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 없이 합격하면 ‘여력’ 있는 경주마
주행심사를 보면 신마들의 잠재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2015년 12월 17일 열린 49차 주행심사 1경주. 한국마사회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주행검사(주검)는 그 마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합격이 우선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선 의도적으로 능력을 감추기도 한다. 따라서 주파기록은 상당히 큰 폭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오차범위를 크게 두고 비교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는 빠른 기록은 2초, 느린 기록은 3초 정도 차이가 나도 동일선상에 두고 분석을 한다. 물론 주로상태가 많이 다르다면 좀더 가감해야 할 것이다. 주검에서 1:05초대로 뛴 말이 1:02초대로 뛴 말을 실전에서 이기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는데 다 이런 이유에서다.
그 다음으로 분석할 점은 스타트 능력이다. 초반 200미터 기록을 토대로 관찰해야 하지만 여기서 꼭 가감해야 하는 것이 타고난 순발력이다. 초반부터 밀어주면서 나가는 경우와 타고난 빠른 발로 뛰쳐나가는 기록은 다르기 때문이다. 발이 빠르다는 느낌이 들 만큼 힘들이지 않고 초반에 앞서 나가는 말은 꼭 부마와 모마의 주행습성을 살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이와 같은 통계가 없다면 그 자마들의 초반 순발력을 체크해보면 대충은 알 수 있다. 필자의 경우는 초반기록이 좋지 않더라도 발이 빠르다는 느낌이 들면 선행마로 분류하곤 하는데 그 밑바탕은 혈통 분석 데이터가 깔려있다. 데뷔전에서 기습선행으로 입상하는 말들은 대체로 이런 유형이다.
조교사에 따라서는 순발력을 숨기고 있다가 걸음이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있다. 이런 경우 속칭 ‘쏘아 먹었다’라고 비난하곤 하는데, 주행검사 때 보여준 자질과 혈통적 특성을 잘 기억해 계속 관심을 가지면 간혹 고배당을 맛볼 수 있다.
뒤따라가는 말도 잘 분석해야 한다. 기수가 열심히 밀고 추진했는데도 후미로 처진다면 느린 말로 분류하고 당분간은 잊고 지내도 무방하다. 문제는 처음부터 기수가 의도적으로 제어해 후미로 처졌다가 막판에 치고올라오는 말이다. 이런 말은 실전에서 출발을 얼마나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후미로 처졌지만 느린 말이라고 인식해선 안되고, 반드시 주의를 해야 한다. 물론 결승선에서도 아무 변화를 보이지 못했다면 능력을 감췄다고 의심하기보다는 실전 적응이 좀 필요한 말로 분류하는 것이 좋다. 경마에서 의심은 꼭 필요하지만 지나친 의심은 아무 것도 믿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부작용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여력이다. 여력을 살피는 요령은 전문가마다 제각기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데 여기선 일반화된 분석법만 알아본다.
우선 추진없이 가만히 잡고 주행한 후 합격한 말이다. 이런 말은 대체로 강하게 추진하고 채찍을 동반하면 기록을 많이 단축한다. 심하게는 5초 이상을 단축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실전에서 상대와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면 쓸데없이 힘 소모를 하게 돼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말도 있긴 하지만 이런 유형의 말도 실전에 적응하면 주행검사 때 보여준 여유만큼 결국은 기록을 단축한다. 2~3전 정도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한 유형이다.
기수의 제어에 잘 따르는 유형의 말도 요주의 대상이다. 말하자면 인마의 호흡이 잘 맞아 기수가 이끄는 대로 잘 뛰어주는 스타일인데, 이런 말은 사실 좀 애매하다. 완성도가 높은 말임은 틀림이 없지만 실전에 투입되면 얼마나 더 뛰어줄지는 불확실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체로 실전에도 차분하게 잘 적응하기 때문에 주행검사 때 보여준 이상의 능력은 예상해도 무방하다.
채찍에 민감한 유형은 바로 베팅하기보다는 한두 번 관찰하는 것이 좋다. 주행을 하다가도 채찍을 가볍게 대기만 하면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올리는 말들이 있는데, 이런 말은 힘이 덜 찬 유형이지만 경주를 거듭할수록 나은 걸음을 보인다.
베팅에서 가장 메리트가 있는 유형은 결승선 초반부보다 종반부 스피드가 더 좋은 말이다. 마사회에서 발표하는 데이터만 보고는 파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긴 하지만 약간의 2차 가공만 하면 쉽게 파악이 된다. 필자의 경우는 쉽게 비교할 수 있도록 시속으로 환산되도록 DB를 설계했다. 일반 경마팬들은 구간별 시속이 나와있는 예상지를 구매하면 되겠지만 그런 예상지가 많지 않다. 자기가 보는 예상지에 그런 데이터가 없는 경우엔 라스트 팔롱(LF) 기록만 가지고 분석할 수밖에 없다.
주로상태에 따라서 기록을 가감해 자기 기준을 설정하면 도움이 된다. 보통의 경우 LF타임이 12초대라면 걸음이 상당 부분 남았다고 보면 되고, 13초대 초반이라면 약여유, 13초대 후반이면 유지, 14초대 초반이라면 둔화, 14초대 후반 이상이라면 부진으로 분류하면 된다. 단순 기록만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추진동작이나 채찍사용 여부까지 같이 관찰하면 더 정밀한 분석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찰해야 하는 것은 주행의 완성도다. 이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주행검사 동영상 전체를 반복적으로 관찰하면 나름의 감을 얻을 수 있다. 오래된 전문가들은 주행 장면에서 강력한 포스를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주로 관찰해야 하는 점은 주폭이 좋으냐 나쁘냐, 안쪽이나 바깥쪽으로 기대는 습성이 있느냐, 코너워크가 매끄럽게 되느냐 등등이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