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원 재산 자랑…까보니 ‘뻥튀기’ 냄새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69)가 연일 화제다. 각종 막말을 퍼부으면서 연일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는가 하면, 자신이 부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부를 과시하는 모습 또한 세간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관심은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지지율로 이어졌다. 그동안 유력한 잠룡으로 여겨졌던 젭 부시를 제치고 당당히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 1순위로 올라선 것. 사실 트럼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치인’보다는 ‘부자’라는 이미지다. 트럼프가 연일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 역시 그가 어마어마한 부자이기 때문인 것이 사실이다. 공공연히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으로 유명한 트럼프지만 지금까지 그의 재산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최근 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D)에 제출된 그의 자산 내역이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생각보다 부자가 아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과연 트럼프가 그가 주장하는 것만큼 부자인가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미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순자산이 10조 원이라고 과시해 세간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AP/연합뉴스
“나는 그 누구의 돈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돈으로 출마합니다. 로비스트도 고용하지 않을 겁니다. 기부금도 받지 않겠습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나는 엄청난 부자니까요.”
지난 6월 16일, 트럼프는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45분 동안 ‘부자’ ‘돈’ ‘순자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횟수는 무려 30회였다. 재차 자신이 부자라는 점을 강조했던 트럼프는 자신의 순자산이 87억 375만 4000달러(약 10조 원)라고 또박또박 강조하듯이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구찌 스토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빌딩, 펜트하우스 아파트, 골프 코스, 호텔 등을 보유한 부동산 재벌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야말로 그의 대선 출마 자리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부를 과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을 건 ‘마케팅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출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실제 그는 1987년부터 지난 30년간 대선 때만 되면 늘 ‘출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발을 빼곤 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꽁무니를 뺐던 이유가 출마하게 될 경우 자산이 공개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그가 떠들었던 것처럼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 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듯하다. 이번만큼은 진심인 듯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92쪽 분량의 자산 내역을 제출하면서 당당히 재산을 공개한 것. 공개된 자산 내역을 보면 그는 다른 후보들을 압도할 만큼 엄청난 부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총 100억 달러(약 11조 6000억 원)를 신고했으며, 이는 역대 미 대선 출마 후보 가운데 최고액이다.
공개된 자산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 벌어들인 액수는 4억 5600만~5억 4300만 달러(약 5400억~6300억 원)며, 수입원은 168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트럼프는 뉴욕, 두바이, 브라질 등 전 세계 515개 회사의 회장, 사장,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트럼프’라는 이름을 건 회사는 391개며, 91%는 자신이 직접 소유하고 있다.
부동산 재벌인 만큼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 가치도 어마어마하다. 뉴욕, 시카고, 플로리다 등에 23개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맨해튼에 위치한 트럼프 타워의 가치는 4억 9000만 달러(약 5700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부동산 업체인 ‘버나도 리얼리티 트러스트’가 소유한 두 개의 오피스 빌딩의 지분 가운데 30%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 두 빌딩의 시가는 총 6억 4000만 달러(약 7500억 원)다. 또한 그가 보유하고 있는 골프 코스와 리조트의 가치는 주가매출액비율을 토대로 살펴보면 총 5억 7000만 달러(약 6700억 원)다.
강연료로 벌어들이는 돈 또한 막대하다. 지난해 일곱 차례 연설을 했던 트럼프는 총 175만 달러(약 20억 원)를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회당 25만 달러(약 3억 원)를 받은 셈이다. 그런가 하면 지금까지 출간한 열네 권의 책의 로열티로 총 5만~10만 달러(약 5800만~1억 원)를 받았다. 가장 높은 로열티를 받았던 책은 2001년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을 때 출간한 <강해져야 할 때>다. 미영화배우조합으로부터 받은 총 11만 228달러(약 1억 3000만 원)의 연금도 신고됐다. 트럼프는 시즌 13까지 장수한 NBC 방송의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한 바 있으며, <쥬렌더>, <나홀로 집에 2>, 미드 <섹스 앤 더 시티> <제퍼슨> 등에도 간간히 출연했다. 총 7000만 달러(약 800억 원) 상당의 주식도 보유하고 있는 트럼프는 AT&T, 월마트, 제너럴 일렉트릭, 버라이즌, 모건스탠리 등의 우량주와 벤처기업의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자산 내역 가운데 눈에 띄는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로열티’ 부분이 그랬다.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로열티’ 즉 ‘이름값’에 대해 트럼프는 스스로 높은 가치를 매겼다. 그는 호텔, 주거용 빌딩, 보드카, 에너지 드링크 등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최소 95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벌었다고 신고했다. 이와 관련, 미 인터넷뉴스사이트인 <데일리비스트>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트럼프는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팔아서 돈을 벌었다. 특히 자기 자신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라고 말했다. 가령 생수(트럼프 아이스)를 팔아서 28만 185달러(약 3억 원)를, 미스 유니버스 대회로 340만 달러(약 40억 원)를, 센트럴파크의 트럼프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로 860만 달러(약 100억 원)를 벌어들였다.
