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더 좋아져…공 던질 날만 기다려요”
<일요신문>과 인터뷰하는 류현진의 표정(원 안)이 매우 밝았다. 아직 투구연습도 시작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벌써 내년 스프링캠프를 향하고 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지난 5월 22일(한국시간) 류현진은 LA 인근의 병원에서 왼쪽 어깨 관절경 수술(Arthroscopic Surgery)을 받았다. 렌즈가 부착된 관을 넣어 찢어진 곳을 꿰매고 정리하는 ‘청소술(淸掃術)’이었다. 수술 결과가 매우 좋았다. 류현진의 수술을 집도한 LA 다저스 팀닥터 닐 엘라트라체 박사는 류현진이 내년 시즌 건강한 어깨로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5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류현진은 적극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팀 트레이너와 함께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그로 인해 어깨 상태는 아주 ‘말짱’해졌다. 지난 1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동행한 류현진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만났다.
원래 9월 말이면 가볍게 공을 던질 것이라고 알려졌지만 기자를 만날 때까지 류현진은 공을 던지지 않았다. 별다른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팀 내에 워낙 부상자가 많다 보니 트레이너와 함께 공을 던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 자꾸 뒤로 밀린 탓이다.
“가급적이면 수술 안하려고 했다. 이유? 어깨이기 때문이다. 팔꿈치였다면 처음 통증을 느꼈을 때 바로 했을 텐데 어깨였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에 마음을 돌렸다.”
류현진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수술 직후 언론과 짧은 인터뷰는 했지만, 수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심경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올 시즌 어깨 통증을 처음 느꼈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지난 3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시범경기 이후 류현진은 어깨에 통증을 느끼게 된다. 간단한 통증이라고 생각하고 염증 치료 주사를 맞은 후 5일 만에 피칭을 재개했지만 통증이 계속되는 바람에 바로 중단해야만 했다. 이후 애리조나에서 LA로 건너가 MRI 검진을 받았으나 구단으로부터 ‘2012년 입단 계약 당시와 차이가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류현진은 이후에도 몇 차례 복귀를 준비한다. 그때마다 번번이 통증이 재발됐고, 결국 5월 5일,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3월 18일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시범경기 등판 이후 통증이 가라앉지를 않았다. 던진 그날은 괜찮았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점점 심해져서 손을 올리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소염제 치료를 받으며 상태를 관찰했다. 그러다 23일 가벼운 캐치볼을 한 것이다. 결과가 너무 안 좋았다. 통증이 심해 짧은 거리도 제대로 던지지 못할 정도였다. 트레이너와 상의 끝에 하루 빨리 LA로 돌아가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하는 게 도움이 될 거란 판단을 내렸다. 무엇보다 시즌 중반도 아닌 시범경기에서부터 어깨 통증이 나타난다는 건 나중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그날 바로 LA로 넘어간 것이다.”
류현진은 복귀를 위해 주사를 맞아가며 불펜피칭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속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시 MRI를 찍어봤다. 의사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수술의 불가피성을 얘기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4월 정도에 어깨통증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도 팀 닥터인 닐 엘라트라체 박사가 내게 ‘이거(어깨) 청소하자. 살짝 청소만 하면 될 것 같은데’라며 내 의중을 떠봤고, 난 그 당시에도 어깨라서 절대 안 된다고 버텼다. 그만큼 어깨 수술에 대한 부담이 컸다. 그 부위는 처음 하는 수술이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절감하게 된 류현진. 수술은 절대 불가를 외쳤던 그가 어느 순간 마음을 돌려야만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구단을 찾아가 “수술하기로 결심했으니 수술 날짜를 잡아 달라”는 중대 발표를 하기에 이른다.
