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차량 도왔더니 일확천금 ‘뚝’ 믿거나 말거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고속도로에서 차량 고장으로 낯선 이의 도움을 받고 빚을 대신 갚아 줬다는 미담이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다.
차를 몰고 미시간의 어느 고속도로를 달리던 한 남자는, 길가에 리무진 한 대가 고장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가가 보니 운전사와 탑승자들의 휴대전화가 모두 고장이 나, 서비스 센터에 연락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빌려주었고, 차에 타고 있던 한 부부는 고맙다며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남자는 전화 한 번 빌려 준 게 뭐 대단한 거냐며, 굳이 사례를 하고 싶다면 아내에게 꽃 선물을 하고 싶다며 주소를 적어 주었다. 한 달 후, 그의 집엔 커다란 꽃바구니가 배달되었고, 카드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의 은행 대출금을 모두 갚아 드렸습니다.” 발신인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자 현재 공화당의 대선 후보 중 한 명인, 미국을 대표하는 부자 중 한 명이다.
트럼프에 얽힌 다른 버전도 있다. 이번엔 좀 더 구체적이다. 1995년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도널드는 아내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뉴저지의 어느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때 타이어에 펑크가 났고, 운전사는 바퀴를 갈기 위해 애를 썼지만 쉽게 일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한 남자가 섰고, 능숙하게 타이어를 갈아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앞의 이야기와 똑같다. 도널드 트럼프는 사례를 하겠다고 했고 그 남자는 아내에게 꽃다발이나 보내달라고 했으며 그 남자는 꽃다발과 함께 은행 빚 변제라는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이 타이어도 못 가는 무능한 운전사를 고용할 리 없다. 차가 고장 났을 때 운전사와 트럼프 부부의 휴대전화가 모두 고장 난 상태였다는 것도 지나친 우연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미담으로 미국인들 사이에 떠돌았고, 급기야 트럼프가 TV 쇼에 출연했을 때 MC는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묻게 된다. 이때 트럼프는 멋쩍게 웃으며 사실이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뉴욕의 부시장이었던 얼레어 타운센드 같은 사람은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아주 거짓말쟁이였던 건 아니다. 1991년, 트럼프의 어머니는 노상강도를 당한다. 79세의 노파는 뼈가 부러지고 얼굴에 멍이 들었는데, 트럭을 몰고 가던 한 남자는 그 광경을 목격하고 재빨리 차에서 내려 강도를 제압해 경찰서로 넘기고 트럼프의 어머니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 강도는 3년 9월 형을 받았고, 트럼프는 트럭 운전사의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더 좋은 직장을 주었고, 백지수표를 건넸다. 이건 모두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가 길에서 도움을 받은 사람의 은행 빚을 갚아주었다는 이야기는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는 꽤 긴 세월 동안 회자되었다. 1940년대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미담의 주인공이었다. 패턴은 똑같았다. 길에서 차가 고장 나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누군가 와서 친절한 도움을 주며, 이에 돈 많은 차 주인은 엄청난 사례를 한다. 1960년대엔 유명한 가수였던 냇 킹 콜의 아내가 그 주인공이었다. 냇 킹 콜은 1965년 2월 15일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아내는 임종을 지키기 위해 가던 중 차가 고장 난다. 폭우마저 내리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병원으로 가기 위해 차 밖으로 나와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이때 어느 젊은이가 멈추었고, 자신의 목적지를 포기하고 아예 병원까지 그녀를 데려다 주었다. 이후 그 청년의 집엔 대형 컬러 TV와 스테레오 오디오 시스템이 배달되었다. 물론 이 이야기도 ‘뻥’이다. 냇 킹 콜의 아내인 마리아는 남편이 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던 기간 동안 항상 남편 곁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팝 가수 페리 코모의 아내도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길에서 도움을 받은 후에 새 차를 선물했다는 것. 혹은 남편 콘서트 티켓을 주었다는 얘기도 있었고, 컬러 TV를 선물했다는 얘기도 돌았다.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로 유명했던 복서 레온 스핑크스의 아내는 경기 표를 보내주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렇다면 왜 자꾸 이런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반복되어 사람들 사이에 전설처럼 도는 걸까? 어쩌면 미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본성이, 셀러브리티의 선행이라는 사건과 결합되어,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각색되어 회자된 것일지도 모른다.
빌 게이츠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