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산 ‘클린디젤’ 더티플레이로 급제동
최근 저유가로 친환경차의 인기가 시들하고, 시장의 관심은 무인차와 같은 스마트카에 집중되고 있다. 친환경차와 스마트카는 성격이 다르지만, 한마디로 아우를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자동차의 ‘디지털화’다. 기술적으로 먼저 선보인 친환경차를 이해하면 스마트카를 이해하기 쉽다.
현대차가 지난 14일 국산 최초 친환경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 하이브리드’를 선보여 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사진제공=현대차
위에서 언급한 친환경차 중 가장 먼저 나온 카테고리는 이종(異種)의 혼합을 뜻하는 하이브리드(Hybrid)다. 자동차에서는 내연기관과 전동기관을 합친 것을 뜻한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하이브리드카는 1997년 도쿄모터쇼에서 공개된 도요타의 ‘프리우스(Prius)’로 2000년 판매가 시작됐다.
지금은 친환경차가 흔해졌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 2000년대 중반 브래드 피트, 줄리아 로버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프리우스를 타면서 ‘생각 있는’ 스타로 비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2009년 현대자동차가 ‘아반테(HD) LPi 하이브리드’를 국내 최초의 하이브리드카로 내놓았다. 당시 ‘세계 최초’가 목말랐던 듯 가솔린이 아닌 LPG엔진에 전동모터를 장착해 ‘세계 최초의 LPG 연료 기반 하이브리드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프리우스가 저속에서 내연기관의 개입 없이 모터만으로 주행이 가능한 ‘풀 하이브리드카’였던 반면,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모터가 엔진의 힘을 보조해주는 역할만 하는 ‘마이크로 하이브리드카’였다. △엔진 스톱 앤 고(정지 시 엔진이 잠시 꺼지는 기능) △회생 제동 브레이크(브레이크를 밟으면 회전하는 바퀴가 발전기를 돌리는 기능) △주행 시에만 엔진을 보조하는 모터, 이 세 가지 기능을 갖추면 마이크로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 더해 모터 자체만으로 주행이 가능하면 풀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카는 도심 교통 체증 시 멈춰 있거나 저속일 때 엔진이 멈춰 있음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풀 하이브리드라야 그 목적에 부합하겠지만, 연비를 개선하는 것도 친환경에 부합하므로 낮은 비용으로 하이브리드카를 보급할 수 있는 마이크로 하이브리드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현대차는 2010년 ‘쏘나타(YF) 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면서 비로소 풀 하이브리드카를 갖춘 메이커가 됐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는 도요타에 선수를 빼앗긴 하이브리드보다는 연료전지차에 집중하고 있었다. 또한 도요타의 경쟁자인 닛산은 순수전기차(EV)에 매진해 2010년 ‘리프(Leaf·나뭇잎)’를 내놓았다. 2010년 당시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카, 닛산의 순수전기차, 현대차의 연료전지차가 친환경차 주도권을 두고 삼국지를 벌이는 형국이었다. 여기에 폭스바겐, 푸조 등 유럽차들이 이른바 ‘클린 디젤’을 표방하면서 친환경차 주도권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단 연료전지차는 완패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는 2013년 ‘투싼ix’를 개조한 연료전지차 양산을 시작했으나,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지난해 도요타가 연료전지차 ‘미라이(未來)’를 출시하면서 시장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모름지기 신차를 출시할 때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지 않는 이상 관심을 받긴 힘든 법이다.
2015년까지 현대차의 친환경차는 가솔린 모델을 개조한 것으로, 출시 때마다 시장의 큰 관심을 받진 못했다. 현대차는 지난 14일 비로소 자사 최초의 친환경차 전용 모델인 ‘아이오닉(IONIQ) 하이브리드’를 내놓았다. 저유가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데다, 프리우스가 나온 지 16년 뒤라 시장의 관심을 얼마나 받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순수전기차의 경우는 닛산 리프가 해외에서 꾸준히 판매되며 ‘세계 1위 전기차’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차고가 있는 단독주택’이 많은 미국이 아닌 경우는 충전에 대한 불편함·불안감 때문에 내연기관만큼 보급되지는 못하고 있다.
폴크스바겐 골프 블루모션(위), 도요타 프리우스 1세대(왼), 닛산 리프
전기차는 닛산 리프처럼 배터리를 충전해서 쓰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쉐보레 ‘볼트(Volt와 Bolt 모두 해당)’처럼 가솔린 연료로 바퀴를 구동하지 않고 오로지 발전기를 돌려 전기를 모터에 공급해 주행하는 방식도 있다. 미국처럼 넓은 나라에서는 볼트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한편 하이브리드카는 순수전기차의 성격이 추가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한 단계 진화했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출퇴근 같은 50㎞ 이내 주행에는 밤새 충전한 전기로만 구동되고, 충전량이 떨어지면 내연기관을 가동한다. 또한 강변북로·올림픽대로와 같은 자동차전용도로에서는 스위치 조작으로 전기모터 개입이 없는 순수 내연기관 모드로도 운행이 가능하다. 하이브리드카는 도심에서의 저속 주행에서만 연비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테슬라모터스는 속도와 주행거리를 획기적으로 높이고 고가에 파는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중차 브랜드들이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친환경차의 스펙을 낮추는 사이, 테슬라모터스는 오히려 고가의 럭셔리한 전기차를 만들어 부자들을 유혹했다. 내연기관은 엔진회전수를 올리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전기모터는 전기가 공급되는 순간 최대토크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카에 오히려 더 잘 어울릴 수 있다.
순수전기차들이 쏟아지던 2010년 이후 불과 5년여가 지났지만, 모터와 배터리 성능은 반도체 성능 업그레이드 속도만큼이나 급속히 발달하고 있다. ‘무겁고, 투박하고, 비싸던’ 전기차는 ‘가볍고, 세련되고, 싸지고’ 있다. 이런 기술을 기반으로 구글과 애플과 같은 IT기업은 전기차를 활용해 무인자동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겁고 맹렬하고 매연을 내뿜는 내연기관보다는 가볍고 심플하고 매연이 없는 전기차가 ‘스마트카’라는 이미지에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 자동차는 이제 친환경을 넘어 스마트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우종국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