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이대로면…차이나타운 될 판”
일본 도쿄의 신오쿠보에 위치안 코리아타운 풍경. 절정기에는 500여 개에 이르던 한인 상점이 현재 350여 개로 줄었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는 신오쿠보를 중심으로 일본 내 대표적인 코리아타운이 형성돼 있다. 앞서 10여 년 전만 해도 신오쿠보에 한인 가게는 20~30여 개에 불과했다. 대신 오쿠보에서 신오쿠보로 이어지는 도로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중심으로 밀수나 매춘이 공공연히 이뤄지는 대표적 우범지역이었다.
이후 신오쿠보 개발과 한류붐이 시작되면서 중국인들과 동남아시아인들이 자리를 뜨고, 한인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11년에는 K-POP이 주도한 한류 열풍에 힘입어 한인 상점은 500여 개에 육박할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코리아타운이 예전의 활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고 시작했다.
지난 1월 11일과 12일 기자가 직접 찾은 코리아타운은 여전히 길거리에 K-POP 노래가 흘러나오고, 쇼윈도 TV에서는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영상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 행인들도 꽤 많아 보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호황을 누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음식점 등 상점을 운영하는 한인들은 하나같이 “코리아타운 장사 안 되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가”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고깃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신오쿠보는 한국으로 치면 신촌과도 같아 교통의 중심지다. 그래서 옛날부터 유동인구는 많았다. 다만 이 유동인구가 가게로 들어오는 손님으로 연결되지 않아 매출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실을 방증하듯 코리아타운 식당가 골목에는 ‘꽃미남’ ‘상남자’ 등 모자를 쓰고 화장을 진하게 한 잘생긴 젊은 남성들이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매출은 한창 한류붐이 좋았던 3~4년 전과 비교해 60~70% 정도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만 5000명 정도 찾던 방문객은 4000여 명으로 줄었다. 그러자 한인상점들도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신주쿠한인상인연합회 오영석 회장은 “절정기에 500여 개에 이르던 한인상점이 현재 350여 개로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신오쿠보에서 20년 넘게 조그만 음식점을 운영해 왔다는 B 씨는 “우리 가게처럼 옛날부터 규모를 작게 해오던 곳들은 매출이 절반 가까이 떨어져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2010년대 K-POP 한류붐을 타고 상점을 큰 규모로 차린 상인들은 비싼 일본의 임대료를 감당하며 운영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코리아타운 경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무너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인 상인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정부 이후 악화되기 시작한 한일관계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2년 8월 행해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상인들은 비판했다. 큰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는 C 씨는 “지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한인 상인들 중 많은 이가 가게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당시에 상권은 나쁘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 등 정치적 위기 상황 속에 반등을 위해 독도를 방문하면서 한일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신주쿠·시부야 등 도쿄 중심지에서 반한시위, 혐한운동이 다시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한일관계는 더욱 나빠지면 나빠졌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한인상점의 매출은 급락했다. 한인들이 상점을 유지할 수가 없다. 가게 주인이 많이 바뀌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일본인 개인이 아닌 일본회사가 한인상점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한국식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D 씨는 “일부 일본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영업·접대 등을 위해 한인가게를 이용한 영수증은 환급 처리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일본 직장인들이 한인가게를 찾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D 씨는 “장기 불황을 견디며 일본 사회의 경기는 점점 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기 호전의 혜택을 한인들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운영난을 겪고 있는 한인들의 상점이 하나둘 폐점하자 그곳에 중국인을 비롯해 동남아인들의 상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앞서 A 씨는 “코리아타운 곳곳에 한국 음식점이 빠진 자리에 중국 음식점이나 동남아 사람들의 상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면서 “중국 상점이 많이 들어서는 것은 코리아타운뿐 아니라 일본의 전반적 추세인 것 같다. 아무래도 중국인들이 일본으로 관광을 많이 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코리아타운 거리에 위치한 한 대형 면세점에는 이른 아침부터 단체 중국인 관광객들이 몇 대의 버스를 타고 방문해 쇼핑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 회장은 “십수 년 전 코리아타운 조성과 함께 신오쿠보를 떠났던 중국인과 동남아 사람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라면 ‘코리아타운’이 아니라 ‘다문화타운’이라고 호칭을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인상인회는 이러한 위기를 스스로 극복하고 새로운 한류 열풍을 이끌기 위한 여러 가지 해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오 회장은 “한일관계의 악화로 경기가 어려웠다고 한국 정부 탓만 하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상인들 스스로 살아날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며 “코리아타운 내에서 한국영화제를 열고 있다. 지난해 2회를 진행했고, 올해 3회 영화제를 앞두고 있다. 또한 김치, 전통차, 사물놀이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조성할 계획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리아타운을 찾기 쉽도록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셔틀버스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도쿄=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전단지 돌리는 아이돌 빛 못본 보이그룹, 여기 다 있었네~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거리에서는 음식점 전단지를 나눠주며 홍보를 하는 젊은 남성들 외에도 전단지를 나눠주는 남성들이 또 있었다. 이들은 음식점 호객 행위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과는 또 다르게, 연예인급의 더욱 뛰어난 외모를 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정말 코리아타운 내에서는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가수들이 직접 거리로 나와 팬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홍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공연 홍보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한국 아이돌 출신들. 코리아타운 내에는 K-POP 한류 열풍에 힘입어 몇 군데 소공연장이 있다. 그곳 공연 스케줄이나 포스터를 보면 매일 남성 아이돌그룹들의 공연이 있었다. 그 중 일부는 ZPZG, DNT 등 과거 한국에서 어렴풋이 이름은 들어본 그룹도 있었고, 전혀 처음 보는 그룹도 있었다. 실제 소공연장에서는 한국에서 아이돌로 데뷔했다가 뜨지 못한 그룹이나, 혹은 재일교포·이민자들 중 잘생긴 외모의 젊은 남성들이 모여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하며 활동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잠시 활동했다는 한 가수는 “가수가 직접 거리로 나와 전단지를 돌리는 것이 일종의 일본 문화라고 한다. 나도 이런 적이 처음이라 적응이 안 된다. 그렇지만 팬들과 직접 만나 소통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 가수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동안 일본인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다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떤 팬들은 거리를 두고 떨어져 고가의 카메라로 가수들이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을 담기도 했다. 그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코리아타운의 공연 연예 활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일본 대형 음반사의 한 관계자는 “코리아타운의 소공연장 운영자 중 일부는 코리아타운 내에서 가게를 하며 큰 돈을 번 상인이다. K-POP 한류 열풍이 불자 그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사업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인들은 일본 내 한인들 중 젊고 잘생긴 이들이 있으면 무작정 붙잡고 가수해보라고 하면서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그들이 연예 매니지먼트나 음반 제작을 운영해본 적이 있겠느냐. 음반·공연의 질이 떨어지다 보면 결국 한류에 대한 인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