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제기자들, 교묘히 증거 왜곡
박주신 씨의 병역 비리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양승오 박사 측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한 ‘외국학회 소속 의료인의 MRI 연령 추정 요청에 대한 답신 이메일’에 문제가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진은 2012년 2월 22일 서울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이 박원순 시장의 아들 주신 씨의 2011년 12월 9일자 허리디스크 MRI 사진과 이날 촬영한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며 “박주신 씨 본인의 MRI가 맞다”고 설명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2011년 현역병으로 입대한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주신 씨는 재검을 통해 4급 공익요원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주신 씨가 병무청에 다른 사람의 MRI 자료를 제출해 4급 판정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주신 씨는 의혹 해소의 일환으로 2012년 2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 MRI 재검사를 받았다. 공개 재검 후에도 의혹은 계속됐다. 주신 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대표적 인사로는 양승오 박사가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해보자면 이렇다.
‘주신 씨가 최소 35세 이상 남성의 MRI(자기공명영상)를 이용해 현역에서 4급으로 신체등급을 바꾼 병역비리일 가능성이 99.99%다. 2012년 실시한 공개 신체검사 역시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 99.99%다.’
양 박사는 2012년경부터 2014년 6·4 지방선거 기간까지 주신 씨가 대리인을 이용해 병역비리를 저질렀다는 내용을 SNS 등을 통해 설파해왔다. 세브란스병원 공개검증이 다른 사람을 이용한 바꿔치기 눈속임이라는 양 박사 주장의 근거는 크게 MRI와 엑스레이 두 가지다.
양승오 박사
두 번째 근거인 엑스레이는 양 박사의 바꿔치기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주신 씨의 엑스레이 사진은 총 3개다. △지난 2011년 8월 공군훈련소에서 훈련소 퇴소를 위해 찍은 것 △2011년 12월 자생한방병원에서 병무청 제출용으로 찍은 것 △2012년 재검을 위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찍은 것이다. 양 박사는 병무청 제출용으로 자생한방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가 다른 엑스레이 사진들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주신 씨의 것이 아님을 주장했다.
양 박사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의학계에서도 반박 움직임은 있었다. 미국에 거주 중인 혈액종양내과전문의 박효종 박사는 지난해 9월 <일요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MRI 사진을 통한 의혹에 대해 “골수신호강도연령추정론은 의학적 근거가 없다”며 “나이가 들수록 뱃살이 찌는 일반적 경향이 있는 건 맞지만 20대 특정인이 뱃살이 많다고 해서 20대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 박사는 엑스레이 의혹에 대해서도 “‘설명불가’ 상이점(Inexplicable Difference)이 보인다면 비동일인으로 판독해야 하지만, ‘설명가능’하다면 비동일인 판정은 불가능하다. 동일인 판정을 하려면 공통된 특이점을,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는 정도까지 많이 찾아내야 한다”며 “영화 <국제시장>에서 막순이 귀 뒤의 검은 점처럼 공통된 특이점을 많이 찾아내도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반박해 버리면 되니까 동일인 판정은 비동일 판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일요신문> 취재결과 양 박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몇 가지 근거가 일부 왜곡됐다는 단서가 포착됐다. 먼저 양 박사는 주신 씨의 MRI를 골수신호강도 패턴상 최소 35세 이상일 확률 99.99%라는 주장이 영상의학계에서 단독 의견이 아니라며 해외 교수들의 견해를 소개했다. 양 박사는 태국 치앙마이대학교 너트(Nuttaya) 교수(박사)에게 주신 씨의 MRI 연령 추정 요청을 했다. 이에 너트 박사가 “40대 후반 또는 60대로 추정된다. 성인의 골수, 디스크 약간 돌출, 인대가 두꺼워져 있고 상당한 양의 내장지방이 보인다. 척추전위증이 통증을 수반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는 소견을 밝혀왔다는 답신 이메일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증거로 제출된 메일과 실제 너트 박사에게 보낸 원본 메일은 달랐다. 실제 메일에서 양 박사는 ‘첨부된 사진을 보고 환자 나이가 얼마로 보이는지 솔직히 대답해 달라. 30~35?, 36~40? 또는 그 이상’이라는 질문을 했다. 양 박사는 재판부에 이 내용을 삭제하고 제출했다. 양 박사가 해당 MRI 환자의 나이가 30세 이상이라고 유도한 사실을 재판부에 숨기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8차 공판에서 양 박사의 모습도 이상했다. 이날 검찰은 양 박사에게 주신 씨의 이름을 지운 MRI 캡처 파일(JPG)과 같은 골수 패턴을 보이는 다른 20대 환자의 MRI 캡처 파일을 함께 제시하면서 각각 연령을 추정해보라는 반대 신문을 했다. 이에 양 박사는 실제 MRI 영상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연령 측정을 할 수 없다며 측정을 거부하는 증언을 했다. 하지만 양 박사가 너트 박사에게 연령 측정을 해보라며 보낸 메일의 첨부된 MRI 사진도 원본을 캡처한 JPG 파일이었다.
즉, 너트 박사의 말이 신빙성을 갖는다면 JPG 파일은 판단할 수 없다고 한 양 박사가 법정에서 위증을 한 셈이고, 양 박사의 말이 맞는다면 JPG 파일로 연령 측정을 한 너트 박사의 소견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일요신문>은 너트 박사의 이메일로 이와 관련된 입장을 물었으나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세브란스병원 공개신검을 주도한 엄상익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양 박사 등에게) ‘어차피 제가 박주신 씨가 진짜 검증을 받았다라고 말해도 안 믿을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며 “공개 검증을 하고 재판이 계속돼도 사진 몇 장만으로 동일인물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공개 검증에 참여한 사람들이 두 눈으로 봤다고 해도 실상이 아닌 MRI 사진만 보고 ‘박주신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의혹과 관련된 입장을 묻기 위해 양승오 박사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차기환 변호사가 제 대리인이니 (그쪽으로) 연락해 달라. 워낙 예민한 시기라 그렇다”고 답했다. 차 변호사는 “이번 의혹에 대한 의견은 재판부에 의견서로 전달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검찰 구형은 1월 20일. 사건 관계자들은 검찰 구형 이후 한 달 이내 판결이 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이 아들 병역 의혹을 털고 오히려 정치적 입지도 더 확고해질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다른 견해도 있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이번 사건이 다분히 정치적 사건으로 변질돼 박 시장이 의혹을 턴다 해도 큰 반사 이익을 거두지 못할 것으로 본다. 만약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도 조금 더 정치적 위치가 안정성을 획득하는 선에서 그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양 박사가 거짓 의혹을 제기했다는 쪽으로 귀결난다면 재판부에서 일벌백계를 해 다가오는 총선, 대선에서 허위사실이 유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