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청 ‘쿨비즈’ 도입하자 SNS선 “정강이털 불쾌” 시끌…정장 반바지 출시되고 제모 관심 높아지기도

영국 컨설팅업체 ‘글로벌비즈니스컬처’는 그 배경으로 일본 특유의 배려 문화를 꼽는다. “직장에서의 복장을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편안함보다 단정하고 신뢰감을 주는 인상을 우선한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무더운 여름에도 흐트러짐 없는 차림이 오랫동안 직장인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단단한 규칙 복장에 처음 균열이 생긴 것은 2005년이었다. 일본 환경성은 여름철 냉방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이른바 ‘쿨비즈(Cool Biz)’ 캠페인을 시작했다. 실내 냉방 온도를 28℃ 안팎으로 유지하는 대신, 직장인들에게 넥타이와 재킷을 벗자고 제안한 것이다.

일본의 직장 복장 문화는 대체로 이런 식으로 변해왔다. 기존 규범을 한 번에 허무는 대신, 익숙한 형식은 유지한 채 조금씩 완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변화의 속도를 크게 앞당겼다. 재택근무가 늘고 ‘일하는 방식 개혁’이 확산하면서 출근복에도 실용성과 편안함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여름철 넥타이와 재킷은 점차 자취를 감췄고, 이제는 폴로셔츠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도 낯설지 않다.

여론은 엇갈리고 있다. 후지TV가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자 “무릎 정도 길이라면 업무복으로 무리가 없다” “고객을 만날 때만 격식을 갖추면 되고, 그 외에는 반바지를 입을 수 있으면 훨씬 편할 것 같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폭염 시대인 만큼 복장도 실용성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반면 “노출이 많은 복장은 업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편한 옷차림은 긴장감까지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논쟁은 곧 복장을 넘어 외모와 젠더 문제로 번졌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의 정강이털은 보고 싶지 않다” “아저씨의 반바지 차림은 불쾌하다”는 글이 잇따랐고, 이에 맞서 “외모지상주의(루키즘) 아니냐” “남성 차별 아니냐”는 반론도 뒤따랐다.

찬반 논쟁 속에서도 의류업계는 반바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 대표 정장 브랜드 ‘양복의 아오야마’를 운영하는 아오야마상사는 지난 5월 자사 최초의 비즈니스용 반바지를 출시했다. 접촉 냉감과 속건 기능을 갖춘 기능성 소재를 사용했고, 구김이 잘 생기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캐주얼 반바지보다 정장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출시를 결정하기까지는 내부에서도 우려가 컸다고 한다. “정장을 사러 오는 고객이 과연 반바지를 살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오야마상사는 소비자의 복장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지금이 미래의 수요에 대비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일반 반바지와는 무엇이 다를까. ‘비즈니스 반바지’ 상품 개발을 맡은 사토 히로키 씨는 그 기준을 ‘상대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가’에서 찾는다. 특히 공을 들인 것은 길이와 실루엣이다. 앉았을 때도 다리가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도록 길이를 조정하고, 밑단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테이퍼드 디자인을 적용해 단정한 인상을 살렸다.

반바지 논쟁은 예상치 못한 시장까지 움직이고 있다. 직장에서 다리를 드러내는 복장이 화제가 되면서 남성 체모 관리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는 분위기다. 파나소닉이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는 10~60대 남성의 68.3%가 “체모 관리에 거부감이 없다”고 답했고, 10대에서는 그 비율이 80%를 넘었다.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P&G재팬에 따르면 얼굴 아래 체모를 관리하는 이른바 ‘바디 그루밍’을 하는 소비자는 10~60대에서 36%, 16~22세에서는 58%에 달한다. ‘아저씨의 다리털’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남성 그루밍 문화의 확산과 맞물리며 새로운 소비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