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철(왼쪽)감독, 신치용 감독.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먼저 신치용, 김호철 감독은 서로의 관계를 대립 구도로 가는 매스컴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배구팬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이 정도의 희생(?)은 각오하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의 인터뷰 결과 기자의 느낌은 한 마디로 신 감독이 ‘남자’라면 김 감독은 ‘여자’였다. 그 내용을 알아보자.
칭찬
김호철(김): 일단 칭찬으로 공격을 시작해 보겠다. 신 감독은 8년간 배구판을 휩쓴 덕장이자 지장이다. 8연패의 위업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업적이다. 분명 그에 따른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신 감독이 있는 한 삼성을 잡기가 힘들 것이다.
신치용(신): 너무 띄우는 거 아닌가. 8년간 우승을 하려면 칭찬보다 욕도 많이 얻어먹어야 하고 시기와 질투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그러나 우리 팀은 지금이 고비인 것 같다. 오래 해 먹다 보니까 선수들도 노쇠해지고 조금씩 (우승에) 길들여진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현대의 전력은 지금 최고다. 김호철 감독이 들어오면서 조직력과 파이팅 면에서 훨씬 좋아졌다.
격돌
김: 그런데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8번 우승한다는 것은 ‘도둑놈’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삼성이 이룬 업적도 크지만 삼성의 일방적인 우승으로 인해 배구팬들이 배구에 대한 재미를 잃었다. 너무 오랫동안 정상을 차지하다보면 이런저런 잡음이 일게 마련이다. 솔직히 도전하는 나보다는 지키려는 신 감독이 훨씬 힘든 상황이다. 아무 부담없이 달려드는 사람과 숱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사람과 어찌 입장이 같을 수 있겠나. 난 져도 본전이지만 신 감독은 지면 많은 걸 잃게 될 것이다.
신: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삼성화재가 8년 우승의 업보를 반드시 겪을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매 맞을 각오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빨리 매를 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순순히 맞을 수도 없다.
참, 이 자리를 통해 김 감독에게 한 가지 충고하고 싶은 게 있다. 김 감독이 인터뷰 때마다 이탈리아 배구의 과학적인 경험을 통해 현대팀을 업그레이드시킨다고 큰소리를 치는데 자꾸 이탈리아 배구 운운하는 건 한국에서 한국 배구만 알고 연구한 사람들에게 결코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다. 이탈리아 배구니 이탈리아 분석가니 뭐니 해서 이탈리아 배구를 부각시키는 이유가 뭔가. 김 감독이 한국 사람이란 걸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
황당
김: 내가 언제 이탈리아 배구가 제일 좋다고 말한 적 있었나. 20년간을 그곳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지내며 이탈리아 배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그 배움을 토대로 한국 선수들에게 맞는 방법을 개발하고 연구하며 접목시켜 가는 중이다. 아무리 그쪽에서 배운 게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맞지 않다면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신 감독도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고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줄 아는 넓은 시각을 가지길 바란다. 한마디로 우승하는 사람이 ‘정답’이다. 누구의 방법이 옳은지는 우승자가 말해 줄 것이다.
성격
신: 김 감독은 성격이 다혈질이고 직선적이다. 어디서든 계속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같이 골프하러 나가면 골프에 집중이 안 된다. 김 감독이 워낙 시끄럽게 해서 그렇다. 대신 김 감독은 술을 잘 못한다. 반면에 잡기에 능하고. 난 술을 즐기는 편이고 잡기에 소질이 없다.
김: 신 감독은 깊이가 있고 묵직하다. 한마디로 남자다. 난 성격이 무척 활발하다. 신 감독으로부터 하도 조잘댄다고 해서 구박도 많이 받았다. 주량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난 무슨 술이든 한 잔은 마신다. 그러나 더 이상 못한다. 한번 심하게 술 마신 다음 아스팔트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바람에 큰 화를 당할 뻔한 이후론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런데 신 감독이 이런 날 두고 마실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안 마신다고 성화다. 나도 신 감독처럼 술 마신 다음날 멀쩡할 수만 있다면 술통을 갖다 놓고 마실 것이다.
