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현대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두산의 핵심 타자인 장원진은 덕아웃에서도 분위기메이커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영미(이): 프로야구 ‘가방 끈’(프로 경력 13년차)이 만만치 않으신데 지금에서야 이렇게 찾아온 데 대해 넓은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장원진(장): 어이쿠 별 말씀을. 지금에라도 이런 기회를 갖게 돼 제가 오히려 영광이죠. 하여튼 반갑습니다.
이: 오늘 우리가 너무 정중하게 예를 갖춰 인터뷰하는 거 같지 않나요?
장: 타이틀은 ‘생생 인터뷰’인데 전 무슨 교육방송에서 나온 줄 알았습니다. 하하.
이: 요즘 두산이 장난 아니네요. 시즌 초만 해도 전문가들 예상이 하위권에서 맴돌 거라고 했는데. 이쯤 되면 전문가들 밥 그릇 끊길 만하겠어요.
장: 오히려 우리가 고맙죠. 그분들의 ‘황당한’ 예상 성적에 선수들이 자극받고 더 열심히 했으니까요.
이: 아까 오 과장(두산의 홍보 담당자 오성일 과장)님이 전한 정보에 의하면 덕아웃에서 가장 시끄러운 사람이 바로 장원진 선수라고 하던데.
장: 예. 제가 좀 오버하는 편이죠. 벤치에서 가장 설치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저거든요. 고참들이 파이팅을 해주고 아웃 카운트 상황도 챙기고 해야 후배들이 정신 차리고 기운차게 던지고 때릴 거 아닙니까.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이 시끄러워서 경기를 보지 못하겠다며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요즘엔 저보다 더 소리치는 선수도 있어요.
이: 두산의 ‘오버맨’ 하면 홍성흔 선순데 두 분 중 누가 더 시끄러운 편인가요?
장: 성흔이는 ‘액션’ 쪽에 강하고 전 ‘소리’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죠. 제 목소리가 좀 큰 편이에요. 하하.
이: 게임 전 선수들이 덕아웃 앞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게임에 들어가잖아요. 요즘엔 파이팅 하는 단골 선수가 바로 장원진 선수라고 들었는데.
장: 그게 징크스예요. 어느 날인가 제가 파이팅을 외친 후부터 우리 팀이 연승을 하게 됐거든요. 6연승이 기록이었죠. 선수들 사이에서 ‘깃발(기가 좋은 사람을 표현하는 은어)’ 좋은 사람이 그날의 ‘소리 대장’으로 뽑혀요. 가장 많이 한 선수가 홍성흔이었죠. 그러다 제가 맡은 이후로 계속 이겼고 6연승에서 꺾인 뒤 용병 알 칸트라가 잠시 그 역을 맡았다가 다시 제가 하고 있어요. 요즘 두산 분위기 같으면 한국시리즈 우승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어떤 선수보다도 빈볼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많을 것 같아요. 지난 7월에도 LG 서승화의 빈볼에 열 받고 한판 붙으셨잖아요.
장: 아! 그때는 정말 화가 났었어요. 타자들은 투수의 공을 보면 이게 빈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어요. 그 당시 서승화의 공은 몸 쪽으로 파고 들어오는 공이 아닌 제 등 뒤로 향하는 공이었어요. 투수야 고의가 아니었다고 사과하면 그만이지만 그로 인해 부상이라도 당하면 누가 손해겠냐구요.
이: 정말 어처구니없는 빈볼의 추억을 꼽는다면.
장: 맞은 데 또 맞는 빈볼이요. (목소리 톤을 높이며) 94년인가요? 삼성의 곽채진 선수한테 오른쪽 팔꿈치를 맞았는데 얼마 안 있다가 또 그 선수가 던진 공에 똑 같은 부위를 다친 거예요. 정말 도는 줄 알았어요. 당장 달려가서 일을 내고 싶었지만 신인 때라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지난해 FA 선수였잖아요. 다른 선수들처럼 몸값 좀 튀겨서 다른 팀으로 옮길 생각은 없으셨나요?
장: 물론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을 했는데 나이도 있고 적응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포기했어요. 13년 전 처음 두산 유니폼을 입을 때 제 자신과 약속한 게 있었어요. ‘시작도 두산, 끝도 두산’이라고. 그 약속도 지키고 싶었죠.
이: ‘옷걸이’가 좋은 선수라고 소문났던데요?
장: 집에 옷걸이가 별로 없는데? (순간 찬바람이 휘익~) 하하. 그렇게 봐주신다니 고맙네요. 옷에 관심이 많긴 많아요. 제가 선수들 중 ‘유이하게’ 옷장을 두 개 쓰고 있거든요. 옷 때문이에요. 집이 멀어 사복을 라커룸 옷장에 걸어놓고 다니다보니 옷장이 더 필요했던 거죠.
이: 옷장을 두 개나 사용하는 다른 선수는 또 누구예요?
장: 사실 옷장 두 개는 아무나 사용 못해요. 저 말고 김동주가 두 개 써요. 그런데 저랑 다른 게 전 옷이 많아서이고 동주는 방망이를 보관하느라 옷장을 두 개 쓴다는 거죠.
이: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어요?
장: 어찌 순항만 했겠습니까. 이 나이에. 가장 기억나는 게 프로 입단 첫 해에 부상으로 1년을 2군에서 보낸 적이 있었어요. 관중들이 전무한 상태에서 오로지 우리 가족들만 앉아 있는 그런 경기장에서 게임을 하며 참 많은 걸 느꼈어요. 오로지 야구만 했죠. 자고 먹는 것 외엔 야구만 하고 살았어요. 26년간의 야구 인생 중 그때처럼 야구를 열심히 했던 적이 없었을 거예요. 그 덕분에 지금 이 나이에도 야구장에 출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술을 잘 못하신다면서요?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소주를 먹지 않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장: 제가 대학 신입생 파티 때 소주 두 병을 냉면 그릇에 담아 원샷했다가 병원에 실려갔거든요. 전 소주 대신 콜라로 인생을 논하고 있습니다. 콜라의 톡 쏘는 맛은 소주의 쓴 맛에 비할 바가 못 되거든요. 하하.
이: 그럼 올 시즌 끝나고 소주와 콜라를 섞어 만든 ‘콜라주’로 대작 한번 해볼까요? 소주로 인생을 논하는 여자와 콜라로 인생을 배우는 남자와 누가 센지? 아니 근데 왜 도망가세요? 대작 한번 하자니까.
장: 누가 도망간다고 그래요? 곧 경기 시작 할 시간이네요. 인터뷰 끝난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