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속 카톡 아이디가 덫일 줄이야
불법 도박 근절 캠페인 문구는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누구나 손쉽게 불법 도박을 접할 수 있기 때문. 그 사이 불법 도박 시장 규모는 약 75조 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버젓이 소개하는 곳들이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경기점수 공개 전문 사이트,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심지어 인터넷 TV까지 종류는 다양하다. 이들은 ‘합법’을 빙자해 불법 도박을 위해 경기정보를 공유하고 사설 도박 사이트를 교묘한 방법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 실상을 고발한다.
“김소X 버스, 카톡 아이디 ok201X.”
스포츠 경기 점수 중계로 유명한 L 사이트 왼편 하단에서 이런 문구를 여러 개 찾을 수 있다. 오른쪽엔 야구, 축구 등 프로경기의 실시간 스코어가 있다. L 사이트 주말 동시접속자는 무려 3만 명, 얼핏 보면 스포츠팬들이 모이는 평범한 사이트처럼 보인다.
L 사이트 배너 속 카카오톡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내면 불법도박 사이트를 연결해준다. 오른쪽은 불법도박 중개업자와의 대화 내용.
그런데 충격적인 반전이 숨어있다. 앞서 밝힌 문구의 정체가 ‘총판’이라는 사실이다. 총판은 수수료를 받고 사설(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홍보하고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총판과 접촉해 도박을 처음 접했다는 한 이용자는 “L 사이트의 카카오톡 ID는 전부 불법 사이트로 연결되는 총판들 ID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자가 문구 속 ‘김소X’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자 “rs-XXX.com , 코드 XX07”이란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설 도박 사이트를 추천한 것. 총판들 사이엔 안전한(?) 곳으로 검증된 곳이다. 사이트로 들어가자 환전소가 있는 인터넷 도박장이 바로 모습을 드러냈다. 벨기에 프로축구팀의 승·무·패를 맞히는 것은 물론 실시간 게임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스포츠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걸고 ‘베팅’을 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 현행법상 스포츠토토(온라인 ‘베트맨’과 오프라인 ‘토토방’)를 제외한 스포츠 도박은 전부 불법이기 때문이다. 베트맨에서 허용하는 대상 경기는 주로 축구, 야구 등 구기 종목이다. 축구는 K리그와 일본 J리그, 잉글리시 프리이어 리그와 같은 대표적인 해외 리그만 가능하다.
앞서의 벨기에 프로축구팀의 경기 결과를 두고 이용자들이 베팅을 하는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다. L 사이트에서 “에스토니아 경기는 강팀과 약팀 간의 실력차가 뚜렷한 리그다”와 같은 경기분석 글들은 매일같이 올라온다. 경기분석 글은 이른바 ‘픽’으로 불린다. L 사이트에는 ‘○○경기 분석’, ‘오늘의 픽’ 등 합법인 베트맨에서 허용하지 않는 배팅방식을 분석한 글들이 많다. 또한 채팅창엔 “요미우리 핸승(핸디캡 승) 본다”, 또는 “텍사스 오버 추천요” 등의 글도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회원들이 불법 사설 도박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L 사이트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경기 정보 분석은 불법이 아니다”며 “경찰 수사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지만 문제가 없다. 억울하다”고 해명했다. “카톡의 개인 간 대화도 우리가 검열할 순 없다. 도박 사이트를 직·간접적으로 추천하는 회원들은 전부 강제 탈퇴시키고 있다. 그런 분들만 지금껏 4만 명이다”고도 보탰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경기 분석은 불법은 아니지만 일종의 편법이다. 요즘 도박 사이트들은 카카오톡 추천인 아이디를 통해서 법망을 피해간다”며 “그런 사이트에서 베팅과 환전이 이루어진다면 L 사이트에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L 사이트엔 스포츠토토의 대상경기가 아닌 분석 ‘픽’이 올라오는 것은 물론 카카오톡 ID에 문의하면 바로 사설도박이 가능하다. L 사이트가 불법 도박 사이트를 중개하거나 홍보하는 셈인데, 문제는 없는 것일까. 경찰은 “사이트 왼편 하단의 배너가 직접 주소를 링크한 것이라면 문제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판단이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불법 도박 사이트를 중개하거나 홍보, 정보제공은 전부 불법이다”며 “다만 소개한 사이트에서 실제로 베팅과 환전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부분에 대한 혐의 입증이 힘들기 때문에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다른 의견을 표했다. 국민투표진흥법 26조는 투표권 유사행위를 위해 해당 운동경기 관련 정보를 제공하거나 중개 또는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불법 사다리게임 N 앱(위)과 A 인터넷TV에서 불법도박을 홍보하는 모습.
앞서의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N 앱 같은 경우는 두 번 수사를 의뢰해서 두 번 다 기소가 돼 대표이사가 벌금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N 앱 회사 관계자는 “사다리 게임은 게임에 불과하다. 불법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게임등급심의 위원회의 정식 등급 심사 진행 중에 있는 합법적인 게임이다”고 해명했다.
<일요신문> 취재결과 N 앱 사다리 게임은 다른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심지어 A 인터넷 TV에선 사다리 게임을 실시간 중계하고 있었다. BJ가 추천한 카카오톡 ID로 기자가 메시지를 보내자 사설 도박 사이트가 나왔다. 기자는 바로 사다리 게임을 위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청됐다. 프로필 사진이 어려 보이는 40~50명이 “오링하고 나니까 후회되네”부터 “이번엔 홀 한번 탑승해보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불과 몇 분 만에 수백만 원의 판돈이 오갔다. A 인터넷 TV 담당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바로 영구정지를 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이 L 사이트나 N 앱, A 인터넷 TV 등은 사설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위한 ‘길목’으로 자리 잡았다.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남녀와 나이를 불문, 계좌만 있으면 바로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할 수 있다. 배너의 카카오톡 ID과 ‘스타픽(스타크래프트 경기 승패 분석글)’ 또는 ‘각종 해외리그 분석’이란 글을 보면 합법적인 베팅을 하는 이들도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는 상황이다. ‘불법 도박 근절’을 위해서 시급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