“수술을 결정하고 나선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하면서도 계속 던지자니 어깨가 아플 것 같고, 그렇다고 안 던지고 수술도 하지 않은 채 버티자니 시간만 까먹고 있다는 걱정이 생겼다. 그러다 (수술을) 하기로 정리한 이후엔 모든 게 편해졌다. 아침 7시에 수술이 예정됐는데 아침 6시에 병원에 도착해선 한참을 기다렸다. 수술 전에 긴장될 줄 알았지만 수술하고 나면 통증이 사라질 거란 기대가 긴장을 압도했다. 어깨를 마취했을 때도 통역하는 형(김태형 씨)이랑 장난치고 그랬다.”
닐 엘라트라체 박사는 류현진이 긴장할까봐 “이 수술만 하고 나면 내년부터 더 생생하고 강한 어깨로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얘기를 자주 해줬다고 한다.
“수술하고 나면 그 부위가 뻐근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팔꿈치 수술했을 때보다 더 괜찮았다. 내가 수술했나 싶을 정도로 아무 이상이 없었다. 무엇보다 통증이 없어서 살 것 같더라. 이렇게 간단하고 좋은 수술을 왜 이렇게 안하겠다고 버텼나 싶었다.”
어깨 수술을 받은 다음날인 5월 23일 류현진은 다저스 구단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류현진은 숨겨 온 사실을 하나 공개했다. 2012년 다저스 입단 당시 촬영한 MRI에서도 어깨 관절와순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지난 3월 어깨 통증 이후 LA로 건너가 MRI 검진을 받았을 때 “2012년 MRI 촬영 당시와 차이가 없었다”고 발표한 구단의 입장과 그 의미가 드러난 중요한 내용이었다.
구단이 류현진의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약을 진행한 이유는 그 정도의 부상이면 당분간 공을 던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고, 설령 공을 던지다 ‘고장’이라도 나면 수술해서 이전처럼 회복시킬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류현진의 수술을 놓고 국내 언론에서 저마다 투수로선 그 수술이 치명적이란 내용과 재기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쏟아냈다는 점이다.
“정말 서운했다. 그런 기사를 쓴 분들이 내 어깨 상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나보다, 의사보다 기자들이 내 상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면 충분히 받아들이겠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쓰는 기사들은 내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지금까지도 그 부분에 대해 팬들끼리 서로 설전을 벌이곤 하는데, 분명한 사실은 난 내가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데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난 무조건 이전처럼 던질 것이고, 그렇게 던질 자신이 있다는 부분이다.”
수술 이후 류현진은 본격적인 재활 프로그램에 돌입했다. 그리고 5개월여의 시간이 흘렀는데 그 과정에서 지루하고 힘든 면은 없었을까.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 5개월이 금세 지나갔다. 팔꿈치 수술했을 때도 재활만 5개월을 진행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시간이 후다닥 지나간 것이다. 재활 강도가 올라가면서 체력적인 부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재활훈련을 하기 싫어하거나 게으름 피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된 브랜든 맥카시는 다저스 내에서 류현진의 절친이다. 그런 그가 힘든 재활을 통해 다시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류현진이 자기도 모르게 “부럽다”는 말을 내뱉었다고 한다.
“빨리 공을 던져야 한국 갈 수 있다. 그래서 부럽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는지 모른다(웃음).”
류현진이 공을 던지기 시작하면서부터 6주간은 투구 재활 프로그램을 이행해야 한다. 류현진은 최종 시즌이 다 끝난다고 해도 LA에 남아서 재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우리 팀이 지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뉴욕 메츠와 디비전시리즈에서 만난다. 현재 커쇼, 그레인키를 이을 3선발의 공백이 다저스의 약점으로 꼽힌다. 그렇다보니 커쇼, 그레인키는 물론이고 포수인 A.J. 앨리스 등이 내게 다가와선 ‘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 나갈 수 있지? 우린 그렇게 알고 마음 놓고 있을게’라며 우스갯소리를 던지더라. 나도 마운드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내년을 위해 참아야 하고, 현재 상태를 참을 수밖에 없다.”
류현진의 마음은 벌써 내년 시즌 스프링캠프에 가 있었다. 그때는 건강한 팔로 통증에 대한 걱정 없이 씩씩하게 공을 뿌릴 것이라고 잔뜩 벼르는 중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