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00 클럽 홍성흔 ‘신기록 경신중’
야구 격언이다. 그러나 어떤 팀은 병살타 네 개를 치고도 이긴 적이 있고, 또 다른 팀은 병살타 다섯 개를 치고도 이길 뻔했으니, 무조건 들어맞는 격언은 아니다. 단지 그만큼 병살타가 팀 공격의 흐름을 끊는 데는 치명적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얘기다. 그렇다고 무작정 병살타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병살타는 감독의 적극성을 상징한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내주고 번트로 ‘안전하게’ 주자를 2루로 보내는 대신, 좀 더 공격적인 승부수를 띄웠을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불운이다. 두산이 유독 병살타로 화제가 많이 되는 이유도 예전부터 세밀한 스몰볼보다 힘으로 맞붙는 빅볼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한 야구인은 “병살타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1루에 나간 주자가 많았다는 의미도 된다. 타선이 강하고 공격이 활발한 팀에서 병살타가 더 나올 수밖에 없다”며 “무엇보다 잘 맞은 타구도 병살타가 될 수도 있고,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될 수도 있다. 병살타는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999년에 데뷔한 두산 홍성흔은 최다 병살타를 기록 중이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병살타란 무엇인가
‘병살(Double Play)’은 수비팀이 연결된 동작으로 2명의 공격팀 선수를 아웃시킨 플레이를 말한다. 그 동작 사이에 실책이 끼어 있으면 더블 플레이가 아니다. ‘포스 더블 플레이’는 두 개의 포스 아웃이 연속으로 이어진 결과다. 6-4-3(유격수-2루수-1루수), 5-4-3(3루수-2루수-1루수), 4-6-3(2루수-유격수-1루수) 플레이처럼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병살타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리버스 포스 더블 플레이’는 말 그대로 ‘역방향 병살’이다. 포스 플레이로 먼저 첫 주자를 잡은 뒤 이 아웃으로 포스 상태가 해제된 주자를 두 번째로 아웃시키면서 완성된 더블플레이다. 예를 들어 1사 주자 1루에서 타자가 1루수 앞 땅볼을 쳤을 때, 타구를 잡은 1루수가 베이스를 밟아 타자주자를 포스 아웃시킨 뒤 이어서 2루수나 유격수에게 송구해 1루주자를 태그 플레이로 아웃시켰을 때 리버스 병살이 완성된다. 반대로 1루수가 베이스를 밟지 않고 2루에 먼저 던져 1루 주자를 포스 아웃시킨 뒤 다시 2루수가 1루수에게 송구해 타자주자를 1루에서 잡는다면 그냥 일반적인 ‘포스 더블 플레이’가 된다.
# 유도하려는 자와 피하려는 자
투수에게 병살타는 가장 효율적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낼 수 있는 방식이다. 투수가 똑똑한 야수들의 도움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A 투수는 “아무래도 병살타를 유도하려면 확실하게 떨어지는 구종 하나가 있는 게 좋다”며 “투수들은 땅볼을 만들어내기 위해 우타자 기준 몸쪽 공을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당연히 플라이볼 유형의 투수보다는 땅볼 유도능력이 좋은 투수들이 병살타를 더 잘 이끌어 낸다.
일반적으로 국내 투수들보다 땅볼 비율이 더 높은 외국인 투수들이 실제 병살타 유도율에서도 늘 상위권을 지킨다. 올 시즌에는 롯데 브룩스 레일리가 아래로 떨어지는 싱킹패스트볼(싱커)의 위력 덕분에 가장 병살타를 잘 이끌어내는 투수로 꼽히고 있다. 넥센 앤디 밴 헤켄과 롯데 조쉬 린드블럼, 한화 미치 탈보트 등도 마찬가지. 국내 투수 가운데서는 삼성 차우찬이나 KIA 양현종, 두산 유희관 같은 왼손투수들이 높은 병살타 유도율을 자랑한다.
땅볼 타구의 방향도 중요하다. B 투수는 “아무래도 1-2루간 타구를 병살로 처리하는 것보다 3루수-유격수간 타구가 병살이 될 확률이 더 높다. 1-2루간 타구는 1루주자가 빠를 경우 2루수가 베이스 쪽으로 가깝게 가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공간이 더 많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많은 타자들이 주자가 1루에 있을 때 1-2루 간으로 타구를 밀어 치려고(우타자 기준)하는 이유다. B 투수는 또 “좌타자가 타석에 있고 빠른 주자가 1루에 있으면 병살 확률이 떨어진다. 그럴 때는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빠져 나가는 공을 많이 던진다”고 귀띔했다.
