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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림새만큼 말끔하고 담백한 인터뷰 솜씨로 두 시간을 ‘요리’했던 주인공은 요즘 한창 ‘잘나가는’ 남자 최순호 감독(42). 92년 통합우승, 95년 후기리그 우승 이후 9년 만에 프로축구 무대에서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포항스틸러스를 이끄는 수장이자 ‘보스’다. 아직도 우승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흔적’들이 얼굴 곳곳에서 발견될 수 있었지만 그는 벌써부터 후기리그에 대한 걱정과 우승에 대한 야망으로 최순호만이 할 수 있는 계획과 걱정들을 쏟아냈다.
외모상의 견적으로는 된장찌개보다는 스테이크가 제격인데도 화려했던 선수 시절과 은퇴 후 정치권과 축구계를 오락가락했던 방황의 시기, 그리고 지난해 서포터스로부터 퇴임 압력을 받는 시련기를 거쳐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기까지의 과정들 속에는 결코 녹록지 않은 사연들이 숨어 있었다.
우승 후의 인터뷰라 당연히 우승 소감을 묻는 게 순서일 것 같았지만 똑같은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을 것 같아 다른 내용을 끄집어냈는데도 결국은 ‘우승 소감’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아주 조심스러워요. 이제 겨우 50%(전기리그 우승) 해놓고 너무 좋아라 하는 것도 왠지 눈치 보이고. 소감도, 기쁨도, 반만 해야 되는 건데…. 그래도 기분 좋은 건 사실이에요. 시즌 초반 우려의 시각을 감추지 않았던 서포터스와 팬들에게 뭔가를 보여줬다는 게 제일 기쁘죠. 우승을 해보니까 선수 시절 때의 우승과 지도자 입장에서 느끼는 우승이 얼마나 다른지를 깨달았어요. 한 마디로 선수 때와는 ‘쨉’이 안되는 거예요.”
최순호 감독은 그러나 우승의 감격과 자만에만 빠져있지는 않다고 단언한다. 그의 표현대로 딱 절반의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의 기쁨을 찾아오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
2001년 시즌 중반 감독대행으로 포항의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을 두고 축구계에선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너무 젊은 나이에 감독직에 앉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고, 특히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지도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고리타분한 선입견도 한몫했다. 2001년 5위, 2002년 6위, 2003년 7위로 해마다 떨어지는 성적표는 일부의 선입견을 공식화시키는 듯했고 지난해 서포터스들이 퇴진 운동에 나서면서 최 감독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기도 한다.
“서포터스와의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된 게 많았어요. 조금만 더 애쓰면 분명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나서서 서포터스들을 설득했어요.”
스타플레이어라는 출신 성분은 때론 장점으로, 때론 단점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화려한 이력들로 인해 기대가 산처럼 높아지는 걸 몸소 느끼며 그가 덤으로 안고 가야할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은 것들이었다.
“무명 출신이었다면 불가능했을 부분들이 유명 선수 출신이라 가능해지는 것들도 있더라구요. 가장 큰 건 축구에 대한 능력만큼은 그냥 ‘먹고’ 들어갔죠. 선수 때 잘 했으니까 지도자하면서 큰소리도 치고 그런 거라며 넘어가던데요.”
최 감독은 자신과 포항의 수석 코치로 활약중인 박항서 코치와의 관계를 ‘환상의 복식조’라고 불렀다. 공식적으론 감독과 코치라는 상하관계지만 최 감독이 박 코치를 부를 때의 호칭은 ‘박 선생님’이다.
“물론 처음엔 감독보다 나이 많은 코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불편할 거라는 선입견이 많았어요. 그러나 전 자신 있었습니다. 박 선생님은 상당히 꼼꼼하시고 세심하시고, 적극적이세요. 반면에 전 느긋하고 이상적이면서 여유가 있죠. 이보다 더 환상적인 커플이 또 어디 있겠어요?”
