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한다면서 되레 투자한 이유 뭐니?
표면적으로는 일단 인수자로 나선 오릭스가 ‘일본계 자금’, ‘파킹 딜(Parking Deal, 외부에 지분을 잠시 맡겼다가 나중에 다시 되사오는 딜)’ 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에 부담을 느껴 발을 뺀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오릭스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이자 현대증권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과 매각 주체인 현대그룹은 몇 개월 전부터 현대증권 매각이 성사된 것으로 평가했다.
현대증권 인수를 노리던 일본 오릭스는 파킹딜 의혹 등이 제기되자 인수를 포기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현대증권 매각 무산의 한 원인으로 ‘파킹 딜’이 지목되면서 이 부분에 대한 의문과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을 오릭스에 매각하면서 오릭스가 3년 후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하려 하면 우선협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인수 후 4년이 지나면 한 달간 미리 정한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도 달았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이는 일반적인 인수·합병(M&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다. STX·동부·금호그룹 등이 자구계획안 일환으로 계열사를 매각할 때도 이런 방식을 따랐다. 얼마 전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가 된 대목은 오릭스가 현대증권을 인수하기 위해 구성한 사모펀드 오릭스PE에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2008억 원을 출자한 것.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계열사를 매각한다면서 오히려 2008억 원을 투자한 셈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 지분 22.56%를 매각하기 위해 오릭스와 계약한 액수는 6512억 원. 여기서 현대그룹이 투자한 금액을 빼면 4504억 원이 현대증권 지분을 매각하면서 들어올 자금이었다.
더욱이 현대그룹은 매각하고자 하는 계열사를 인수하려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 즉 본인이 파는 물건을 본인이 사겠다는 의미다. 이 점이 파킹 딜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이자 ‘현대증권을 담보로 오릭스에 대출받은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자구계획안을 실행하는 데 그런 꼼수를 쓰지는 않는다”며 “이는 금융감독원에서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정 난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 하나 짚어봐야 할 대목은 과연 이 같은 거래 구조를 누가 추진했느냐는 점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매각 주체와 인수자 간 계약 형태”라며 “거래의 문제점을 누누이 설명하고 자문했으나 주간사로서 이를 강제로 변경하거나 제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물건을 파는 사람이 듣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계속해서 진성 매각(True Sale)을 설득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계 인사 중에는 산업은행의 책임 회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이자 매각 주간사로서 계약 구조와 진행, 형태를 전부 꿰고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