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9단에 CF 요청 밀려올 듯…중·일 들러리 전락 무척 아쉬워 해
일주일 동안 바둑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이세돌 9단(33)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알파고를 상대로 5번기 마지막 대국을 벌인 15일 오후 시간대의 화제는 단연 이세돌이었다. 지상파방송 3사가 이례적으로 바둑을 동시 생중계했고, 종편과 케이블까지 더하면 무려 10군데 방송사에서 바둑을 생중계했다. 특히 중후반 접전이 펼쳐지던 오후 4시30분 무렵 네이버 중계 동시접속자 수는 45만 명을 넘어섰다. 이쯤되면 월드컵이 부럽지 않은 바둑 열기다.
비록 승부는 1승 4패, 이세돌 9단의 아쉬운 패배로 끝났지만 바둑계는 승부 이상의 것을 얻었다. 이세돌 vs 알파고의 5번기 승부의 앞과 뒤, 그리고 숨은 이야기들을 정리했다.
일주일 동안 온 나라가 바둑으로 들썩거렸다. 비록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1-4로 패했지만 바둑계는 승부 이상의 것을 얻었다. 3월 9일 한국기원에서 시민들이 이세돌-알파고의 1국을 시청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이세돌, 11억 대신 100억 이상 얻었다
구글이 이세돌에게 100만 달러를 걸고 5번기를 제안했을 때 대부분의 바둑계 인사들은 이세돌의 엄청난 운에 경악했다. 중국 구리와의 10번기 승리로 10억을 벌어들인 이세돌이 구글이 내건 공돈 10억을 또 가져간다고 생각했다. ‘구리’와 ’구글‘. ‘구’란 음절이 이세돌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였다.
이세돌도 승리를 자신했다. “당연히 내가 5-0으로 이길 것이다. 만일 내가 한번이라도 진다면 그게 뉴스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알파고는 예상과는 달리 이세돌에게 3연패라는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 이미 승부가 결정났는데 5국을 모두 두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선수보호 차원에서라도 중단시켜야 한다”는 등 이세돌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로 이세돌은 30년 기사 인생에서 가장 큰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보였고 거액의 상금도 날려 충격이 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세돌은 절치부심 4국에서 엄청난 집중력과 집념을 발휘, 알파고에게 승리를 거둬 과연 ‘인간대표’답다는 찬사를 들었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이세돌의 일방적인 승리를 예상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오히려 세 번을 내리 지고 승리를 따낸 것이 더욱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모두가 5-0 패배를 예상했을 때 이세돌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생명력을 보여줬고, 거기에 사람들의 심금이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세돌이 사랑받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번 알파고와의 맞대결에서 승패와 상관없이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줬고, 거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대국이 끝날 때마다 이어진 인터뷰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충격의 3연패 후 이세돌은 기자회견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심한 압박감과 부담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며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한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겸손한 그의 자세에 온 국민이 감동을 받았다.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신드롬’을 금액으로 환산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이세돌이 10억을 잃고 100억 이상을 얻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실제 광고계 사정에 밝은 인사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 이세돌 9단은 CF계 쪽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인 것은 확실하다”면서 “조만간 이세돌 9단에게 광고 제의가 물밀듯 밀려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세돌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장인정신을 지켜낸 대가다.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대표, 이세돌 9단,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왼쪽부터). 사진제공=한국기원
#최대 수혜자는 구글
돈 많은 기업 구글이 바둑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사람들은 ‘구글이 비싼 수업료 지불하고 한 수 배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바둑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고, 쉽게 정복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때 바둑계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세계 최고 기업이라는 구글이 자신들의 최종 보스(에릭 슈미트)와 공동 창업주(세르게이 브린)까지 한국으로 불러들여 시합을 벌일 때는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뚜껑을 연 결과는 이미 보도된 대로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알파고는 엄청난 실력으로 인간계 최강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고, 지켜보는 이들을 당황시켰다.
구글의 연구는 즉각 주가에 반영됐다. 지난 14일 방송된 MBC <다큐스페셜-세기의 대결 이세돌 vs 알파고>에서는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기간 동안 급등한 구글의 주가표가 공개됐다. 공개된 표에 의하면 이세돌과 알파고의 1국이 진행된 지난 9일, 713.53달러였던 구글의 주가가 2국이 진행된 12일에는 744.87달러로 4.39% 상승했다. 이는 한화 10조 8700억 원에 해당되는 금액으로 이번 이세돌과 알파고에 대결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 눈에 나타냈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앞으로는 지능을 이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회사가 전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 구글이 인공지능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 수백 조, 수천 조를 벌 수 있다”며 인공지능 알파고의 가치를 평가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번 챌린지매치의 최대 수혜자는 구글인 셈이다.
#알파고의 향후 대결 계획은?
이세돌-알파고의 승부가 알파고의 승리로 끝나면서 과연 알파고의 다음 상대는 누가 될 것이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세돌 9단도 설욕전을 원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도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눈치다.
