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골 눈앞에 두고 가야하다니…”
▲ 13년간 프로무대에 몸담았던 신태용이 호주로 진출한다. | ||
K-리그 통산 4백1경기 중 99골 68도움을 기록하며 ‘그라운드의 여우’ ‘독종’에다 ‘신 박사’라는 애칭을 달고 산 13년의 프로 생활, 그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호주로 떠나는 신태용의 가슴엔 회한과 감동이 자리해 있었다.
―양복이 멋지네요.
▲인터뷰 때문에 일부러 차려 입고 나왔죠. 사진으로도 소개되는 건데 캐주얼한 차림은 좀 그렇잖아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양복이 좀 받거든. 하하.
―지난 연말 한동안 축구계의 이슈가 신태용 선수의 은퇴 여부였죠? 구단에선 재계약 안하겠다고 하고, 신 선수는 은퇴하지 않겠다고 하고.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구단에선 지난해 8월부터 차경복 전 감독을 통해 나와의 재계약 포기 의사를 밝혔다고 하는데 전 전혀 들은 바가 없었거든요. 12월이 지나서야 알았어요. 그것도 언론을 통해서. 구단이 먼저 흘렸더라구요. 무척 섭섭했죠. 아니 원망스러웠어요. 13년 동안 한우물만 판 선수에 대한 대우치곤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죠.
―구단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던 가장 큰 이유가 뭘까요. 항간엔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기도 했었거든요.
▲지난 연말에 구단에 찾아가서는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내 연봉이 너무 비싸서(약 4억원 추정) 부담스럽다면 연봉을 깎아서라도 1년만 더 선수 생활을 연장하고 싶다고. 99골 68도움의 기록이 너무 아까웠던 거죠. 조금만 더하면 100골도 채울 수 있고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70(골)-70(도움)’에도 가입하고 싶었구요. 그런데 그것마저 거절당했어요. 선수들을 젊은 선수로 교체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있는 (김)도훈이는 나보다 1년 후배거든요. 1년이 뭐 하늘과 땅 차이인가? 그렇죠?
―김학범 감독과의 불화설은 어떻게 된 건가요?
▲내 입에선 단 한 마디도 그런 얘길 꺼낸 적이 없어요. 김 감독님과는 코치와 선수 시절 때부터 공식적인 관계 이상의 친분과 신뢰가 두터웠어요. 지금도 존경하구요. 우린 괜찮은데 자꾸 주위에서 이상한 소리로 이간질시키려고 달려드니까 무척 괴롭더라구요. 완전 루머일 따름입니다.
―호주는 어떤 인연으로 가게 된 거예요?
▲호주에서 축구교실하는 김판근씨 아시죠? 그 친구 소개로 퀸즐랜드 로어팀을 알게 됐어요. 지난 1월에 방문했다가 직접 테스트도 받았죠. 그런데 연봉이 너무 낮아서 한동안 고민했어요. (얼마냐는 물음에) 이거 한 번도 밝히지 않은 내용인데…. 처음 제시받은 액수가 약 1억원 정도 됐어요. 테스트 받은 후에 1억5천만원으로 올라갔죠. 호주에선 그 정도 받으면 최고 대우에 속한대요. 대신에 차량과 주택 등 다양한 혜택을 지원받기로 했어요.
▲ 가족들과 함께. 임준선 기자 | ||
▲그럼요. 한국에서 진로 문제로 속앓이를 하느라 두 달 동안 운동을 못하고 갔거든요. 또 그쪽 날씨가 너무 더운 나머지 한낮에 경기를 뛰려니까 속이 울렁울렁거리고 현기증나고 죽겠더라구요. 그런데 로어팀 감독이 선수를 보는 안목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엉망진창이었던 내 플레이에 큰 감동 먹고 바로 계약하자고 달려들었거든요. 하하. 나중에 아들놈(큰아들 재원)이 공 가지고 노는 걸 보고는 아예 아빠랑 패키지로 묶어서 계약하자며 농담을 해올 정도였어요. 큰 애가 제법 공 좀 차는 편이에요.
―프로에서 13년간 뛰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일은?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선배가 없다는 사실이 콤플렉스로 작용했어요(신태용은 대구 출신이고 영남대를 졸업했다). 이끌어 주는 선배가 없다보니까 모든 걸 내가 풀어가야 했어요. 그래서 다른 선수들 쉴 때, 난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좋은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할 터를 닦아놔야 했으니까요.
―술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무궁무진하죠?
▲신태용과 술은 떼어놓을 수가 없죠. 한번은 서울 원정경기를 와서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푸른 지붕’에서 근무하는 아는 분이 호출을 하시더라구요. 내일 경기라 나갈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한사코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잠깐 나와서 어떤 사람에게 인사만 하고 가라고 거듭 부탁하셨어요. 어쩔 수 없이 잠깐 얼굴만 내보이려고 나갔다가 그날 밤새도록 술 마시고 다음날 아침에서야 숙소에 복귀했어요. 그날 경기 뛰는데 눈이 핑핑 돌더군요. 나중에 눈치챈 감독님이 따로 불러내선 “네가 알코올 중독자냐”면서 호되게 야단치셨죠.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사람’을 한 명만 꼽는다면.
▲지금 FC서울에 코치로 있는 (고)정운이 형이요. 정운이 형이 일화 소속이었을 때 내가 그 형 ‘딱가리’였거든요. 그 형도 한성질 하는 사람이라 코치 생활을 어떻게 견뎌내나 싶었는데 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코치가 돼서 그런지 요즘엔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아! 참, 정운이 형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형, 지금은 좀 달라졌겠지만 너무 바른말만 하지 마. 내가 형 닮아서 고개 숙이지 못하고 바른말만 하다가 마지막에 이렇게 됐잖아. 이거 다 당신 때문이니까 당신이 책임져야 돼. 알았어?”
호주에 진출한 뒤 당분간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 입담의 대가가 언어소통 문제로 입을 닫고 지내야 하는 일 때문이다. 그래도 신태용은 걱정 안 한다. 언어가 안되면 몸으로, 몸이 안되면 마음으로 하는 남다른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신태용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