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의 미’는커녕…악재로 첩첩산중
홍기택 KDB산업은행 회장이 임기 5개월 남은 상황에서 대우조선해양 부실 문제와 현대증권 매각 무산 책임론 등으로 궁지에 몰린 모습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주 금융권에서는 두 가지 큰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우조선 채권단이 대우조선에 신규자금 지원을 계획했다가 정부에 ‘퇴짜’ 맞은 일이다. 전자는 현대그룹 재무구조개선 차원에서 추진된 터라 금융권뿐 아니라 재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후자는 정부 차원에서 주요 경제수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후 채권단 결정을 되돌린 만큼 중대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두 가지 사건에 모두 산업은행이 연관돼 있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이자 현대증권 매각 주간사였다. 산업은행은 또 대우조선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이다. 일처리를 매끄럽게 하지 못한 산업은행으로선 비난받을 자격(?)이 충분한 셈이다.
우선 현대증권 매각 무산과 관련해 산업은행은 매각 주간사로서 도의적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도 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대증권노동조합은 지난 20일 “주채권은행이며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 무산에 따른 모든 법적 책임과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서는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 산업은행의 무리하고 안이한 진행방식이 종종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특히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미숙함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며 “현대증권 매각 무산 책임에서 산업은행이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증권 매각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산업은행 관계자는 “주간사지만 매각 작업 중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전혀 없다”며 “어차피 매각 주체와 인수자 간 계약이다”고 항변했다. 현대그룹 관계자 역시 “인수자 쪽에서 잘못한 것이지 현대나 산업은행에 귀책사유가 없다”고 두둔했다.
대우증권 매각공고를 낸 산업은행으로서는 현대증권 매각 무산이 께름칙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현대증권 매각을 마무리한 후 대우증권 매각 작업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밝혀왔던 터다. 산업은행은 내년 초까지 대우증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현대증권 매각이 무산됨에 따라 대우증권 매각 작업이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우증권 매각은 홍기택 산업은행 회장의 ‘마지막 시험대’로 여겨져 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회사 체제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산업은행장이 연임한 사례는 없었다”며 “홍 회장 연임 가능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지만 희박해졌다”고 전했다.
홍기택 회장은 대우조선과 관련해서도 계속 시달리고 있다. 홍 회장은 일부에서 대우조선 부실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질책을 받는 가운데 대규모 신규 자금 지원 계획마저 제동이 걸렸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대우조선 채권단은 ‘대우조선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4조 원대의 신규 자금 지원을 계획하고 있던 터다.
그러나 지난 22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등 경제수장들이 청와대에서 비공개회의를 열고 ‘선 자구책 마련 후 지원’ 방침을 확정, 대우조선 자구책을 먼저 살펴보고 결정할 뜻을 밝혔다. 가뜩이나 ‘퍼주기 논란’에 휩싸여 있는 산업은행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원래부터 선지원 계획은 없었다”며 “노조 동의서를 먼저 받을 생각이었으며 지원계획안이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는 절차도 밟아야 하는데 무조건 선 지원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우조선노동조합은 “회사 경영부실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며 채권단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대우조선 살리기’ 시간이 길어질 전망이다. 홍기택 회장이 남은 임기 5개월 동안 풀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