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윤환 감독과 갈등을 빚고 있는 전북 현대 김 도훈이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심 경을 밝혔다. 이종현 기자 | ||
16일 선수단 미팅에서 경기 기용 여부를 놓고 조 감독과 갈등을 빚게 된 경위에 대해 선수들 앞에서 해명한 후 시즌 마지막 경기에 대기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김도훈은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다”라는 말로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지난 13일까지만해도 김도훈을 3경기 연속 엔트리에서 제외시킨 조 감독은 “어떤 형태로든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김도훈의 책임론을 강조했고, 김도훈은 “책임은 지겠지만 불미스런 모습으로 물러나고 싶지 않다”며 맞섰다.
기자들과 인터뷰하기가 겁난다며 피해 다니는 김도훈을 13일 숙소 부근의 한 식당에서 만나 속사정을 들어봤다. 김도훈은 13일 오전 훈련을 마쳤다. 보통 경기가 있는 날 출전 선수들은 훈련을 하지 않는다. 게임에 뛰지 않는 선수나 2군 선수들 위주로 훈련이 이뤄지는데 김도훈은 그 부류에 속해서 땀을 흘리고 돌아왔다.
“예상외로 일이 커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내가 부상을 당한 상황이었다면 감독님의 결정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몸 상태를 묻는 안부 전화를 받다보니 내 상태를 직접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기자한테 전화가 왔고 내 심정을 하소연했을 뿐이다.” 팬들에게 자신의 무사함을 알리고 싶은 생각에서 꺼낸 얘기가 언론에 기사화되면서 구단과 감독 입장에선 반기나 항명 등으로 확대해석이 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도훈은 전북 현대의 창단 멤버이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원주민’이나 다름없다. 모든 동기들이 은퇴나 ‘밀퇴’, 또는 다른 팀으로 옮겨간 터라 김도훈은 다른 선수와는 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었다.
따라서 내년에 FA(자유계약선수)로 풀린다고 해도 당연히 전북 현대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솔직히 장담도, 자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이렇게 감정 대립의 양상으로까지 치닫게 된 이유가 뭘까. 단순히 선수 기용 여부를 놓고 벌이는 감독과 ‘간판’ 선수와의 대립만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조윤환 감독은 부천 SK에서 전북 현대로 자리를 바꾸며 SK선수를 영입해왔고 7월부터는 1군에서 김도훈, 추은기, 서혁수 외에 기존의 멤버들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했다.
당시 기존 선수들 사이에선 감독에 대한 불만이 고조됐고 비록 주장은 아니지만 최고참이라는 신분 때문에 김도훈이 선수들을 대표해서 조 감독에게 해명을 요구했다가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여파가 김도훈의 2군행이었는데 당시 언론에는 김도훈의 성적 부진과 부상 때문이라고 보도됐다. 김도훈은 히딩크 감독과의 경험을 예로 들며 입장을 설명했다.
“히딩크 감독이 자주 했던 얘기 중에 우리나라 선수들은 게임을 뛰지 못해도 감독을 찾아와 설명을 요구하는 선수들이 없다면서 선수 권리는 선수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걸 강조했었다. 내 권리를 찾기 위해 했던 말이 언론을 통해 나타나면서 확대된 것이다. 지난 여름에 감독님과 한번 부딪힌 이후론 말을 안하고 있다가 막판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가만있다가는 그냥 ‘죽을 것’만 같다.”
선배 입장에서 후배들이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는 걸 보다 못해 감독 앞에서 입장 표명을 했던 일이 2군행으로 결론 났고 김도훈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조 감독에 대한 믿음이 조금씩 색깔을 달리했다고 한다.
우선 FA를 앞둔 김도훈의 몸값을 깎으려는 구단의 의도적인 제스처라는 소문과 김도훈 또한 다른 팀으로 옮겨가기 위해 미리 선수치는 것이라는 상반된 의견들이다.
“지금까지 구단으로부터 최고 연봉을 받았고 대표 선수도 해봤다. 더 이상 욕심이 없다. 난 지금까지도 팀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구단에서 날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그 전엔 전북과의 인연을 끝내고 싶지 않다.”
김도훈은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한 한풀이를 득점왕을 통해 보상받으려고 했다. 자신이 있었고 1위와 골 득실 차가 2골이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당연히 경기 출전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날씨가 추워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벤치도 아닌 엔트리에서까지 제외시켰다는 것. 김도훈은 직접 조 감독을 찾아갔다. 설명을 듣고 싶었기 때문.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진 두 사람의 대화를 옮겨본다.
조 감독이 “몸이 안좋은 것 같았다”라고 말하자 김도훈은 “몸은 괜찮은데요”라고 대답했다. “날씨도 춥고….” 조 감독의 얘기에 김도훈은 “감독님, 축구선수들은 날씨 추우면 근력은 수축되지만 체력은 오히려 더 좋습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슈팅하는 것도 좀 불안하고….” 김도훈은 더 이상 대꾸할 의욕을 잃고 감독방을 나왔다.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감독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감독님의 지적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정당한 평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상의 대화가 필요 없었다.”
김도훈은 그와의 인터뷰 직전에 만난 조 감독이 “팀 고참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인 행동으로 팀 분위기를 해친다”는 지적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을 달리했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은 후배를 챙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면서 월급 받고 수당 챙기는 선수가 이기적인 게 아니냐는 것.
그러나 자신은 후배들의 어려운 사정들을 대변하려다가 오히려 미운털이 박힌 셈인데 어떻게 그걸 이기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월드컵 대표에서 탈락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남한테 나쁜 소리 듣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는데 막판에 이런 모습이 되고 보니 서글프기까지 하다. 축구 선수로서 정상에 오르긴 힘들어도 내려가는 건 식은 죽 먹기 같다. 나도 언젠가는 팬들한테 잊혀지겠지만 좋은 모습으로 잊혀지고 싶다.”
김도훈은 20일 브라질전에 대표선수로 참가할 수 있게 됐다며 굉장히 기뻐했다. 99년 브라질전에서 골을 터트려 팀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기억도 있지만 지금의 어두운 상황에서 잠깐 동안의 ‘외출’로 기분 전환을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2박3일동안 대표팀에서 새로운 냄새를 맡고 오려고 한다. 더 이상 태극마크를 달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 그러고보니 상암경기장에서 뛰는 것도 처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