연상의 코치와의 파트너십을 마다하지 않은 최 감독은 선수들도 경험과 연륜이 쌓인 고참 선수들을 우대하고 배려하는 데 더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골키퍼 김병지, 우성용, 김기동, 이민성 등 팀의 주축 선수들이 ‘노장’이란 그릇된 편견에 주눅 들지 않고 ‘베테랑’으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게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었던 것. 그로 인해 최 감독은 축구팬들로부터 ‘포항팀을 양로원 만드는 거냐?’는 가시 돋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조금은 껄끄러운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됐다. 바로 포스코 명예회장인 박태준 회장과 최 감독과의 인연과 친분이었다. 최 감독이 포철의 사령탑에 앉게 될 당시만 해도 축구계 일각에서는 최 감독이 박 회장의 지원에 힘입어 감독직에 올랐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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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다른 패션 감각을 선보인 최순호 감독. 세련된 옷차림과는 달리 입담만큼은 인터뷰 내내 솔직담백했다. (위쪽)기자와 함께 수박을 먹는 모습. | ||
최 감독은 누구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빵빵한 백그라운드가 존재한다고 해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보따리를 싸야하는 냉정한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힘’은 그리 큰 도움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이 절 좋아하신 건 사실이에요. 저 또한 그분의 강력한 리더십과 흔들리지 않는 국가관을 존경했고 닮고 싶었어요. 김영삼 대통령 재임 시절, 본의 아니게 일본에 건너 가 계실 때도 제 앞에선 당신이 겪고 있는 핍박과 울분을 토하기보다는 국가의 앞날을 더 걱정하시며 근심을 놓지 않으셨던 꼿꼿한 분이셨어요. 남자로서 참 닮고 싶은 부분이 많았죠.”
최 감독한테는 세 분의 ‘아버지’가 계신다고 한다. 한 분은 자신을 낳아주신 친아버지, 또 한 분은 전 포항제철 감독이셨던 고 한홍기 감독, 그리고 마지막 한 분이 바로 박태준 포철 회장이라고. 친아버지한테선 인생살이의 노하우를, 한 감독으로부턴 축구와 인생의 깊이를, 그리고 박 회장한테선 남다른 국가관을 배웠다고 말하는 최 감독의 눈빛이 깊어지는 순간이다.
박 회장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최 감독은 95년 도의원 지방 선거에 출마를 하게 된다. 94년 프랑스 축구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고향인 충북 청주에서 유소년 축구를 지도했었는데 투표 45일 전에 민자당으로부터 급한 제의를 받고 지인들과 상의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상대 후보가 무소속 출신인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도 그 사람을 상대로 ‘맞장’ 뜰 생각을 안했죠. 결국 제가 걸려든 건데 출마 결심을 굳히며 당으로부터 약속을 받아낸 게 있었어요. 돈 선거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거였죠. 45일 동안 선거 운동해서 34%의 지지율을 이끌어내며 선전했지만 결국 ‘쎈’ 후보한테 밀려나고 말았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정치에 뛰어드니까 별의별 소문이 다 나더라구요. ‘최순호가 할 일이 없어서 그런다’서부터 ‘출마만 하면 3억에서 5억원의 돈을 받기로 했다’ ‘축구가 안되니까 결국 정치에 손을 댄다’는 등 어이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죠. 그래도 그때 일은 후회하지 않아요. 돈 주고도 할 수 없는 중요한 경험을 했거든요.”
또 다시 기회가 된다면 정치권과 인연을 맺고 싶냐고 물었다. 아예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생각이 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 역시 깔끔하게 ‘예스’라고 대답한다.
“지도자로 현장에서 후배들을 이끄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입법기관인 국회에 들어가서 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이나 방송인들은 활발히 정치권과 끈을 잇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스포츠인들은 정치권과 별다른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어요. 만약 저한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전의 지방 선거와는 달리 많은 준비 끝에 그 기회를 잡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물론 아내가 결사반대하겠지만 말이죠.”
독실한 크리스찬인 최 감독은 평소 축구를 통해 선교 활동을 펼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었다. 그러나 오늘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에 꼭꼭 숨겨둔 야망을 꺼내 보인 것이다.
한창 잘나가던 대표팀 선수 시절 말하기 좋은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스트라이커 최순호를 ‘건방진 선수’로 폄하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선수 생활은 이미 지나간 추억일 뿐 지도자로 새출발하면서 그때의 영화를 다 지워버렸다’는 겸손함을 내비친다.
절반의 성공이 완전한 성공을 뜻하진 않는다. 이미 절반의 성공을 이룬 사람은 나머지를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의 ‘당근’과 ‘채찍’으로 선수들을 독려할 것이다. 전기리그의 우승으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꼭 해소하고 싶다는 최순호 감독이 제대로된 소원풀이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한 가지 바람을 덧붙인다면 어쩔 수 없이 시류에 타협하며 얼굴 붉히는 정치인 보다는 소신 굽히지 않고 얼굴 꼿꼿이 들고 살 수 있는 축구인으로서 그를 더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