김 감독의 얘기를 전해 들은 신 감독이 또 한 마디 거들었다. “야, 나라고 속이 멀쩡한 줄 아냐. 힘들어도 다 참고 견디는 거야. 넌 그걸 못해 탈이야.”
과거
김: 난 선수로 대성했다. 세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탈리아에서의 20년 생활은 배구 인생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신 감독은 선수 시절 때 그렇고 그런 축에 속했다. 이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 하하. 이렇게 나오면 나도 할 말 많다. 물론 김 감독이 나보다 세터는 잘했을 것이다. 대신 공격은 내가 한 수 위였다(김 감독은 국가대표 명세터 출신이고 신 감독은 공격수 출신이다). (잠시 후) 인정한다. 선수 때는 김호철이 나보다 훨씬 유명했고 훨씬 잘나갔다.
군대
신: 김 감독과는 고향이 같은 경상도라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같은 내무반 생활을 하며 돈독한 우정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 말고도 7명의 배구선수가 한 부대에 배치받았다. 김 감독은 커닝을 잘했다. ‘군인의 길’ ‘군가’ 등을 외우는 암기 테스트에서 커닝으로 90점을 받을 정도였다. 그러다 점프 때문에 완전히 스타일 구겼다. 소대장이 김 감독의 작은 키를 놓고 딴지를 걸었고 점프를 잘한다는 소문을 어디서 들었는지 허구헌날 천정에 손을 닿아보라며 점프를 시킨 것이다.
김: 군대 얘기라. 하하. 신 감독의 ‘통일화’ 사건은 잊을 수가 없다. 다른 군인보다 발 치수가 큰 신 감독은 특별 주문 제작한 통일화가 없어지는 바람에 새벽 연병장 집합 시간에 딱 걸릴 위기에 처했다. 그때 짜낸 묘안이 남아 있는 사이즈가 작은 신발의 뒤쪽을 동그랗게 오려낸 후 신고 나갔다가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다. 신 감독은 ‘국가물품 훼손죄’로 그 잘려진 통일화를 입에 물고 연병장을 여러 바퀴 돌아야 했다.
경쟁
김: 배구판에 돌아와보니 신 감독과 경쟁 관계로 만나는 게 참 ‘거시기’하다. 배구 코트에서는 사심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관계가 안 된다. 마음의 준비는 돼 있는데 말이다.
신: 김 감독과 오랜 친구지간이지만 경기장에서 만나면 웃음을 보이기가 어렵다. 난 쫓기는 입장이다. 김 감독은 쫓는 처지다. 누가 더 부담이 크겠나.
김: 신 감독과 난 라이벌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배구 스타는 신치용이다. 난 20년을 한국 배구에서 떠나 있었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라이벌이 많았다.
신: 우리가 무슨 라이벌인가. 라이벌은 기자들이 만든 거나 마찬가지다. 구단주가 아닌 이상 라이벌일 수는 없다.
남자
신: 남자로서의 김호철은 직선적이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다. 경기에서만 만나지 않는다면 참 자주 만나고 싶은 친구다. 지난 1월인가? 단 둘이서 술을 마셨는데 아주 기분이 좋았다. 물론 이 친구는 여전히 술을 별로 마시지 않았지만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김: 서로 좋아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기 어렵다. 아마도 성격이 워낙 달라서 좋아하는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니까.
두 감독에게 똑같은 질문을 제시하고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너무 친한 친구 사이다보니 서로를 호칭하는 말투가 무슨무슨 감독보다는 남자 친구 사이에서만 오갈 수 있는 은어들이 난무했으나 그 내면에는 서로에 대한 진한 사랑이 숨겨 있었다.
배구코트에서 승부를 벌여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면 두 사람은 그 숙명을 분명 즐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