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패 들고 갈 거예요” 앳된 얼굴들 발그레
제7회 전국 중고생바둑대회에 총 179명의 청소년이 참가해 실력을 겨뤘다. 사진은 신상철 회장(가운데), 심판위원장 박진솔 6단(맨왼쪽)과 수상자들.
지난 8일 오전 10시, 비가 내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도 한국기원 대회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날 열린 제7회 한국중고바둑연맹회장배 바둑대회에 참가자들이 모두 모인 것. 이번 대회에선 전국 중·고등학생 바둑 유망주 179명이 고등 최강부, 중등 최강부, 고등부 갑조, 중등부 갑조로 나뉘어 실력을 겨뤘다.
본격적인 시합에 앞서 신상철 한국중고바둑연맹 회장이 개회사를 했다. 신상철 회장은 “바둑대회가 7회째를 맞이하면서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성숙해가고 있다”며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바둑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느껴진다”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을 수 있으니 승·패에만 연연하지 말고 바둑 자체를 즐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개회사가 끝난 뒤 예선리그 막이 올랐다. 예선리그는 4인 1조로 구성된 각 조별 풀리그로 진행해 각 조의 상위 2명이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소란스럽던 대회장은 고요해졌다. 단지 바둑알 부딪히는 소리와 “5분 남았습니다” “흑, 마지막 10초, 9, 8, 7…” 등 계시기(남은 시간을 계산해서 알려주는 기계)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승부에 임하는 긴장감과 집중력은 얼굴에까지 드러났다. 첫 판이 끝날 때가 되자 참가자들의 앳된 얼굴은 벌겋게 상기돼 갔다.
리그전은 오후 1시께가 돼서야 끝이 났다. 처음 대회에 출전했다가 아쉽게 리그전에서 떨어진 김지현 양(17)은 “너무 긴장해서 실수를 많이 했다. 다음 대회에서는 떨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3연승으로 손쉽게 리그를 통과한 박선우 군(17)은 “지금까지 대회에서 한 번도 우승해본 적 없다. 오늘은 꼭 상패를 들고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오후부터는 풀리그를 거쳐 본선토너먼트에 오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대진을 짜기 위한 번호 추첨이 진행됐다. 확정된 대진표가 게시판에 걸리자 주변에 모여든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희비가 엇갈렸다. 첫 경기부터 친구와 대결하게 된 한 참가자는 대진표를 보면서 “내가 널 몇 번 이겼었지”라며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보냈고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강적을 만난 참가자는 “하필 그 친구야”라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반면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한 참가자도 있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먼저 우승 상패를 거머쥔 이는 고등부 갑조의 이유빈 군(18)이었다. 이 군은 지난 3월과 10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었다. 이 군은 “결승 상대를 이전 대회에서 총 2번 만났었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승리한 것”이라며 “‘내 바둑만 두자’는 말을 되뇌며 대국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날 가장 늦은 시간까지 진행된 고등 최강부 대국에서는 대회 시작 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송규상 군(17)과 서문형원 군(17)이 거론됐다. 본선에 올랐던 한 참가자는 “송규상과 서문형원은 랭킹 1, 2위를 다투고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다. 너무 잘한다”고 말했다. 송 군과 서문 군은 실제로 예선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사진은 고등 최강부 결승전 대국 모습.
그런데 8강에서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서문 군이 탈락한 것. 상대는 이어덕둥 군(17)으로, 최근 대회에서 입상 기록이 없는 학생이었다. 둘은 치열한 접전을 펼쳤고, 1시간이 넘는 대국 끝에 이 군이 승리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서문 군을 꺾은 그 기세를 이어 이 군이 또 다른 우승후보 송규상 군을 제치고 결승에 오른 것이다. 한 바둑도장 관계자는 “학생들 실력이 비슷비슷해서 결과는 랭킹만으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승전의 윤곽이 잡힌 것은 오후 6시 30분께. 파죽지세로 리그와 본선을 통과한 이 군과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심재익 군(17)이었다. 심 군은 이 군과 비교해 강적을 만나진 않았지만, 대국 시간이 비교적 짧았다. 그만큼 상대를 쉽게 제압했던 것. 8강과 4강, 결승까지 예상치 못한 흐름대로 흘러가자 이미 대국이 끝난 참가자들과 바둑 도장 관계자 등도 끝까지 남아 결승전을 참관했다.
대회장 한 가운데로 옮겨 펼쳐진 결승 대국. 이 군은 초반부터 유리했다. 심 군의 활로를 모두 막는 것과 동시에 공격했다. 일부 관전자들은 이 군이 수를 둘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최종 우승은 반집 차로 심 군의 차지가 됐다. 유리한 고지를 확보한 이 군이 ‘끝내기’에서 시간을 끌다 실수를 연발한 것. 최종 우승을 거머쥔 심 군은 “초반부터 끝나기 직전까지 불리했다. 이 군이 마지막 후반부에서 실수를 했지만 그래도 어려웠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앞으로도 우승을 많이 하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준우승자 이어덕둥 군은 “이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완승을 하려고 시간을 끄는 ‘연장책’이 나중엔 오히려 악수가 됐다. 이후 실수가 많았던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고등 최강부 우승자 심재익 군.
중등 최강부에는 송민혁(이세돌바둑연구소)이 우승 상장을 받았고, 김사우(경성중2)는 아쉽게 준우승 상장을 받았다. 3위는 박청호, 최우성(각 양천대일도장)이 이름을 올렸다. 중등부 갑조에는 정지혁(목운중2)이 우승을, 이호영(경성중2)이 준우승을 따냈다. 김병주(문창중1), 김지원(중리중2)은 공동 3위의 성적을 거뒀다.
이날 대회 심판위원장을 맡은 박진솔 6단은 대회가 끝난 학생들의 복기를 도우며 지도하기도 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을 보니 바둑을 진지한 자세로 대하고 있고 실력도 우수한 것 같다”며 “후배들을 보니 예전에 고생했던 생각도 나고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