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검객 모아다가 사료 포대만 털었다
‘하베스트 부실 인수 혐의’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는 등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수사들이 거의 실패로 끝나면서 체면을 구겼다. 일요신문 DB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가 기소 당시 강영원 전 사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배임. 지난 2009년 캐나다 자원개발업체 하베스트의 정유부문 자회사 노스아틀랜틱리파이닝(NARL·날)을 인수하면서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손해를 끼쳤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당시 시장가는 1주당 7.31캐나다달러 수준이었는데 30% 이상 높은 1주당 10캐나다달러에 사들여 5500억여 원의 손실을 끼쳤다는 게 검찰 측의 근거. 지난해 특수1부가 해외 자원외교 비리를 수사하며 에너지공기업 고위 관계자를 기소한 첫 사례였다.
검찰은 강 전 사장이 2009년 10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을 만난 직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인수금액 4조 원이 넘는 캐나다 자원개발 업체 하베스트와 자회사 날 인수를 즉흥적으로 결정했다고 봤지만, 배임에 대한 법원의 기준은 깐깐했다. 배임죄를 인정하려면 적절하지 않은 거래 동기가 있어야 하고, 그를 통해 강 전 사장이 기대할 수 있는 개인적인 이익이 입증되어야 하는데 강 전 사장에게서는 그런 정황과 처벌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그리고 강영원 전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야심차게 진행했던 수사들은 거의 모두가 실패로 끝났다. 상반기부터 찬찬히 짚어보자. 강영원 전 사장 사건에 앞서 수사 대상으로 삼았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사전 구속영장 실질심사 당일 자살을 선택했다. 성완종 회장이 한 통의 전화와 주머니 속 남기고 간 50여 글자가 적힌 종이는 ‘성완종 게이트’로 이어졌지만, 사건은 특수1부가 아닌 ‘성완종 특별수사팀’으로 넘어갔다. 자살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특수1부의 강압 수사 논란은 크게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성 회장이 정치권을 향해 금품 로비를 했던 정황을 일부 포착하고 수사 대상을 선택했던 특수1부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말이었다.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검찰 관계자는 “성완종 회장이 돈을 건넨 구체적인 정치인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성 회장이 죽기 직전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돈을 건네도록 지시한 측근의 병원까지 찾아가서 돈을 주고받은 것을 단속하고, 만약을 대비해 측근을 한 명 더 데리고 갔던 걸 보면 우리 수사에서 금품 로비를 했던 내용들을 스스로 밝히려 한 게 아니겠느냐”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수1부는 성완종 특별수사팀이 꾸려진 뒤 한 발 물러나 자원외교 수사에 주력했지만, 성완종 회장의 자살 여파는 컸다. 금융감독원과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 금융 지원 로비 관련,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인사 청탁’을 대가로 경남기업 채권은행에게 외압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되며 체면을 구겼다. 강영원 전 사장과 김신종 전 한국광물자원공사 사장을 각각 자원외교 수사의 결과물로 불구속 기소했지만 강 전 사장은 최근 무죄를 받았다.
특수1부는 지난해 하반기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했다. 부부장급 검사 등을 충원해 두 팀으로 꾸려 수사에 착수한 것. 이 때 특수1부가 선택한 ‘아이템’은 농협중앙회와 대한체육회 비리 의혹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상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얼마 전 마무리한 농협 수사는 당초 목표로 삼았던 최원병 회장의 ‘발끝’에도 가지 못했다. 최원병 회장 최측근의 비리와 그 중 일부를 최 회장이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지만 처벌로 입증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게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결정적인 인물에 대해 청구한 영장이 기각되면서 흐름을 이어가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최원병 회장 대신 전 축협 대표 격인 축산경제 전·현직 대표를 각각 기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료 포대만 털었다”라는 비아냥거림만 받았다.
대한체육회 수사는 청와대 하명수사의 맹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거악 척결이라는 특수부의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기업들을 적발하는 데 그쳤다. 기업들을 거쳐 대한체육회로 특수1부의 칼날이 갈 것이라는 추측과 달리 수억 원 규모의 대한체육회 지원금을 챙긴 기업 대표들만 기소한 채로 끝났다. ‘잔챙이만 잡았다’는 평이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최강 칼잡이’들만 모아놓는 특수1부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특수수사에 밝은 한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요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는 예전 중수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진짜 전국에서 제일 잘한다는 검사랑 수사관 다 모아놓은 특수1부가 결국 저렇게 되잖아요. 이건 특수1부가 수사를 못한 게 아니라 특수수사 구조의 한계인 겁니다. 5명의 검사가 수백 명이 대응하는 기업을 상대로 특수수사를 성공한다는 게 예전처럼 쉽지 않은 거죠. 검사만 몇 십 명씩 달라붙던, 과거 대검 중수부와 같은 수사 기구 부활의 필요성을 다시 일깨워 준 셈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특수수사의 실패가 청와대 하명수사의 폐해 때문이라는 것.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내에서는 청와대의 대한체육회 의혹 관련 하명 수사 지시에 박성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현 서울고검장)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얘기도 나왔다. 대한체육회 관련 의혹은 특수1부에서 할 만한 사건이 아니라며 청와대의 지시를 거절했지만, 청와대가 다시 수사를 지시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착수한 수사라는 소문이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의 성패는 치밀한 내사 여부에서 갈린다”며 “청와대 하명에 따라 충분한 내사 없이 급하게,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으니 당연히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윤하 언론인
인사이동 보면…특수부 성적표 보인다 특수3·4부 부부장 요직 배치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장과 대검찰청 형사2과장. 사법연수원 30기인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와 특수4부 부부장검사들이 새롭게 받게 된 보직이다. 영전이라는 게 검찰 내 지배적인 평가다. 그리고 그 영전의 배경은 특수3부와 특수4부의 지난해 우수한 성적이 있었다. 민영진 전 사장, 박기춘 의원. 특수4부(부장검사 배종혁)도 특수3부 못잖았다. 박승대 특수3부 부부장이 특수4부에서 진행한 박기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뇌물 수사 역시 성공적이었다. 수억 원을 받아 챙긴 정황을 포착했고, 박 의원이 검찰 소환 전 혐의를 다 인정할 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얼마 전 법원에서 실형을 받아내는 데도 성공했다. 특수1부(부장검사 임관혁)와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가 농협과 포스코 등으로 죽을 쒔던 것과 대비되는 성과. 성과는 자연스레 인사로 연결됐다. 박기춘 의원 사건과 민영진 전 KT&G 사장 사건을 담당했던 박승대 특수3부 부부장이 가게 된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는 최근 강력통 검사들이 줄곧 가서 실력을 인정받곤 하는 자리. 30기고, 별다른 특수 경험이 없다고 평가받던 박승대 부부장에게 첫 부장 자리로 요직을 줘, 기회를 줬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수4부에서 함께 박 의원 수사를 진행했던 강지성 부부장 검사 역시 대검의 요직으로 발령 나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형사2과는 전국에서 발생하는 각종 주요 형사 사건을 보고받고 지휘하는 자리. 성과를 바탕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다는 ‘대검’에 안착한 셈이다. 뛰어난 실적은 부장급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석우 특수3부장은 서울중앙지검에 한 번 더 남아 특수2부를 이끌게 됐고, 동국제강 횡령 및 도박 수사를 담당했던 정통 칼잡이 한동훈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 역시 그 성과를 인정받아 부정부패수사단 팀장으로 영전했다. [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