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금투세 폐지 등 증시 저평가 해소 정책 내놨지만…대통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실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정부와 국회가 꼽은 국내 주식시장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금융당국은 올해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독려·지원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주요국 대비 현저히 낮은 PBR(주가순자산비율) 등 우리 증시의 저평가 해소가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저PBR 기업’들은 저마다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정부의 저PBR 기업 띄우기 때문에 성장 기업을 향한 수급이 감소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저PBR 기업에 투자하면서 국내 증시가 일시적으로 활기를 띠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하반기 들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과 주주 이익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핵심인 상법 개정안 통과에 힘을 쏟았다. 소득세법 개정안은 지난 10일 본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금투세 폐지가 확정됐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소득에 따른 세금 부과는 당연한 일이지만 금투세는 완벽한 시기상조 정책이었다. 오히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길 수도 있는 정책이라고 본다. 국내 주식시장은 기업지배구조 등 후진적 요소들이 너무 많다. 지수 자체도 박스피에서 탈출을 못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국내 주식 투자자들은 수익보다 손해가 더 많다. 투자자들이 세금을 낼 만한 상황이 아니다. 최소한 코스피 지수가 5000은 넘을 정도로 주식 시장이 활성화해야 금투세 실행을 논의할 만하다”고 전했다.
상법 개정안은 여당과 정부가 반대하고 있어 통과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지난 2일 상법상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또는 보호 의무 대신 자본시장법상 합병, 분할 등 자본거래 관련 조항 개정을 통해 일반주주 이익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교과서에만 숨어 있던 지극히 당연한 이사의 주주 보호 의무를 현실화시키고, 해외 장기투자 자금의 한국 시장 진입의 기초가 되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향상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금융당국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주식회사에서 일반주주가 투자한 재산이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활용되는 유형은 비단 합병과 분할 등 자본거래뿐만 아니라 부당내부거래, 자사주 제3자 처분이나 자사주를 이용한 지주회사 전환, 주주 이외의 제3자나 일반에 대한 증자나 저가 증권 발행 등 매우 다양하다. 어느 하나만 금지하면 다른 유형이 나타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논의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일시적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3일 비상계엄 선포, 4일 오전 비상계엄 해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부결 등 불과 3~4일 사이에 정치적인 불확실성이 너무나 많이 제기됐다. 오는 14일에는 윤 대통령 탄핵안 재의결도 예정돼 있다.
국내 주식시장은 혼란스러운 정국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다. 비상계엄에도 휴장 없이 개장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주식시장은 4일부터 9일까지 연속 하락했다. 코스피 지수는 4영업일 동안 5.58%가 하락했고, 코스닥 지수는 9.23% 떨어졌다. 10일부터 여당 측에서 탄핵 표결에 참여하겠다는 의원들이 나오면서 탄핵 정국 조기 종료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증시는 10~11일 상승 전환했다.
종목별로는 보면 상황은 더욱 처참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9일 기준 상장 이후 가장 낮은 주가를 기록한 종목이 280개(코스피 47개, 코스닥 233개)로 나타났다.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1272개에 달한다.
하루하루 정국이 바뀌면서 그에 따른 테마주만 날뛰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테마주들이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테마주도 이 대표 테마주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듯했으나 한 대표가 탄핵 반대로 입장을 바꾸면서 하락세로 전환했다. 7일 탄핵 표결 시 자리를 지킨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테마주는 9일 상한가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윌리엄 페섹(William Pesek) 포브스 수석 기고자는 6일(현지 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절박한 도박이 한국 GDP를 망치는 이유’라는 기고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많은 사람이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이 글로벌 경제 무대에 설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도 입증했다”고 지적했다.
윌리엄 페섹 수석 기고자는 “중국 경제의 둔화, 디플레이션 수출,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으로 인한 무역전쟁 가능성이 겹치며, 한국은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었던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로 인해 한국 정부가 경제적 도전에 신속히 대응할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며 “윤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령 사태의 대가는 한국 국민 5100만 명이 할부로 지불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증권학회 회장인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내년 주식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트럼프 2.0 시대에 대한 우려로 높아진 환율만 놓고 봐도 국내 증시가 반등할 여력이 많지 않아 보인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이미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을 1%대로 예상한다. 전망 자체가 밝지 않는데 정치적 문제로 불확실성이 상당히 커졌다. 한 해 동안 공들였던 밸류업이 밸류다운으로 끝나게 됐다”고 말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