양질의 식사를 하지 않으면 저절로 살이 빠지게 된다. 임신 기간만 하더라도 ‘내가 먹은 영양분이 다 아이에게 간다’라는 생각으로 식단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일단 출산을 하고 나면 아이와 분리되었다는 생각에 식사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유 기간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임신 때보다 더 잘 챙겨 먹어야 한다.
3. ‘영양소’와 ‘흡수율’만 따지는 건 이제 그만!
이제껏 식단을 짤 때 ‘이 음식에 어떤 영양소가 얼마나 들어 있나’, ‘소화 흡수율은 좋은가’를 고민하며 전통적인 방식의 영양학적 접근을 했다면, 21세기에는 환경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 더 이상 영양소, 소화·흡수율만 가지고 식품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 음식이 먹이사슬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이 음식이 과연 체내에 존재하는 화학물질 배출에 도움이 되는지’까지 따져야 한다. 지금 엄마들이 먹고 있는 음식 역시 먹이사슬의 어디엔가 위치하고 있기에 환경호르몬 축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참치에는 두뇌 발달에 좋은 DHA가 다량 함유되어 있지만 덩치 큰 생선이라 수은 등 독소의 함유량이 높을 수밖에 없으니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다. 보통 생선 기름은 건강에 좋은 불포화지방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먹이사슬에서 높이 위치해 있으므로 임신 중이라면 들기름 같은 식물성 기름을 섭취하길 권한다. 들기름은 생으로 먹을 수 있어 조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생선 기름보다 영양적인 측면에서도 낫다. 이렇듯 좋은 모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엄마가 얼마나 양질의 음식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4. 현미밥과 컬러 채소가 인체 내 POPs를 배출시킨다
임신 전부터 실천하면 더 좋겠지만 힘들다면 최소한 임신 기간과 수유 기간만큼은 현미밥을 먹고 빨주노초파남보 컬러 채소를 껍질째 많이 먹도록 하자. 현미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와 컬러 채소에 함유된 피토케미컬이 엄마 몸속에 축적된 다양한 화학물질을 배출시키는 효과가 있다. 엄마 몸에서 배출되는 유해물질이 증가하면 덩달아 모유도 깨끗해질 가능성이 높으며 우리 인체 내 여러 가지 생리적인 기능을 향상시켜 화학물질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상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도처에 존재할 수 있는 환경호르몬을 제거하고 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주식을 현미밥으로 바꾸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5. 칼슘 섭취에도 신경 쓴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되도록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다양한 영양소와 미량원소가 풍부한 자연 식품 위주로 식단을 꾸리자. 이러한 식단은 강력한 지용성 성분인 POPs뿐만 아니라 납 등의 중금속 노출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특히 임신기·수유기 동안은 칼슘 섭취에도 신경 써야 한다. 임신기와 수유기에 접어들면 뼈 속에 축적되어 있던 납 같은 중금속이 혈중으로 빠져나오고 이로 인해 모유 속의 중금속 농도도 높아진다. 하지만 임신과 수유 기간 동안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면 어느 정도 예방이 가능하다.
6. 내장 부위는 되도록 피한다
동물성 식품을 먹을 때는 되도록 기름 없는 부위를 택하고 내장은 피하는 것이 좋다. 조리법에도 신경 써보자. 조금 번거롭더라도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 요리하고, 튀기거나 볶는 것보다는 찌고 삶는 조리법을 택하자.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보다 건강한 조리법인 동시에 동물의 지방 안에 축적돼 있는 화학물질을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7. 꾸준한 운동으로 화학물질을 배출시키자
운동은 인체의 에너지 수준을 높이고 숙면을 돕는다. 체중을 유지하고, 혈당을 낮추며, 만성질환을 막고, 면역계를 개선시킨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효과가 또 있다. 운동은 인체의 해독 과정에 필수적이다. 약간의 속도감 있는 워킹은 체내 화학물질 배출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다이어트나 몸매 교정을 고려한 운동이 아니라, 햇빛 아래서 가볍게 걷는 운동을 즐겨보자. 출산 후 외출이 여의치 않다면 집에서 잠시 짬을 내서 하는 스트레칭이나 요가도 도움이 된다.
피토케미컬이 뭔가요?
‘피토케미컬’은 식물을 뜻하는 영어 피토(phyto)와 화학을 뜻하는 케미컬(chemical)의 합성어로 식물 속에 포함된 모든 종류의 화학물질을 일컫는다. 각종 미생물과 해충으로부터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화학물질이 인체 내로 들어가면 항산화물질이나 세포 손상을 억제해 건강을 유지시킨다. 화려하고 짙은 색깔의 채소나 과일에 피토케미컬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데 색상별로는 붉은색·주황색·노란색·보라색·녹색 채소에 풍부하다. 이밖에 흰색을 띠는 마늘과 버섯, 검은색을 띠는 콩과 곡물에도 피토케미컬이 들어 있다. 현미에 함유된 식이섬유 역시 POPs를 대량 흡착해 배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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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박시전 기자 / 사진 이주현 / 모델 문지성(2세) / 도움말 한정열(한국마더세이프전문상담센터장), 이덕희(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 / 일러스트 경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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