1점을 꼭 막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1루가 비어있을 때, 많은 팀은 병살타를 끌어내기 위해 고의4구를 활용한다. 특히 상대팀에서 가장 강한 타자가 눈앞에 서 있다면 피해가기 어려운 유혹이다. 포수가 아예 공을 서서 받아야 고의4구가 성립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대부분 벤치에서 ‘어렵게’ 승부하라는 사인이 나온다. A 투수는 “상대 타자가 중심타선이고 다음 순서가 좀 덜 무서운 타자라면, 처음에는 정면승부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던지다가 볼카운트에 따라 이 타석에서 해결할지, 아니면 거를지 지시가 떨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수비하는 팀이 병살타를 이끌어내기 위해 머리를 쓴다면, 공격하는 팀은 병살타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희생번트로 주자를 2루에 안착시키기도 하고, 경기 후반에는 발 빠른 주자를 1루에 대신 기용하기도 한다. 야구 작전 가운데 가장 유명한 ‘히트 앤드 런’이나 ‘런 앤드 히트’도 무사 1루나 1사 1루에서 병살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다. 타자는 투수가 던진 공을 반드시 쳐야 하고, 주자는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동시에 스타트를 끊어야 하는 원리. 평범한 땅볼 타구가 나오더라도 최소한 1루주자의 2루 포스아웃은 막겠다는 의지다. 게다가 안타가 나오면 금상첨화다. C 포수는 “물론 단독 도루가 가능한 주자가 있을 때는 굳이 무리하게 작전을 감행할 필요가 없다. 드물지만 상대의 작전을 간파하고 피치아웃으로 잡아내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 누가누가 많이 쳤나
사실 병살타는 야구를 잘 하는 타자들, 특히 중심타선이 많이 친다. D 야구인은 “출루율이 높은 타자 뒤에 타점 능력이 좋은 타자를 배치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앞 타자가 출루를 많이 할수록 후속타자가 병살을 칠 확률도 조금씩 높아지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실제로 두산 홍성흔, LG 정성훈, 한화 김태균, NC 이호준, 롯데 최준석, 삼성 박석민, 삼성 최형우, 롯데 황재균, 피츠버그 강정호(지난해까지 넥센) 등 쟁쟁한 타자들이 2011년 이후 가장 많은 병살타를 친 선수 순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모두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들이다. 특히 1999년 데뷔한 홍성흔은 이미 200병살타를 넘어 역대 최다 병살타 기록을 경신해가고 있다. 물론 그는 지난해 역대 20번째 통산 200홈런 달성과 올해 오른손 타자 최초로 2000안타를 돌파하는 쾌거도 이뤘다. 역대 최다승 투수인 송진우가 최다패 기록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역대 최초의 병살타는 프로야구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나왔다. 1982년 3월 27일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삼성과 MBC의 원년 개막전 1회말 1사 1루에서 MBC 김용운이 역사적인 프로 1호 병살타를 날렸다. 삼성 김한수는 2004년 23개의 병살타를 때려내 역대 한 시즌 최다 병살타 기록을 썼다. 2003년 삼성 마해영, 2011년 롯데 이대호와 홍성흔이 나란히 22개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역대 한 시즌 최소 병살타 기록은 1982년 OB 김우열과 1983년 MBC 김인식이 함께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한 시즌 내내 단 하나의 병살타도 치지 않았다. ‘0’보다 위대한 ‘1’을 기록한 타자도 있다. 넥센 서건창은 지난해 133경기 616타석에서 병살타를 단 한 개밖에 안 쳤다. 김우열(62경기 255타석)과 김인식(100경기 416타석)의 기록보다 어쩌면 더 대단해 보이는 이유다. 심지어 서건창의 유일한 병살타는 시즌 개막전 네 번째 타석에서 나왔다. 이후 132경기 612타석에서 병살타가 없었다는 얘기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두산, 병살에 얽힌 씁쓸한 사연 삼중살 덕분에 병살타 신기록 모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ㅜㅜ 두산은 최근 병살타와 관련된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화제가 됐다. 기록을 세워서가 아니라, 모면해서 더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차라리 새 기록을 작성하는 게 나았을 수도 있다. 병살도 아닌 ‘삼중살’이 기록 탄생을 막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12일 두산이 kt와의 경기에서 삼중살 포함 병살타 5개를 기록했다. 사진은 kt의 박경수가 두산의 김재호를 아웃시키고 1루로 송구 병살처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kt 위즈 두산은 지난 9월 12일 잠실 kt전에서 1-11로 완패했다. 투수들이 못 던지고, 타자들이 못 쳤을 때 나오는 스코어다. 