도날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주자가 7월 25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오스칼루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오른쪽은 트럼프 타워. AP/연합뉴스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는 정말 그가 주장하는 대로 100억 달러의 자산가가 맞긴 한 걸까. 92쪽에 걸쳐 기록된 자산 내역을 살펴본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른 듯하다. 이번에 공개된 그의 자산이 과장됐다고 말하는 전문가들은 그의 재산이 최소 14억 달러(약 1조 6000억 원)로 추정된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주장에 비해 일곱 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포브스>는 트럼프의 재산 가치가 40억 달러(약 4조 6000억 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점치면서 특히 막말 파문으로 그 가치는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월스트리트저널>은 15억~21억 달러(약 1조 7000억~2조 4000억 원)라고 점쳤으며, <블룸버그>는 29억 달러(약 3조 4000억 원)라고 추산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CNN에 출연해서 “그들은 내 재산이 얼마인지 모른다. 나는 개인 회사다. 내가 얼마를 보유하고 있는지 모른다”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이렇게 평가액이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신고 양식의 허점 때문이라고 말했다. 23개 자산 항목은 구체적인 액수를 적는 대신 ‘OO달러~OO달러’라는 객관식 답변 가운데 하나에 체크하도록 되어 있었으며, 그나마 최대값도 ‘5000만 달러 이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트럼프 측은 “이 양식은 트럼프처럼 막대한 부를 지닌 사람에게는 적합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가령 트럼프가 소유한 건물 가운데 한 채는 시가가 15억 달러(약 1조 7000억 원)인데 이 경우에도 ‘5000만 달러 이상’ 항목에 체크해야 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카고의 트럼프 타워,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골프클럽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밖에 ‘트럼프’라는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령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값을 33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로 평가한 반면 <포브스>는 1억 2500만 달러(약 1400억 원) 정도로 평가하는 데 그쳤다.
자신이 상당한 부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트럼프는 이런 공격을 받을 때마다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례로 2006년 <트럼프 국가>를 집필한 작가 티모시 오브라이언이 “트럼프의 자산은 1억 5000만~2억 5000만 달러(약 1700억~2900억 원)다”라고 주장하자 오브라이언과 워너북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또한 2011년에는 MSNBC의 로렌스 오도넬이 트럼프의 재산이 10억 달러(약 1조 원)가 안 될 것이라고 조롱하자 트위터를 통해 소송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대충만 계산해도 70억 달러(약 8조 원)는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과연 트럼프는 그가 주장한 것처럼 선거 운동 기간 기부금을 일체 받지 않고 선거를 치를 수 있을까. 대선에 출마할 경우 드는 비용은 과연 얼마일까. 2012년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했던 미트 롬니의 경우 총 3억 9100만 달러(약 4600억 원)를 썼으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서는 12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에도 재선 선거 운동 때 12억 달러를 쓴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애크론대 정치학자인 존 그린은 “<포브스>와 <블룸버그>의 분석이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트럼프는 다른 후보들이 지출하는 선거 비용을 전부 합한 것만큼의 비용을 홀로 지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반드시 부자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에는 스스로 비용을 조달했던 후보들이 매우 유리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슈퍼팩(액수 제한 없이 합법적으로 여야 대선 후보를 지원하는 단체)’을 통해 모금되는 기금이 증가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경쟁자들이 트럼프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만일 트럼프만큼 부자인 친구를 두고 있거나 이 친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변수는 대선 운동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견딜 수 있는 ‘스태미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지금까지 기부금 없이 홀로 선거 운동을 뛰었던 후보들은 대부분 성공한 사업가들이었다. 아마 공화당 경선이 내년 봄까지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장기전이 될 것은 자명한 일. 이와 관련 ‘칸타르 미디어’의 회장인 엘리자베스 윌너는 “트럼프처럼 일찌감치 사비를 들여서 TV 광고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면 금세 지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단기간에 결과를 보는 것에 익숙해져있는 사업가들에게는 이런 지리한 선거 운동이 이례적으로 길게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최근 트럼프가 뉴욕의 펜트하우스를 2100만 달러(약 240억 원)에 급매한 이유가 혹시 대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이는 당초 제시했던 액수보다 무려 40%나 싼 값이었다.
