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아픈 ‘칼의 기억’ 아직 한번의 기회 더 있다
<협녀>는 이병헌은 물론 전도연, 김고은까지 톱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데다, 제작비 100억 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개봉하고 2주가 지나도록 누적관객 100만 명 돌파는커녕 60만~70만 명을 모으기도 벅찬 분위기다. 제작비 100억 원대 한국영화가 아무리 기대치를 밑도는 성적에 머문다고 해도 ‘100만 관객’은 기본으로 모았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협녀>의 기록은 놀랄 만한 수치다. 이례적인 상황을 바라보는 영화계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원인 찾기에 한창이다.
# <협녀> 부진 복합적 이유…일부에선 가혹한 ‘이병헌 책임론’
<협녀>의 흥행 부진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 관객에게 낯선 무협 액션 장르라는 점, 서사의 개연성이 부족한 완성도, 설득력이 약한 인물 관계 등 여러 대목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일부에서는 이병헌이 주연했다는 사실을 꼬집으며 책임론을 제기하지만 대작 영화의 부진을 단 한 명의 주연 배우에게 묻기는 가혹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이병헌에게 <협녀>가 가진 의미가 적은 건 아니었다. 지난해 논란을 빚은 뒤 복귀하는 첫 번째 무대라는 점에서 그가 가진 부담과 책임은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심 진정성 있는 연기와 작품으로 대중과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바람도 갖고 있었을 터였다.
<협녀> 개봉을 앞두고 7월 말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병헌이 굳이 취재진 앞에 고개를 숙여 다시 사과한 점도 이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의미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시 이병헌은 “제가 영화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많은 스태프와 관계자께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게 나의 책임”이라며 “그 어떤 비난도 저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저로 인해 스태프들의 노고가 가려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 이병헌은 이 같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연기력을 증명해 보였다. 연기에 관한 한 결점을 찾을 수 없는 실력 그대로다. 권력을 향한 욕망에 휘말린 인물을 극적으로 표현했지만 아쉽게도 폭넓은 관객에게 그 실력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협녀>의 패인을 한두 가지로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며 “특히 일부 누리꾼은 이병헌이 주연했다는 사실만 갖고 악성 댓글로 공격하지만 단순하게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병헌으로서는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고, 동시에 향후 활동 전략 역시 고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의미다.
8월 13일 개봉한 <협녀:칼의 기억>(왼쪽)과 올 연말 선보일 <내부자들> 스틸 컷.
# 할리우드 활동 집중…연말에 새 영화 <내부자들> 개봉
현재 이병헌은 미국에서 할리우드 영화 <황야의 7인> 촬영에 한창이다. 9월 초까지는 현지에 머물면서 촬영을 소화할 예정이다. 그보다 먼저 촬영을 마친 또 다른 할리우드 영화 <비욘드 디시트> 역시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그가 최근 할리우드 영화 활동에 얼마나 주력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실제로 지난해 논란에 휘말린 이후 영화계에서는 ‘이병헌이 당분간 할리우드 영화 주력할 수 있다’는 전망을 꺼냈다. 이미 <지 아이 조> 시리즈로 경쟁력을 인정받은 데다 최근에는 <터미네이터:제니시스> 등 유명 블록버스터에까지 참여해온 활약도 그의 ‘할리우드 집중’ 전략을 짐작케 한 대목이다.
현재 촬영 중인 <황야의 7인>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덴절 위싱턴, 에단 호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작이다. 1962년 개봉한 동명의 원작이 ‘서부극의 전설’로 통한다는 점에서 이병헌의 참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 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항간에는 이병헌이 할리우드 활동에 주력할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국내 활동을 포기할 정도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여전히 경쟁력을 갖춘 40대 배우로서, 그의 역량에 거는 기대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협녀>의 여파가 남아있기는 해도 앞으로 한국영화나 드라마의 주연을 맡기가 아예 어렵다고 볼 수는 없다”며 “연기력에 관한 한 이병헌을 대체할 배우가 많지 않다는 점이 그의 국내 활동 공백이 장기전이 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라고 짚었다. 결국 관건은 이병헌이 얼마나 ‘적합한 작품’을 만나느냐로 이어진다. 대중의 마음을 다독이고, 또 사로잡을 만한 작품 선택은 그 앞에 놓은 중요한 숙제가 됐다.
그에 앞서 아직 한 번의 기회는 더 있다. 지난해 촬영을 마치고 올해 연말 개봉을 준비하고 있는 영화 <내부자들>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최근 후반작업을 거치면서 영화계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여러 의견이 나오는 상황. 무엇보다 완성도에 관한 반응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병헌의 재도약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