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우리 함께 날아오르자”
▲ 뼈를 깎는 노력으로 최근 순조롭게 재기의 길을 가고 있는 박찬호(왼쪽) 스포츠투데이, 지난 5일 한화와 입단계약을 맺은 조성민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
박찬호와 조성민. 고등학교 시절부터 날리던 이들 우완 정통파 투수들은 전혀 상반된 길을 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시절에는 조성민이 훨씬 앞서 갔다. 신일고 에이스이던 조성민은 194cm의 키에 훤칠한 외모, 그리고 초고교급 피칭을 과시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반면 스스로 ‘공주 촌놈’을 자처한 박찬호는 시속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지녔다는 것 외에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실제로 박찬호는 조성민이나 임선동 등 동기들이 언론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더 훈련에 몰두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91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벌어진 ‘굿윌게임’부터 두 선수의 명암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한-미-일 고교 올스타팀이 모여 경기를 펼쳤는데, 박찬호는 홀로 3승을 따내며 현지에 모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박찬호는 미국행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조성민은 국내에 머물며 활약하다가 일본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다.
미국에서 박찬호의 활약은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96년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5승을 거둔 박찬호는 97년 14승을 거두며 일약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박찬호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조성민 역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대학에서는 통산 100게임에서 47승16패의 성적을 거뒀고, 1995년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은메달의 주역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 말 일본 최고 구단인 요미우리와 8년간 1억5천만엔에 계약을 맺으면서 화제를 모았다.
조성민의 일본에서의 야구 생활은 마치 청룡열차를 타듯 오르락내리락을 거듭했다. 몸이 건강할 때는 빼어난 피칭으로 마운드를 호령했지만, 팔꿈치 부상에 계속 시달리며 꾸준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2002년 일본 생활은 막을 내렸다. 자이언츠에서의 성적은 총 53게임에서 11승10패에 11세이브, 그리고 방어율 2.84를 기록하며 끝났다.
그리고 연상의 탤런트 최진실과의 결혼이 이어지면서 조성민은 야구보다는 온갖 가정사의 구설수로 자주 언론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들로 2000년 12월5일 세인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지만, 부부 생활이 삐걱댄다는 소식은 계속해서 소문에 소문을 물고 들려왔다. 결국은 폭행 혐의로 고소하고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고 채무 문제로 고소하는 등 추한 모습들을 보인 끝에 2004년 9월1일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 판결이 나면서 두 사람은 3년 9개월 만에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어찌 보면 양 선수가 또 비슷한 운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성민이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가정 문제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박찬호 역시 부상으로 한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2001년 시즌을 마치고 프리에이전트가 된 박찬호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천5백만달러에 계약하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그러나 LA 다저스 시절 무리했던 것이 탈이 나면서 평균 연봉 1천3백만달러 투수의 몫을 전혀 해주지 못했고, 지난 3년간은 현지 언론과 팬들의 야유와 저주의 대상이 되면서 원형탈모증이 생길 정도로 몸과 마음의 고생이 극심했다.
그러나 이 기간 두 사람의 야구에 대한 자세는 백팔십도 달랐다. 박찬호는 온갖 질타와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비아냥 속에서도 부상의 원인을 찾고 재활 운동과 몸 만들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결국 지난 겨울 통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자신감을 얻으면서 올 시즌 초반 3승1패로 빅리그 데뷔 후 최고의 스타트를 끊었다. 물론 아직 100% 부활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뼈를 깎는 노력이 보답을 받는 것 같아 참 다행스럽다.
투수로서 최고의 자리에 서봤던 조성민도 미련이 없을 리가 없다. 조성민은 지난 2년간 다이아몬드 복귀를 꿈꾸며 국내 프로야구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 참가했지만 어떤 팀도 그를 원하지 않았다. 2년여 공백기로 인해 구위가 기대에 못 미치는 데다 연예인에 가까운 언론의 지나친 관심에 부담을 느껴 낙점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조성민은 작년에 직구 구속이 110km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스카우트들을 실망시켰다.
이제 박찬호는 부활을 위한 발판을 확실히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97승을 거두고 있으니 조만간 빅리그에서 100승을 거둘 것이 확실시된다. 반면에 조성민은 그야말로 이제 시작. 과연 그가 새롭게 신인의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할 만큼 의지가 굳은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본인이 마음만 독하게 먹는다면 재기할 가능성 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축구에서 골을 넣어본 선수가 계속 골을 넣듯이 야구도 마찬가지다. 조성민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승리와 세이브를 거두며 위력을 떨쳤던 경험이 있다. 특히 그가 남긴 방어율 2.84는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나이도 만 서른두 살에 불과하고, 3년여 마운드를 떠나 있었던 것 역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에게는 자연치유력이 있으니 팔꿈치 부상에서는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화에서 설마 검사도 하지 않고 조성민을 입단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올 시즌에 재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본인의 정신자세에 따라 앞으로 몇 년간 좋은 투수로 국내 야구에서 활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같은 길을 가면서도 다른 모양새로 살고 있는 박찬호와 조성민. 재기에 성공한 그들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옛날을 회상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원해 본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