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빠진 곰도 곰, 어찌 연어가 곰을…”
노회찬 전 의원, 안철수 의원, 이준석 전 비대위원 등이 출마를 준비하거나 선언한 노원병이 20대 총선 최대의 흥행지로 떠올랐다. 사진은 노원구 상계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26일 오전 8시를 갓 넘긴 이른 아침, 당고개역 주변은 세찬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노원병은 상계1~5, 8~10동을 포함하고 있다. 당고개역은 상계3·4동에 있다. 버스에서 이제 막 내린 직장인들은 추위 탓인지 잔뜩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역 앞 노점상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어묵 국물에선 김이 모락모락 났고 얇게 펼쳐진 달걀 프라이가 지글지글 익고 있었다. ‘탁탁’ 계란을 뒤집는 능숙한 손놀림과 함께 종이컵에 담겨진 토스트가 손에서 손으로 옮겨졌다. 23년 동안 꼭두새벽부터 매일같이 장사를 했다는 오 아무개 할머니(여·75)는 40년 ‘상계동 토박이’였다.
“한나라당에서 나온다는 그 젊은 사람 아녀?”
고단한 삶 탓에 시계가 멈춰있었던 걸까.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아느냐는 질문에 오 씨는 이같이 대답했다. 그는 “안철수는 그래도 여기 몇 번 왔다 갔다 해 잘 안다. 의원 중에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다”며 “그 사람(이준석)은 잘 모른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든지 우리 노점상들을 못살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넋두리를 했다.
안철수 의원, 노회찬 전 의원.
한 씨의 말처럼 노원병은 전통적인 야당 텃밭이다. 제16대 총선부터 보궐선거를 포함해 다섯 번의 선거를 거치는 동안, 18대 홍정욱 전 한나라당 의원 외에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 일이 없었다. 당시 홍 전 의원도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을 2443표차로 가까스로 꺾었다. 절치부심한 노 전 의원이 19대 총선에 당선됐고 안 의원이 보궐선거를 통해 그 뒤를 이었다.
상계9동에서 30년 동안 살았다는 이 아무개 씨(33)는 “여기는 원래 2번(야당) 동네다. 사실 이준석은 홍정욱만큼의 임팩트도 없다”며 “홍정욱이 미남이지만 원로배우 아들이라 인지도가 높았고 사미자를 포함해 연예인들을 다 데리고 와 선거운동을 해서 대박을 터뜨렸다”고 설명했다.
오전 9시경, 기자는 지역 민심의 바로미터인 상계중앙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사 준비로 여기저기서 박스를 옮기는 이들이 많았다. 상인 양덕문 씨(66)는 “이준석이 안철수보다 약하지 않나? 정치 신인이 뭘 하려고 나오나, 좀 더 정치 물을 먹은 안철수가 낫다는 얘기가 많다”며 “오히려 노회찬은 좀 안됐다. 그 양반은 차도 안타고 걸어 다니면서 지역구 돈다. 불편한 것도 잘 들어주고 그랬다. 그 양반이 여기 터를 닦아놔서 노회찬 표도 무시 못 할 거다”고 밝혔다.
다른 상인 이경희 씨(여·56)는 “안철수와 노회찬이 갈리면 그 오빠(이준석)도 좀 승산이 있겠지만…”이라며 “연어가 불곰은 못 잡는다. 현실성 없는 얘기다. 동등한 입장이면 모르겠는데 아무리 이빨 빠진 곰이라 해도 연어가 곰을 잡을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
정치권에선 노 전 의원의 창원 출마설이 돌고 있지만 노원병은 노 전 의원의 ‘한’이 맺힌 곳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노원병에 당선됐다가 ‘삼성 X파일’ 사건(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인해 9개월 만에 의원직을 상실했기 때문. 노 전 의원의 측근은 “창원은 지역 쪽에서 나오라는 얘기가 많다”며 “노원 출마 가능성이 높지만 당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 의원도 고향인 부산 출마설도 흘러나오고 있지만, 보좌관은 “안 의원은 선거마다 지역을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좋게 보지 않는다”며 “신중히 판단하겠지만 결국 노원병에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당 텃밭에서 야권 거물들을 한꺼번에 상대해야 하는 이 전 비대위원은 자신만만했다. 26일 기자와 만난 그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지금 대기자만 200명이 넘는다.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며 “저는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아버지를 따라 이곳으로 와서 온곡초등학교를 다녔다. 상계동 주민들이 안 의원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체감 중이다”고 밝혔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