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2년 8월7일 월드컵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김남일의 ‘기자회견’ 모습. | ||
11월26일, 제주도 롯데호텔. 강풍이 몰아친 가운데 오후 훈련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김남일과 호텔 로비에서 마주쳤다. 미리 인터뷰가 약속돼 있었음에도 기자를 본 김남일의 표정이 생뚱맞기 그지없다. 자리에 앉아 인터뷰가 아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진행하자는 말에 비로소 김남일의 굳은 얼굴이 풀렸다.
먼저 그동안 왜 그렇게 인터뷰를 피해 다녔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이제부터 ‘김남일식’ 멘트들이 이어진다.
“그냥 인터뷰 자체가 싫었어요. 월드컵 때도 일부러 히딩크 감독님을 찾아가선 인터뷰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남 앞에 나서는 게 끔찍이 싫어요. 사진 찍는 건 더 하구요. 지금도 옛날 사진들을 보면 웃으면서 찍은 게 거의 없어요. 날 원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더 못한 이유도 있어요. 한두 군데 해주다 보면 다 해줘야 하잖아요. 차라리 안하는 게 낫죠. 그래서 거절했어요.”
김남일은 월드컵 이후 갑작스런 인기 폭발로 인해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사랑과 관심에 적응이 안됐다고 한다. 평소 ‘공인’과는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공인이 되다보니 어색함과 불편함, 민망함 등으로 정리가 안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
“숨기 바빴어요. 성격적으로 튀는 걸 제일 싫어하는 놈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노출되는 바람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죠. 맨날 하던 걸 못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그게 뭐냐는 질문에) 당구장 가는 거,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거, 술 마시는 거, 뭐 그런 일들이었죠. 그래도 숨어서 다했어요. 사람 없을 때, 어두울 때, 홀이 아닌 방 같은 데로만 찾아다녔어요. 언론에서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언론 책임이 커요.”
언론이 고맙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단다. 평범한 김남일을 연예인처럼 희화화해준 부분에 대해서. 그러면서 이렇게 마무리 짓는다.
“2년 정도 지나니까 조금 나아졌어요. 내 쪽보단 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이죠. 그래도 여전히 바깥 출입이 편치 만은 않아요.”
e메일 아이디가 ‘야행성 불나방’이고 화사한 파스텔톤보다는 블루나 다크 계열쪽의 색깔을 선호하면서 지상보다는 지하 세계를 즐겨 찾는다는 표현까지 듣다보면 김남일의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진다.
월드컵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숙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건 바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팬들은 월드컵 이후 달라진 뭔가를 보기 원했어요. 내 자신도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를 썼죠.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어요. 뭘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예전에 잘 되던 것도 안 되더라구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무조건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사생활도, 축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한국에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해외 진출에 목을 맸던 겁니다.”
김남일은 2003년 2월 네덜란드 1부리그 엑셀시오르팀에 5개월간 임대로 뛴 적이 있었다. 당시 김남일이 송종국이 몸담고 있는 페예노르트 입단을 전제 조건으로 한 임대 계약이라고 알려졌지만 김남일은 결국 계약 기간 내에 페예노르트로 옮겨가지 못한 채 짧은 유럽 생활을 끝마쳐야 했다. <일요신문>에 처음 털어놓는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들어본다.
▲ 지난 2002월드컵 스페인전에서 ‘청소’중인 김남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끝까지 사진촬영을 ‘사절’했다. | ||
훈련이 끝나면 집 근처의 공원에 나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이었다.
“솔직히 한국에 들어오기 싫었어요. 페예노르트로 옮겨갈 줄 알고 기다린 상태라 당연히 그 팀으로 갈 거라고 기대했죠. 운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임대계약이라는 게 참 그래요. 마치 시한부 인생 같아요. 기간 되면 가야 되는 거잖아요. 앞으로 절대 임대로는 안 가요. 어휴, 너무 싫어요.”
김남일은 엑셀시오르에 가기 전 터키리그에서 ‘러브콜’을 받고 터키 진출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불러주는 곳만 있으면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운동 생활하는 데 대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표팀과 관련된 질문들이 계속됐다. 특히 월드컵 이후 하락세를 면치 못한 국가대표팀에 대한 김남일의 생각이 궁금했다. 김남일의 자기성찰을 겸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전 어느 감독님보다도 쿠엘류 감독님이 가장 안타까워요. 그분은 보여주고 싶은 걸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하고 그만두셨어요. 선수들 때문이에요. 선수들이 감독님의 훈련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거든요. 선수들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셈이죠.”
