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사외이사진 비중 확대…라응찬 라인이 차지할 가능성 커
신한금융 본사 전경
국내 금융업계 선두주자인 신한금융지주는 내년에 서열 1·2인자가 동시에 임기를 마치게 된다. 우선 1인자인 한동우 회장은 지난 2011년 벌어진 ‘신한사태’ 이후 회장 나이를 만 70세 이하로 제한한 규정에 따라 사실상 연임이 불가능한 상태다. 1948년 11월생인 그는 이번 임기가 끝나는 시점에 만 69세가 된다. 규정을 바꾸지 않는 한 억지로 연임해도 몇 달 만에 퇴임해야 하는 처지다.
‘넘버2’인 조용병 행장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5년 3월 신한사태의 뒷수습을 맡으며 취임한 그는 전임자와 달리 임기를 2년밖에 보장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이번 신한금융 이사회는 겉보기에는 평온했지만, 적지 않은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 2월 23일 이사회를 열어 10명의 사외이사 중 3월 말 임기가 끝나는 3명을 새로운 인물들로 교체했다. 이번에 물러나는 사외이사는 정진 진코퍼레이션 회장, 남궁훈 전 생명보험협회장, 권태은 나고야외국어대 명예교수, 김석원 전 신용정보협회장이다. 네 사람 중 남궁훈 전 회장의 경우 사외이사직은 내려놓지만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게 된 데다 이사회 의장도 계속 수행키로 해 사실상 직함만 바뀐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나머지 셋 중 눈길을 끄는 사람은 정진 회장과 권태은 교수다. 이들이 빠지면서 재일교포 사외이사진이 개편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 1982년 신한은행 창립을 주도했던 341명의 재일교포 멤버들로, 1세대 원로들의 모임인 ‘간친회’ 회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대신해 새롭게 사외이사진에 합류한 인물들은 이성량 동국대 교수와 이정일 재일한국상공회의소 부회장, 이흔야 마루신 대표이사 등이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인물은 이정일 부회장이다. 그는 신한금융 사외이사 멤버인 히라카와 유키 프리메르코리아 대표이사와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히라카와 대표의 경우 이름만 보면 순수 일본인처럼 보이지만, 신한금융의 2세대 재일교포 주주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들 중 한 명이다. 역시 2세대 재일교포 주주인 이정일 부회장은 히라카와 대표와 함께 일본에서 평천상사 공동대표를 지냈을 정도로 친분이 두텁다.
두 사람은 간친회 멤버들로부터 신한은행 지분을 물려받은 2~3세대 주주 모임인 ‘뉴리더’의 핵심 인사들로, 신한금융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금융의 재일교포 2~3세대 주주들 중 일부는 ‘애국심’을 매개로 똘똘 뭉쳤던 아버지들과 달리 신한금융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전해진다. 각자의 생업에 바쁜 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도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뉴리더’ 멤버들은 다르다. 이들은 신한금융에 대한 주인의식이 강하고, 경영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공통된 전언이다. 뉴리더 회원들은 해마다 1인당 우리 돈 1500만 원어치에 해당하는 신한금융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실제로 신한금융의 지분구조를 보면 이들의 막강한 막후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9월 말 기준으로 신한금융의 지분 5% 이상을 가진 대주주는 국민연금공단과 BNP파리바 두 곳뿐이다. 그나마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9.10%, BNP파리바는 5.35%에 불과하다.
반면 재일교포 지분은 17~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백 명으로 흩어져 있는 탓에 대주주 명단에 등장하지 않을 뿐 신한금융의 실질적인 주인은 재일교포들인 셈이다. 지난 2010년 신한사태 당시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등 수뇌부 3인방이 재일교포들에게 불려가 혼쭐이 났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부 재일교포 주주들은 직접 신한금융 계열사에 몸담으며 경영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도 신한금융 사외이사인 고부인 산세이 대표이사의 경우 과거 신한생명보험와 제주은행 임원을 지낸 인물로, 신한금융 사외이사 재임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 넘게 신한금융그룹의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런 상황은 사외이사가 신한금융의 실세인 독특한 지배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신한금융 사외이사진은 이번에 남궁훈 회장이 빠지면서 기존 10명에서 9명으로 재편된다. 전체 숫자는 줄었지만 재일교포 비중은 오히려 더 높아진다. 10명 가운데 4명이던 재일교포 사외이사는 9명 중 4명으로 바뀌게 된다. 기존 사외이사인 고부인 대표, 히라카와 유키 대표에 더해 이정일 부회장과 이흔야 대표가 합류한 결과다.
이들 사외이사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차기 신한금융 회장을 뽑는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 신한금융 회추위는 한동우 회장과 사외이사 5명으로 구성될 전망인데, 사외이사 9명 중 4명을 차지한 재일교포들을 모두 배제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결국 신한금융 회장이 누가 될지는 재일교포 사외이사들의 결정에 달렸다는 얘기가 되는 셈이다.
조용병 신한은행장
문제는 현직 신한은행장이자 신한금융의 2인자로 유력한 회장 후보인 조용병 행장은 이들과의 인연이 그리 깊지 않다는 점이다. 조 행장은 일본 지점장을 거치지 않고 신한은행장에 올랐다. 신상훈 전 사장이 오사카지점장을, 이백순 전 행장이 도쿄지점장을 지냈다. 은행장이 된 이후 재일교포 주주들과 교류를 했다고는 해도, 그들이 조 행장에게 마음을 열고 신뢰를 보내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이는 자연스럽게 라응찬 계보로 눈길이 가는 이유가 되고 있다. 현재 신한금융 내부에서 대권 도전이 가능한 인물들 중 라응찬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위성호 신한카드 사장, 강대석 신한금융투자 사장, 이성락 신한생명 사장 등 3명 정도로 압축된다. 이들 가운데 강대석 사장과 이성락 사장은 올해 3월, 위성호 사장은 올 8월에 각각 임기가 끝난다.
따라서 이들이 연임에 성공하느냐 여부가 차기 신한금융 회장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을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도 잠재적 후보에 포함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현직이 더 유리하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분석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만간 열리게 될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자경위)를 통해 재일교포 주주들에게 1차 신임 여부를 묻게 될 예정이다. 자경위는 회추위와 마찬가지로 한동우 회장과 사외외사 5명으로 구성되는데, 계열사 CEO의 연임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예선전 격인 자경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회추위에 올라갈 확률은 크게 낮아지는 셈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