그런데 과정은 이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1회부터 6회까지 매번 주자가 한 명 이상 출루했고, 매번 타구 하나로 두 명 이상의 타자가 아웃됐다. 1회 1사 1루, 3회 무사 1루, 4회 1사 1·3루, 5회 무사 1루, 6회 무사 1루가 병살타 다섯 개로 날아갔다. 2회 무사 1·2루에서는 심지어 번트 타구가 낮게 떠올랐다가 상대 투수에게 노바운드로 잡히면서 주자 둘까지 한꺼번에 삼중살로 횡사했다. 얼핏 들여다보면, 새로 나올 수 있는 병살타 기록이 산더미였다. 일단 6이닝 연속 병살타는 단일 경기 기준으로 최다가 될 수도 있었다. 최다 연속 이닝 병살타 기록은 한화가 보유한 7이닝(1994년 5월 22일 청주 OB전 6회~5월 23일 잠실 LG전 3회)이지만, 두 경기에 걸쳐 수립된 터였다. 또 한 경기 최다 병살타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할 뻔도 했다. 종전 기록 역시 두산이 2007년 6월 24일 잠실 KIA전에서 작성한 6개. 두산으로서는 8년여 만에 다시 경험한 비운의 경기였다. 그러나 이 기록들은 2회의 삼중살이 ‘병살타’가 아닌 것으로 공식 판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병살타는 기본적으로 타자의 타구 때문에 주자가 아웃되는 상황이어야 성립되기 때문이다. 타자가 플라이볼로 아웃될 경우 기존의 주자들은 원래 있던 베이스의 점유권을 계속 갖게 된다. 무조건 다음 베이스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주자들의 아웃은 타자의 타구 때문이 아닌, 주자의 잘못으로 판단된다. ‘병살’은 맞지만 ‘병살타’로 기록되지 않는 이유다. 결국 두산은 플라이볼로 인한 삼중살 덕분(?)에 이 경기에서 병살타 5개와 4이닝 연속 병살타만을 남긴 것으로 기록됐다. 물론 이렇든 저렇든 씁쓸한 결말이기는 마찬가지다. [은] |
우리 생애 최고의 더블플레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쿠바전, 이보다 더 짜릿할 순 없다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짜릿한, 그리고 영원히 잊지 못할 병살 플레이는 아마도 2008년 8월 23일에 탄생했을 것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 한국 대 쿠바 경기에서 마지막 구원투수로 나온 정대현이 1사 만루 상황을 병살로 처리한 뒤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대표팀이 쿠바와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다시 만나는 날이었다. 한국은 목표였던 동메달을 넘어 은메달까지 확보했고, 군 미필 선수들은 이미 병역 혜택이라는 성과까지 거둔 상황. 그러나 이 때문에 선수들의 목표 의식이 저하됐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우에 불과했다. ‘세계 정상’이라는 가장 값진 목표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었다. 이승엽은 1회 2사 1루에서 쿠바 선발 곤잘레스의 4구째 바깥쪽 직구를 밀어 쳐 선제 좌월 2점포를 터뜨렸다. 쿠바도 엔리케스의 좌월 솔로포로 응수했다. 이후 한국 선발 류현진과 쿠바 선발 곤잘레스는 좀처럼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2-1 리드를 지켜가던 한국이 7회 2사 1·2루에서 나온 이용규의 우익선상 적시 2루타로 3-1까지 달아나자 다시 쿠바의 벨이 좌중월 솔로포로 간격을 좁혔다. 운명의 9회말은 그렇게 찾아왔다. 3-2로 앞선 한국 마운드에는 여전히 대한민국 에이스 류현진이 서 있었다. 예선 세 번째 경기였던 캐나다전 완봉승에 이어 대회 두 번째 완투승을 눈앞에 둔 듯했다. 9회 선두타자 올리베라에게 좌전 안타를 맞은 뒤 희생 번트로 1사 2루. 그런데 이 중요한 상황에서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라틴계(푸에르토리코)인 카를로스 구심이 쿠바 쪽에 유리한 판정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8회까지 볼넷이 단 하나도 없었던 류현진이 갑자기 세페다와 벨을 나란히 볼넷으로 내보냈다. 순식간에 1사 만루. 설상가상으로 포수 강민호가 의아하다는 뜻을 표현하자 구심은 지체 없이 퇴장 명령을 내렸다. 강민호는 나중에 “볼이 낮았느냐는 의미로 ‘로우 볼(Low ball)?’이라고 물었는데, 주심이 ‘노 볼(No ball)’로 잘못 알아들은 것 같다”고 했다. 화가 폭발한 강민호는 더그아웃에서 미트를 집어던지며 격한 불만을 드러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류현진과 강민호가 ‘당하는’ 모습을 본 한국은 더 집중력이 높아졌다. 허벅지가 아파 경기에서 빠졌던 포수 진갑용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마스크를 썼다. 노련한 언더핸드 정대현이 마운드를 이어 받았다. 안타 하나면 끝내기 역전패를 당할 위기. 타석에는 쿠바 최고의 타자 구리엘이 섰다. 스트라이크, 또 스트라이크. 배짱 넘치는 정대현은 구리엘이 손도 못 댄 스트라이크 두 개를 연이어 꽂아 넣었다. 0B-2S의 불리한 카운트에 몰린 구리엘은 3구째에 황급히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구가 한국의 유격수 박진만 앞으로 향했다. 박진만이 2루수 고영민에게, 고영민이 러닝스로로 1루수 이승엽에게 잇따라 송구했다. 6-4-3으로 이어지는 병살타. 그 순간 한국 더그아웃의 모든 선수들이 두 팔을 번쩍 치켜 올리며 마운드로 달려 나갔다. 한국 야구가 올림픽 남자 단체 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이었다. 그냥 이긴 것도 아니다. 아홉 번 싸워 아홉 번 다 이긴 ‘퍼펙트 골드’. 우리 생애 최고의 병살 플레이는 그렇게 한국의 심장에 아로새겨졌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