이밖에 트럼프가 현재 지고 있는 채무액은 2억 6000만~4억 5000만 달러(약 3000억~5000억 원)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금까지 법원에 ‘챕터 11 파산 절차’라고 불리는 ‘재정난 타개 회사조직 재정비 신청’을 제기한 횟수도 무려 10회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워싱턴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마케팅 효과’를 노리고 출마했을 뿐 끝까지 레이스를 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점치는 사람들도 많다. 과연 트럼프가 장기전을 끝까지 마무리 지을지, 그리고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하게 될지에 미국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트럼프의 사업 살펴보니 이젠 부동산 아닌 이름으로 ‘돈벌이’ 도널드 트럼프 앞에 꼭 따라붙는 수식어라고 하면 단연 ‘부동산 재벌’일 것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부동산 재벌’이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저는 ‘구시대적인 방법’인 ‘부동산 투자’로 성공했습니다”라면서 “멕시코 국경에 방벽을 설치하겠습니다. 저보다 더 벽을 잘 세우는 사람도 없으니까요”라고 익살을 떨었다. 그리고 이런 축적된 사업 감각으로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 전 세계 수십 개의 부동산이 그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트럼프 소유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두바이의 ‘트럼프월드골프’, 하와이의 고급 리조트, 파나마와 이스탄불의 고급 콘도미니엄 등이 그렇다. 이들 부동산은 트럼프의 이름을 사용하면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런 경우 사업이 실패해도 트럼프에게는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계약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우루과이의 부동산 개발 회사 사장인 펠리페 야루라는 “건설 예정인 콘도미니엄에 트럼프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가로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좋아한다. 뉴욕과 마이애미를 방문해서 알게 된 트럼프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고품격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라고 말했다. 트럼프 본인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사업 전략이 수익 창출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는 그는 부동산, 홈퍼니싱, 남성 의류, 에너지 드링크 등에 이름을 빌려주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도 아주 적극적이다. 현재 700개의 상표권을 등록한 상태인 그는 만일 이를 침해하거나 비난 또는 사칭할 경우 협박 편지를 보내거나 중재 또는 소송을 거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이후 그가 세계지적재산권협회에 제기한 소송만 열두 건이며, 이 가운데 소송에서 패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2007년 한 가구업체가 운영하는 ‘트럼프퍼니처닷컴’ 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당시 법원은 트럼프가 가구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반면 뉴저지의 한 술집 사장이 운영하는 ‘트럼프와인닷컴’, 영국의 ‘트럼카드닷컴’, 캘리포니아의 ‘트럼프 베스트 커피’라는 사이트는 모두 트럼프가 제기한 소송에서 패했다. 트럼프는 이름을 팔 때도 유리한 계약을 맺는 등 수완이 뛰어난 것으로도 알려졌다. 사업이 망해도 트럼프가 손해 보는 일이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계약 조건 때문이다. 가령 2013년 멕시코의 ‘바하 페닌슐라’ 럭셔리 콘도 건설 사업에 이름을 빌려주고 참여했던 트럼프는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으며, 대신 25만 달러(약 3억 원)를 챙겼다. 리조트 사업이 성공할 경우 추가로 돈을 더 받도록 되어 있었으며, 만일 파산하거나 화재, 테러 등과 같은 재해로 인해 건물이 손상되거나 파괴될 경우에도 트럼프는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도록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