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정말 ‘대형사고’ 터진다
국토부는 지난 11일 저가항공사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인천(화물기 전용)에 대한 특별점검에 들어갔다. 일요신문 DB
“지금 항공이 완전 코너에 몰렸어요.”
특별안전점검(특별점검)을 앞두고 국토부 한 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해 한숨을 쉬며 토로했다. 저가항공사의 안전 문제가 늘 우려되긴 했지만 이렇게 봇물 터지듯 이슈가 터질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 11일 저가항공사 6개사에 대한 특별점검에 들어갔다. 점검 대상은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인천(화물기 전용) 등이다. 최정호 국토부 차관은 특별점검 3일 전에 항공사 대표들을 긴급 소집했다. 최 차관은 “특별점검을 해서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히 노선도 줄이고 운항도 정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 차관의 강력한 엄포에 회의실 분위기는 싸늘히 얼어붙었다.
저가항공사들의 불길한 조짐은 지난해 말부터 감지됐다. 지난해 12월 23일 오전, 김포공항을 출발해 제주를 향하던 제주항공 여객기 7C101편이 1만 8000피트 상공에서 8000피트로 갑자기 급강하했다. 갑작스런 저공비행에 150여 명의 승객들은 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을 겪으며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문제는 기내압력조절장치 이상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주항공의 사고가 터진 후 일주일 후에는 푸켓발 인천행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이륙 전 기체 결함이 발견돼 긴급 점검에 들어갔다. 이스타항공은 이미 12월 중순에 186명의 승객을 태운 인천발 홍콩행 여객기가 기체 이상으로 이륙 50분 만에 회항한 바 있어 원성은 더욱 높아져갔다. 그러던 중 지난 3일 새벽에 발생한 진에어 여객기 LJ038편의 ‘출입문 고장’ 사고는 저가항공사에 대한 안전우려에 ‘정점’을 찍었다. 출입문이 덜 닫힌 비행기는 소음에 휩싸였고, 이륙 30분 만에 회항하기에 이르렀다. 연말연초에 무려 4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사고들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도 있다. 언론에 공개돼 여론의 관심을 받는 사건 외에도 저가항공사 내부에서 숨겨진 사건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안전에 대한 ‘안일함’이다.
B 저가항공사의 경우 조종사들이 경영진의 회식 자리에 자주 불려가 빈축을 샀다고 한다. B 항공사 한 내부 관계자는 “경영진 일부가 틈만 나면 조종사를 술자리에 자주 불렀다. 마치 충성도 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종사 비행스케줄 등을 감안하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라며 “비행이 끝난 스튜어디스를 회식자리에 부르기도 했다. 대형 항공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반적으로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상당했다”라고 귀띔했다.
저가항공사의 이러한 일부 일탈은 소위 ‘대박’에 따른 후폭풍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저가항공사들의 국내선 점유율은 51.7%를 기록해 대형항공사(48.3%)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선 점유율 역시 곧 대형항공사를 따라잡을 기세다. 특히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5개 저가항공사의 성장률은 23.5%로 대형항공사 성장률(5.8%)의 ‘4배’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식시장에 진출하는 꿈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11월 제주항공은 저가항공사 최초로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상장 첫날부터 공모가 3만 원을 훨씬 웃도는 4만 원대에 거래되며 아시아나항공 시가총액을 단숨에 뛰어넘는 등 이슈를 일으켰다.
문제는 이러한 눈부신 성장세를 받쳐줄 만한 ‘기반’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통상 비행기 사고는 항공사가 급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력과 시스템은 부족한데 밀려드는 손님은 받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대형사고 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저가항공사들의 부족한 정비인력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국토부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3400명, 아시아나항공은 1330명의 정비인력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제주항공은 240명, 이스타항공은 120명, 티웨이항공은 148명 정도의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대형항공사의 경우에는 정비인력이 훨씬 많은 게 당연하지만 ‘보유 기체당 정비인력’을 따져봤을 때 저가항공사가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기 기령 또한 저가항공사 5개 업체 평균 12.6년으로, 대형항공사 평균 9.3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노후하다. 하지만 저가항공사 입장에서는 자칫 외형과 인력을 증가시키면 인기가 높은 저가항공권의 지위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이도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는 상태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국토부에서 저가항공사들에 대한 점검을 너무 안일하게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한 항공업계 전문가는 지난 9일 발생한 ‘진에어 버드스트라이크’ 사건을 예로 들며 설명했다. 지난 9일 오전 김포발 제주행 진에어 여객기가 이륙 직후 엔진에 새가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회항하는 사고가 있었다. 저가항공사에 대한 안전 우려가 커졌고 국토부가 특별점검까지 발표했던 시기였지만 “진에어가 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이었다. 국토부 역시 별다른 조사 없이 사고 조사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항공업계 전문가는 “사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가 엔진 두 개에 모두 들어가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만약 대형항공사였으면 관제탑과의 교신, 비행 상황 등 훨씬 다각적인 조사를 벌였을 것이다. 항공법상 버드스트라이크의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준사고’로 판명이 날 수 있다. 국토부가 아직까지도 저가항공사에 대한 사고 조사에 미적지근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