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 골프라고 그런게 없을까. 일본투어 최고의 골퍼로 거듭난 허석호, 올시즌 미LPGA 투어 준우승 2회에 빛나는 이미나, US여자오픈 환상의 버디샷을 연출한 김주연 등 최근 골프계에는 유난히 한국선수들의 ‘고진감래 스토리’가 많다.
먼저 허석호. 올해 일본 최고의 대회인 PGA챔피언십과 JCB센다이클래식에서 우승하며 2승으로 일본투어 상금 1위에 올랐다. 2002년 주켄 산교 히로시마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2004년 2승(PGA챔피언십ㆍ일본골프투어 챔피언십)을 포함하면 총 5승으로 한국인 최다승 기록(김종덕 4승)을 갈아치웠다. 이런 허석호도 지난 2003년 미PGA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했다가 골프를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좌절을 맛봤다. 뭐 대단치도 않은 ‘양놈(미국선수)’들에 비해 비거리가 턱도 없이 짧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낸 끝에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선배 최경주의 소개를 받아 세계적인 스윙코치인 필 리츤을 찾아갔고, 스윙을 뜯어고쳤다.
60일 동안 비거리를 늘리는 특훈을 했다. 몸무게도 근육 덕에 10kg이나 불었다. 결국 2004년 스스로 “지난해 나보다 20m 더 나가던 일본선수와 함께 경기했는데 이제는 내가 20m 더 나간다”고 말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2승을 거두며 세계적인 강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이때였다.
김주연은 ‘2백11달러의 아픔’이 있다. ‘제2의 박세리’라는 별명답게 2001년 미LPGA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3위까지 주어지는 풀시드를 눈앞에 뒀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생겼다. 1부투어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잠깐 귀국해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하는 사이 선배 이정연에게 3위 자리를 추월당했고, 마지막 대회에서 버디 하나가 모자라 채 30만원도 안 되는 금액 차이로 미LPGA 무대를 놓쳤다. US여자오픈 우승상금 56만달러(약 6억원)를 받은 김주연은 지금도 2백달러 이상의 돈은 쉽게 쓰지 못한다.
김주연과 청주 상당고 동기동창인 이미나도 고생이 많았던 선수 중 한 명이다. 용인대에 다니던 2001년 아마추어로 스포츠토토여자오픈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프로로 전향, 2002년에는 4관왕을 차지하며 국내 정상에 우뚝 섰다. 워낙 초고속 엘리트 가도를 달린 탓에 연간 2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스폰서 제의도 뿌리쳤다. 하지만 미국은 냉정했다. Q스쿨에 낙방했고, 지난해 퓨처스투어를 뛰었지만 풀시드를 받는 데 실패했다. 돈도 스폰서가 없었던 까닭에 모아놓았던 돈마저 다 까먹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지난해 말 Q스쿨 25위로 간신히 풀시드를 확보했고 올해는 코닝클래식과 HSBC월드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며 비로소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2억원도 뿌리쳤던 이미나는 요즘 누가 음료수 한 잔만 권해도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비온 뒤 땅이 더욱 굳는다고 한다. 골프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다.
스포츠투데이 골프팀장 einer@stoo.com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