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파괴 전·노씨도 국립묘지 갈 수 있다
11월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엄수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안장식. 사진공동취재단
2010년 8월 15일 YS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YS와 전두환 씨를 청와대 오찬에 함께 초대한 것이 문제였다. 식사자리에서 호되게 면박을 당한 전 씨는 속이 탔는지 와인을 들이켰다. 전 씨가 “와인 좀 더 없느냐”고 하자 YS는 “청와대에 술 마시러 왔느냐”고 다시 타박했다. 결국 전 씨는 예정보다 일찍 자리를 떠났다.
YS와 전두환 씨 두 사람의 35년 질긴 악연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YS의 기억 속에 전두환 노태우 씨는 ‘내란목적살인범’에 불과했다. 1995년 11월 YS는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5·18 특별법을 추진했다. 2년여의 재판 끝에 1997년 4월 대법원은 반란 수괴와 내란 목적 살인, 상관 살해 미수 등의 혐의로 피소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17년 형을 선고했다. 12·12 사태를 일으키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신군부 세력에 대한 역사적 단죄였다.
YS는 임기 말 국민대화합을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을 특별사면했지만 두 사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전 씨는 추징금을 미납해 지금도 수사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YS의 경우처럼 전두환 노태우 씨의 장례절차도 ‘국가장’으로 치를 수 있을까. YS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국가장법이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장법 제1조는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 그 장례를 엄숙하게 집행해 국민 통합에 이바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는 “국가장의 대상은 전직·현직 대통령, 대통령 당선인,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추앙 받는 사람”이라며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를 마친 뒤 대통령 결정에 따라 국가장을 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국가장법은 적용 여부에 따라 내란죄를 저지른 전두환 노태우 씨의 현충원 안장 길을 열어주는 맹점이 있다. 1992년 내란죄 등의 혐의로 공판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 씨.
전두환 노태우 씨는 현행법상 ‘전직 대통령’의 신분이다.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 대통령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 예우가 제한, ‘경호와 경비’만을 받고 있다. 행자부 관계자는 “두 대통령은 예우가 일정부분 제한된 것이지, 완전히 박탈된 것은 아니다”며 “일단 예우를 받고 있어 전직 대통령의 신분을 유지한다. 당연히 국가장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즉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결정만 있다면 전두환 노태우 씨에 대한 국가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장례절차를 국장으로 최종 결정했듯, 대통령이 사실상 장례절차에 대한 결정권을 쥐고 있다.
국가장법의 문제점은 단순히 장례절차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법이 전두환 노태우 씨의 ‘국립묘지행’ 가능성까지 열어뒀기 때문. 2011년 국가장법 개정과 동시에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국립묘지법)’ 제5조도 바뀌었다. 국립묘지법 제5조는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 국가장법 제2조에 따라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의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씨에 대해 국가장을 시행할 경우 이들의 국립묘지행까지 논의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안장대상심의위원회(안심위)가 국립묘지행을 반대할 가능성도 있다. 국립묘지법 제5조 4항에 따라 ‘금고 이상 형의 선고를 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은 국립묘지의 영예성(영광스러운 명예) 훼손 여부에 따라 안심위가 안장 거부 결정을 할 수 있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정책과 관계자는 “안심위는 국립묘지 안장 여부 결정 권한이 있다. 안장 대상들 중 국립묘지 들어가는데 영예성에 흠결이 있는 사람에 대해 안심위가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안심위는 공정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안심위가 전두환 정권 실세에 대해 국립묘지 안장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하나회’ 멤버인 안현태 씨는 2011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안 씨는 육사 17기로 12·12 쿠데타에 참여한 뒤 5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호실장까지 지낸 인물. 안심위는 안 씨가 사면·복권 됐다는 이유로 현충원 안장을 결정했다.
결국 번복됐지만 안심위는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이자 5·18 부상자인 김종완 전 국회의원에 대한 안장을 거부했다. 당시 국가보훈처는 김 전 의원이 ‘특수공무집행방해 및 업무방해’로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안현태 안장 여부는 모르는 일이다. 답변할 수 없다”고만 밝혔다.
더구나 국가원수에 관해서는 ‘전례’가 현행법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전직 국가원수들은 내란과 외환죄를 떠나 임시 국무회의에서 심의를 한다. 국가장으로 결정되면 안심위와 관계없이 안장될 수밖에 없다”며 “역대 대통령은 안심위에서 다룬 적이 없다. 앞으로 전직 대통령들이 사망해도 안심위에서 별도로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상 두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행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국가유공자법마저도 유명무실하다. 국가유공자법 제79조는 “형법 제87조부터 제90조를 위반하여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형이 확정된 사람에 대해 모든 보상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형법 제88조는 내란목적 살인죄에 대한 규정으로 두 전직 대통령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국가유공자는 개인이 신청을 해야 등록을 하는 제도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현재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지 않아 국가유공자법으로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며 “더구나 두 대통령이 받은 무공훈장이 5·18 특별법으로 서훈 취소가 됐을 거다. 나중에 유족들이 등록 신청을 한다고 해도 등록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밝혔다. 애당초 두 대통령이 국가유공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유공자법이 이들의 ‘국립묘지행’을 막을 수 없다는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전두환 노태우 씨의 국가장과 국립묘지행은 현실화 가능한 시나리오다. 5·18 기념재단 김양래 상임이사는 “현재 정부에서 인정하는 유공자들조차 사소한 범죄행위 때문에 국립묘지에 못 들어가고 있다”며 “그런데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도둑질하려고 했던 놈들에 대해 국가장을 하고 국립묘지를 간다면 누가 동의를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2년 장병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이 점을 우려해 “내란죄 등 반국가범죄를 저질러 국가 유공자 자격이 제외된 자는 국가장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취지로 ‘국가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장병완 의원실 관계자는 “3년 전 전두환 육사 생도 사열, 추징금 비납 및 징수 시효 도래 등으로 사회적 논란이 있었다”며 “국가장법은 분명 문제가 있다. 안행위 소위에 계류 중일 뿐 진척은 없다”며 답답한 속내를 내비쳤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국가장은 왜 생겼나 ‘국민장이냐 국장이냐’ DJ 서거 당시 논란 ‘국가장법’이 개정된 이유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장례절차를 두고 갈등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과거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전직 대통령의 장례 절차를 국장과 국민장으로 구분했다. 국장에 대한 소요 비용은 정부가 전액 부담했지만 국민장은 일부를 지원했다. 국민장은 장례 기간이 7일, 국장은 9일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논란 끝에 국장으로 치러졌다. 이종현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족들은 국민장보다 한 차원 높은 국장을 요구했지만 처음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최규하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전례상 국민장으로 치러졌다는 근거를 들었다. 당시만 해도 국장은 재임 중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가 유일했다.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 사흘 전까지도 장례절차를 결정하지 못했다.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6일 국장’을 수용했다. 이에 정부는 “재임 중 서거한 대통령만 국장을 치른다는 원칙이 깨졌다”, “무늬만 국장일뿐이다. 장례기간도 줄었다”는 등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2011년 결국 정부는 이 같은 논란은 불식하기 위해 국민장과 국장 절차를 통합해 국가장법을 개정했다. [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