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혁명의 역사 간직…애잔한 일몰
미얀마의 명소 우베인 다리. 제2의 도시 만달레이 근교에 있다. 오른쪽은 만달레이에 있는 버마 마지막 왕조의 왕궁.
만달레이 왕궁, 즉 로열 팰리스는 1857년에 지어졌습니다. 민돈왕이 아마라뿌라에서 만달레이로 수도를 옮기며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띠보왕 재위 시절인 1885년 영국과의 제3차 전쟁에서 왕궁이 점령당하고 띠보왕은 인도로 추방당하고 맙니다. 왕궁은 영국군 주지사의 관저가 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이 점령해 군사보급창으로 이용되었습니다. 그후 미얀마 정부가 주권회복 차원에서 복원작업을 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재현되었습니다. 제가 가보니, 당시 왕과 왕비들이 사용하던 마차와 집기들이 일부 남았을 뿐 내부는 썰렁한 유적지입니다. 일본군이 퇴각하며 이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버마는 꼰바웅 왕조의 띠보왕을 마지막으로 왕조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왕이 되어 7년간 재위하다 폐위된 띠보왕. 그는 영국군에 의해 가족들과 함께 수레에 태워져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인도로 추방당한 비운의 인물입니다. 그는 인도의 서쪽 해안가 마을 꽁깐으로 유배되고 버마는 18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되며 인도의 한 주로 남게 됩니다. 띠보왕이 인도에서 30년을 살다 1916년 사망하자 수파라얏 왕비는 버마로 돌아왔지만 그의 딸들은 인도에서 결혼해 그 후손들이 살고 있습니다. 유배 시절 살던 저택은 ‘띠보 팰리스’로 남아 여행객들이 찾고 있지만, 기구한 삶을 살았던 띠보왕의 유해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와 미얀마에는 묘한 역사가 남아 있고 아직도 나라간 협의를 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왕 무덤이 인도에 있고, 인도 무굴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무덤은 미얀마에 있습니다. 1858년 독립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인도 바하두르 샤 황제는 버마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가 4년 뒤 버마에서 죽자 영국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그냥 매장해버렸습니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진 무덤이 1991년 양곤에서 공사 중 발견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도내의 복잡한 종교문제로 유해를 옮기지 못하고 묘역만 단장한 상태입니다. 두 나라의 마지막 왕들의 무덤. 기이하게도 서로 이웃나라에 바뀌어 있는 채로 남아 그 슬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답니다. 두 왕들의 유언이 고국에 묻어달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욱 더.
오후 5시. 만달레이 시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근교 우베인 다리로 향합니다. 미얀마 엽서에 등장하는 이 명소는 아마라뿌라 마을에 있습니다. 아마라뿌라는 고대어로 ‘불멸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저녁 5시면 만달레이에 온 유럽인들이 꼭 찾아가는 장소가 우베인 다리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일몰의 시간입니다. 타웅타만 호수의 남과 북을 잇는 1.2㎞, 1000개가 넘는 티크나무로 지은 다리입니다. 160년 넘게 견뎌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입니다. 1851년 잉와궁전의 티크목을 해체하여 아마라뿌라의 궁전을 짓고 남은 것으로 이 다리를 3년에 걸쳐 만들었습니다. 지은 사람이 바로 우베인입니다.
주황빛으로 스며드는 다리 위. 수많은 여행객들이 하염없이 걸으며 고요한 호수와 나룻배와 석양빛을 바라봅니다. 평화로운 시간이자 한편의 서정시처럼 다가오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만나고 사랑하지만, 한때는 혼자 걷는 여인들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나라 8888 민주화 혁명과 2007년 샤프란 혁명이 있던 시기에 만달레이에서도 많은 청년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를 들으며 그 시기에 혼자 걸었을 여인들을 떠올려 봅니다. 이곳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겠다는 이 나라 청년 작곡가가 있어 제가 작사겸 시를 하나 써서 건네주었습니다. 언젠가 이곳에 오시는 한국인들도 듣게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며. 제목은 ‘우베인 다리를 걷는 여인’(The woman, crossing the U Bein Bridge)입니다.
해 저문 저녁 다섯 시면/ 네가 나에게로 건너오고/ 내가 너에게 다가가던 다리/ 오늘 내가 이 다리 위에서/ 온종일 울고 있는 까닭은/ 타웅타만 호수가 고요한 까닭만은 아니다
그해, 만달레이로 가던 길/ 하늘의 별들마저 우리를 시샘하여/ 화약연기 속으로 사라진 이름/ 아주 먼 옛날 잉와왕국 왕비의 꿈처럼/ 썩지 않는 두 그루 티크목처럼/ 살자던 우리의 약속
녹색 론지의 아이들 뛰놀고/ 아름다운 석양, 다리를 적시건만/ 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서/ 네 이름을 부른다/ 나의 사랑, 나의 생명/ 차디찬 나의 아마라뿌라
비가 내려도 만날 수 없다/ 꽃이 피어도 만날 수 없다/ 우베인 다리 위에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