선수들이 왜 쿠엘류 감독의 훈련 방식을 따라가지 못했냐고 질문했다. 김남일은 선수들의 정신력이 이전 월드컵 때와는 천양지차였다고 털어 놓는다.
“절 포함해서 선수들이 많이 나태해졌어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꿰찰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거의 고정된 자리가 있다는 생각에 노력을 게을리했어요. 그건 인정해야 돼요.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도 소속팀에서 뛰는 것과 대표팀에서의 플레이는 큰 차이가 있었어요. 소속팀은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자기보다 잘난 놈도 많고 돈을 더 많이 버는 놈도 있고, 뭐든 게 다 잘났거든요. 그런데 한국에 들어오면 마음이 놓이는 거예요. 주전자리는 이미 정해져 있고 열심히 뛰지 않아도 또 뽑아줄 것이고, 뭐,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월드컵 때처럼 죽기살기로 뛸 수가 없는 거죠.”
부상과 재활 등으로 대표팀을 나와 있는 시간 동안 영원할 것 같던 김남일의 대표팀 내 위치가 신예 김두현(수원)의 만만찮은 도전에 조금씩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남일도 이 점에 대해선 솔직히 인정했다.
“선수는 운동장에서 보여줘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붙박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그래서 김두현 같은 선수가 자꾸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절로 경쟁이 되게. 전 게임 욕심이 엄청 많아요. 조금 아파도 내 자리 빼앗길까봐 자리 지키려고 일부러라도 게임장에 들어가요. 뛰는 동안엔 통증을 잊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내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강해지는 것 같아요. 월드컵 때가 그랬어요. 솔직히 다시 그런 기분을 맛보고 싶어요.”
“난 은퇴할 때까지 수술은 안할 줄 알았어요. 부상을 당해도 금세 낫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해보질 않았어요. 그런데 다치고 나니까 정말 괴롭더라구요. 오만 가지 생각이 다 스쳤지만 꾹 참고 버텼어요. 부상당한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다친 데 또 다치는 거예요.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자꾸 게임장에 나가 부딪히는 수밖에 없어요. 플레이오프, 솔직히 나가고 싶어요. 보란 듯이 김남일의 재기를 알리고 싶은데 몸이 따라줄지 걱정돼요.”
사적인 질문을 꺼내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것 같아 자제했지만 이성 문제에 대해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세게 나갔다. “혹시, 진하게 사랑해 본 적 있나요?” “(기자를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하고 싶어요.” “아니, 그럼 아직까지 사랑 한번 못해봤다는 소리예요?”라고 묻자 속사포같이 대답을 쏟아낸다.
“내가 얘기했잖아요. 복잡한 거 싫어한다고. 만약 내가 관심있는 여자가 있다고 해도 크게 흔들리거나,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질 않았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할 거예요. (다짐하듯) 정말 할 것 같아요. 결혼한 형들 보면 가끔 부러울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랑 통화할 때, 아이들 목소리가 들릴 때, 정말 행복해 보이거든요.”
김남일은 축구 외엔 어떤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축구 빼고는 어떤 유혹을 느껴본 적도 없다. 이유는 한 가지. 축구 외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를 만나도, 술을 마셔도 심하게 빠지거나 취하거나 중독되지 않는 탓이다. 그만큼 축구는 김남일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최근 관심을 불러일으킨 J리그 진출과 관련된 의중을 떠봤다. 즉답을 피하면서도 이런 내용으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 정리한다.
“네덜란드에서 5개월 만에 끝난 해외진출의 꿈을 어떻게 해서든 다시 이루고 싶은 바람은 있어요. 그런데 내년이면 내 나이 스물아홉이에요. 너무 늦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기도 하구요. 유럽은 거의 접었다고 봐야죠. 그쪽은 힘들어요. 그렇다면 그 다음은? 알아서 해석하세요.”
어느덧 대화를 가장한 인터뷰가 두 시간이 넘어서고 있었다. 내일 훈련을 위해서라도 이젠 김남일을 풀어 줄 시간이다. ‘박스 인터뷰’까지 마치고 일어서는 김남일이 “지금까지 인터뷰한 것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얘기했다”면서 생색을 낸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번 사진촬영을 부탁했더니 여전히 강하게 손사래를 친다. 대신 시즌 끝나고 서울에서 밥이나 먹자는 말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여운이 많이 남는 인터뷰였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도 김남일을 잘 모르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