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들의 아바타 곳곳에서 국지전
박근혜 대통령이 내리 4선을 한 대구 달성군에는 일찌감치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똬리를 틀었다. 지난 12월 14일 달성군청 앞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연 곽 전 수석은 “특명을 받았다”며 본인이 진실한 사람들임을 천명했다.
“달성군은 대한민국의 정치1번지”라고 한 그는 자신의 이름 첫 자음인 ‘ㄱ ㅅ ㄷ’이 달성군의 ‘ㄷ ㅅ ㄱ’과 순서만 다르지 같다며 적임자를 자처했다. ‘특명 받은 곽상도’라는 슬로건은 마치 청와대로부터 ‘어명’을 받았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곽 전 수석은 이날 “달성군이 다시 대통령과 연결돼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이 지역구 현역인 이종진 의원이 유승민 의원과 가깝기 때문에 청와대와 단절됐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곽 전 수석은 지난 11일 대구 중·남구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대구 정치의 중심이자 최전선인 중남구로 뛰어들겠다”고 했다. 중·남구 역시 친유승민계로 손꼽는 김희국 의원의 지역구이지만 이미 이곳에는 9명의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등록된 상태. 대부분이 본인이 진박이라 공언해왔는데 ‘특명 받은 곽상도’가 중·남구 출마로 선회하자 ‘멘붕’에 빠졌다.
한 예비후보는 “정치적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불리해지면 불출마를 하면 되지”라고 혀를 찼다. 왜 지역구를 바꿔서 진박끼리 혼란을 자초하느냐는 이야기였다. 정치권에서는 곽 전 수석을 달성군으로 내려 보낸 장본인으로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을 꼽고 있다. 곽 전 수석도 그 수석의 말만 믿고 ‘특명 받은’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 간에 특별한 인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어 해당 지역에서도 소문만 무성하다.
곽 전 수석이 빠진 달성군에는 추경호 전 국무조정실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하면서 진박을 자처하고 나섰다. 대구 달성군이 고향인 추 전 실장은 대표적인 재정통으로 경제기획원(기획재정부 전신)에서 이력을 쌓아온 엘리트로 꼽힌다. 추 전 실장은 “고향 달성군의 발전과 한국 경제의 활성화 등을 위해 고심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곽상도 전 민정수석, 이인선 전 부지사.
추 전 실장은 2014년 7월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에 내정됐는데 당시 인사에는 A 의원의 고교 동문도 덩달아 한 핵심 기관장으로 내정되면서 한창 A 의원의 파워가 회자되던 시기였다. 특히 A 의원이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정호성 부속·안봉근 국정홍보 비서관)’으로 불리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과 긴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는 데다 대구 달성군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과 다름없어 추 전 실장의 공천은 거의 확실시된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해석이다. 새누리당 내에 비토할 그룹이 없다는 얘기다.
대구 서구에 출마한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인지도 제고에 혈안이 돼 있지만 힘에 부친다는 것이 해당 정가의 설명이다. 지역 유력 언론이 해당 지역구의 현역인 김상훈 의원을 밀고 있다는 말이 들리고도 있다. 좀처럼 윤 전 수석이 뜨지 않아 후보 교체론이 회자한 적도 있지만 곽 전 수석과 추 전 실장 사례처럼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지역에서는 윤 전 수석을 경북의 친박 핵심인 C 의원이 밀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자신의 지역구가 헌법재판소의 지역구 재획정 결정으로 사분오열될 위기에 있는 C 의원은 본인도 대구 서구 출마설로 시달린 바 있다. 하지만 고교 동문인 윤 전 수석을 대구 서구에 출격시키면서 출마설로부터는 한발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권은희 의원, 하춘수 전 은행장.
북구갑에는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과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나섰지만 전 전 관장은 고향인 경북 울진으로, 김 전 비서관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결국 ‘권은희 대항마’로 하 전 행장이 투입되는 모양새로 비쳐 그 배후를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지난해 새누리당의 의원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이라는 건배사를 해 물의를 빚었던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결국 대구 동구갑을 선택했다. 경북고 동기동창인 류성걸 의원을 향해 칼을 빼든 것이다. 경북고 동문들 사이에선 “어떻게 친구의 등을 겨눌 수 있나”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지만 류 의원에 대한 비토 여론도 적지 않다고 알려졌다.
정 전 장관이라는 ‘말’을 누가 움직이고 있느냐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결국 ‘총선 필승’이라는 건배사가 ‘총선 출마’로 이어진 것이어서 혹 배후로 거론될 경우 정치적 곤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현 새누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이 류 의원이라는 데 있다. 정 전 장관이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당원 등록을 한 뒤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선관위에 등록할 당시, 류 위원장은 대구시당에 당원 심사를 좀 늦추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할 정 전 장관의 당원등록 과정에 개입하면서 샅바싸움을 시작한 셈이다.
대구 정가의 이런 소란스러움을 두고 지역에서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진짜 진박은 누구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진박을 자처한 이들 예비후보들이 과연 진짜 특명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박심(박근혜 대통령 의중)을 빙자한 친박계 의원들의 ‘아바타’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