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안내리고 ‘뜬구름’만 잔뜩
“아마 당시 언론에선 공연에 수만 명의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고 보도된 것으로 기억되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였습니다. 시카고 공연엔 몇 백 명의 관객뿐이었고 LA에선 나름대로 성공한 게 1500여 명의 관객이었습니다. 게다가 관객의 99%는 교포, 나머지 1%는 교포를 따라온 미국인이었는데 언론 보도엔 미국인 관객이 상당수였다고 그러더군요.”
몇 년 전 인기 가수 네 명과 함께 미국 공연을 다녀온 관계자의 전언이다. 현지 분위기는 더욱 참혹했다고 한다. LA에선 급하게 공연장을 교체해 그래도 괜찮았는데 대형체육관을 빌린 시카고의 경우 정식 객석은 텅텅 비고 무대 앞에 객석에만 몇백 명의 관객이 들어와 비참한 분위기가 연출됐다고. 잔뜩 기대를 품고 공연을 떠난 가수와 소속사 관계자는 허탈한 표정이었고 투자자를 끌어 모아 공연을 기획한 업체 관계자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그러는 사이 수억 원의 투자금만 날아가 버린 것.
이런 현상은 단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애당초 인기 가수의 미국 공연은 일종의 위로 공연이었다. 타지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는 교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인기 가수들을 초청하는 형식을 띤 것. 공연 주체 역시 교민회 내지는 언론사 현지 법인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인기 가수들의 정식 공연이 늘기 시작했다. 인기 가수의 해외 공연가운데서도 해외시장에서 통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대중 음악의 본고장 미국 공연이 더 큰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미국 공연의 경우 미국 현지 공연기획사와 한국의 공연기획사가 협의해 공연을 준비합니다. 그렇다고 미국 공연기획사가 미국인이 운영하는 굴지의 회사들은 아닙니다. 대부분 교포 2, 3세가 운영하는 회사들인데 그들이 정보를 주지 않아 한국 공연기획사가 골탕을 먹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역시 인기 가수의 미국 공연을 기획했다 수억 원의 손해를 봤다는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미국에서 공연기획사를 운영하는 교포 2,3세들은 비슷한 연령대에서 좋아하는 젊은 가수를 초대해 공연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해 한국 공연기획사에 공연을 제안하는 데 그들이 전문적이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는 것. 준비 과정에 문제가 발생해도 한국 공연기획사에는 “잘 준비되고 있다”는 식으로만 답변하고 심한 경우 티켓마스터(미국의 공연예매사이트) 예매 현황을 조작해 통보하기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비의 하와이 공연을 기획한 클릭엔터테인먼트(클릭) 측도 “공연을 주관한 스타엠엔터테인먼트(스타엠)는 처음부터 월드투어 자체보다는 주가 상승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고 주장한다.
취재 과정에서 비의 공연 무산을 달리 보는 시각도 접할 수 있었다. 한 미주지역 여행사 관계자는 “비의 미국 공연을 교포가 아닌 미국인들이 대거 예매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과장된 게 아닌가 싶었다”면서 “정작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적게 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였다”고 말한다.
만약 예상대로 공연이 치러졌다면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 문제는 유료 관객이 얼마나 되는 지에 달려있다. 하와이 공연에 대해 클릭의 박성업 이사는 “티켓마스터 수치를 보면 발매 두 주 만에 5000 장이 팔렸는데 대부분 미국인이었다”고 얘기한다. 역시 무산된 LA 공연의 경우 공연장인 스테이플스 센터의 2만 석을 오픈 관객석으로 준비했다가 1만 2000석으로 규모를 축소했으나 유료 티켓 수는 5000여 장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스타엠 측은 LA 공연 유료 티켓 수가 1만 여 명으로 티켓 판매 저조가 공연 무산의 이유는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티켓 판매 논쟁을 떠나 관계자들은 5000장 예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우선 미국 공연 문화의 특성상 티켓마스터를 통한 예매보다는 현지 구매가 더 많아 70% 이상 예매 됐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매진이나 다름없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또한 비의 공연 티켓 가격(하와이 55~300달러. LA 98~225달러)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지적도 있었다. 같은 공연장인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공연을 가진 셀린 디옹(87~225달러), 엘튼 존(100~250달러)보다 더 비싼 가격인 것. 한국 공연기획사 관계자 가운데는 마이클 잭슨보다 비싼 티켓 값을 주고도 몇천 명이 비의 공연 티켓을 예매했다는 부분이나, 그런 성공적인 공연이 준비 부족을 이유로 무산됐다는 부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클릭의 박 이사는 “들뜬 매스컴의 반응을 보고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고 한탄한다.
LA 교민회 관계자는 “무대 설비가 저렴하고 중장년 층 교포가 좋아하는 통기타 가수들이 오히려 성공 확률이 높다”면서 “미국 공연을 너무 과장해서 보도하는 매스컴과 이를 조장하는 연예기획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홍재현 객원기자 hong92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