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탐정 ‘민간조사원’의 현실
<탐정 : 더 비기닝>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탐정 자체는 불법이다. 신용보호법에 따라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신용정보회사가 아닌 곳에서 특정인의 소재 및 연락처, 사생활 등을 조사하는 행위 역시 불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대신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조사 업무는 신용정보회사 내의 채권추심 업무 이외에는 극히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채권추심업무조차 제한된 정보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잖다.
부산의 한 신용정보회사에서 채권추심업무를 맡고 있는 손명국 씨(52)의 어릴 적 꿈은 탐정이었다. 그는 탐정을 꿈꾸며 탐정 교육을 받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대한민간조사협회에서 12주 동안 범죄학, 법학개론 등의 과목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을 거쳐 시험에 통과해 부산 최초 민간조사원으로 거듭났지만 2006년 신용정보회사 입사의 길을 선택했다.
손 씨는 “오랫동안 꿈꿨던 탐정으로 활약하고 싶어 사무실을 낼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신용보호법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돼 있어 그나마 조사 폭이 넓은 신용정보회사에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며 “의뢰인의 상담을 통해 은닉재산을 추적하기도 하고 채무자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며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하루빨리 탐정법이 도입돼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법제화가 되지 않는 국내에서 심부름센터, 흥신소 등의 불법 영업이 성행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당시 전국 심부름센터와 흥신소는 1200여 개(추정치)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 외국 탐정들은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지난 1997년 정부가 관련법 없이 탐정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하금석 대한민간조사협회장은 “국세청에서 해외은닉재산을 찾을 때도 국내에는 탐정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해외 탐정을 활용했고 외국계 컨설팅회사 내에도 외국 탐정들이 기업M&A(인수·합병) 사업을 진행하면서 기업 비리를 조사하는데 쓰이고 있다. 국내에서 한국 탐정은 일을 못하고 외국 탐정들만 일자리를 찾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며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해서 서비스업이 전면 개방돼가는 시점에 국내에서도 10년째 계류 중인 탐정법이 하루빨리 법제화돼 외국으로 수출도 되고 일자리 창출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조사업을 직접 언급하면서 민간조사업법 도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지만 해당 법안은 10년째 폐기와 발의를 반복할 뿐이다(<일요신문> 1200호 보도).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3년에 발의한 ‘민간조사법에 관한 법률’ 역시 아직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송 의원은 “경찰청과 법무부가 서로 소관부처 협의를 하지 못하고 있어 법안이 세부적으로 조율된 것은 없는 상태”라며 “경찰청과 법무부에 탐정을 어떻게 관리, 감독할 것인지 협의할 것을 요청했다. 이제 막 국정감사가 끝났기 때문에 바로 법제화 추진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과 법무부 중에서 소관부처를 조정하는 것은 국무조정실에서 주관해서 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제출돼 있는 민간조사업법에 관한 법률과 경비업법 전부 개정 법률안을 통합하는 절차를 거쳐 사설 탐정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제대로 된 관리, 감독 도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