시상식이 끝난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은 “이번 대결이 예상대로 되진 않았지만 이9단이 끝까지 굴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 바둑이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됐다”고 기뻐했다. 그는 또 “1국에서 이 9단이 지는 것을 보고 차라리 2승 2패 팽팽한 승부를 벌이다 최종국에서 이 9단이 이겼으면 더 드라마틱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면서 “이세돌이든 누구든 알파고가 우리 기사와 한 번 더 대결을 벌였으면 좋겠는데 이젠 쉽지 않을 것 같다. 사실 이번 챌린지매치 계약서에 재대결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구글은 알파고가 이세돌에게 패할 경우 반드시 재대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계약서도 그렇게 작성됐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이 9단이 패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대결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넣지 않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아쉬운 부분이다”고 털어놨다.
한편 구글의 하사비스 CEO는 승리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진 모든 역량을 이번 대결에 집중했기 때문에 아직 명확한 향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알파고를 더 발전시킬 부분들은 파악했다. 영국으로 돌아가 몇 주 동안 이를 관찰해서 더 많은 바둑 대국을 할 것인지, 또는 연구진이 이번 대국을 통해 얻은 인공지능 기술을 모두가 알 수 있게 공개할 것인지 몇 달 안에 결정해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 우리는?
앞서 언급한 대로 중국과 일본 바둑계는 이번 매치의 주인공으로 자신들이 낙점 받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구글은 지난 2010년 검열 문제로 중국 정부와 충돌한 후 중국 본토에서 대부분의 사업을 접고 철수했었다. 그 사이 플레이스토어의 빈 자리는 바이두와 샤오미 등 중국 기업이 차지했다. 구글이 세계최대 시장 중국을 놔두고 한국을 낙점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찌됐든 중국 바둑계는 최초의 인공지능과의 대결이 커제가 아니고 이세돌이라는 사실에 낙심했던 중국바둑계는 다시 알파고와의 대결을 바라고 있다.
중국 신화사통신의 김경동 특파원은 “커제를 비롯한 중국 기사들도 당연히 알파고와의 대결을 열망하고 있다. 조건만 맞는다면 반드시 응할 것이다. 다만 중국 정부와 구글의 이해관계가 걸림돌이다. 하지만 다시 중국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는 구글이 시장 재진입의 협상 카드로 알파고 카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면서 “대국 장소가 걸림돌이 된다면 홍콩이나 마카오 등지에서 대결을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둑에서만큼은 보수적 성향이 강한 일본은 일본기원 등 바둑계보다 일반 팬들이 더 답답해하는 분위기다. 일본 커뮤니티 사이트 ‘2ch’의 바둑팬들은 이구동성으로 “굉장한 싸움이었다. 천재기사 이세돌과 천재 프로그래머 데미스 하사비스가 신의 영역을 보여줬다”면서 역사에 남을 승부였다고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서운한 마음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은 하락세에 있던 바둑이 이번 대결로 인해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바둑을 모르던 사람들이 바둑을 배우겠다고 나서고 있다. 제2의 중흥기를 맞는 것 같다”고 부러워하면서 “반면 일본은 아무 노력이 없다. 심지어 바둑의 본산이라는 일본기원 홈페이지에는 이번 대결에 대한 어떠한 정보나 소식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유경춘 객원기자
베일 벗은 알파고의 단점은 판 쪼개기 위부터 1, 2도 알파고가 특히 놀라운 것은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는 수법으로 천하의 이세돌에게 승리를 거둔다는 점. <1도>를 보자. 흑1 다음은 예외 없이 하변을 전개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태연히 손을 빼 상변 흑3으로 향한다. 책에 없던 수. 초보자들이 뒀다면 선생님에게 혼나는 수지만 알파고는 이런 수법을 발판삼아 이세돌에게 4승을 따냈다. 프로들이 바둑을 헛배웠다고 한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없을까. 프로그램 개발자이자 세계 사이버기원 곽민호 대표는 알파고를 꺾을 비책으로 ‘판을 최대한 쪼개되, 모양을 결정짓지 말 것’을 주문한다. 곽 대표는 “이세돌 9단의 패배가 아쉬워 지난 4국을 밤을 새워 분석했다. 그 결과 알파고의 최대 강점은 돌을 연결하는 능력이라고 결론지었다. 돌이 연결되면 약점이 없어지고 강해진다. 몇 번 패싸움이 발생했지만 이세돌 9단이 모두 팻감이 부족했던 것은 알파고의 연결이 더 강하고 두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결책으로 그는 알파고를 상대로는 초반부터 판을 잘게 쪼개 전투를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결정되지 않은 모양이 많을수록 알파고의 실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도>는 이세돌이 유일하게 이겼던 4국의 하이라이트 장면. 백1로 끼워가자 알파고는 이후 진행에서 수차례 연속적으로 버그를 일으킨다. “백1에 알파고가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흥미로운 결과다. 만일 중앙전투 하나만 신경 쓴다면 알파고의 수읽기는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도의 상황에서 알파고는 중앙전투는 물론 하변 ▲ 넉 점과 우측 잡혀있는 흑 넉 점도 계산에 넣었던 것 같다. 국면을 단순화시켜 분규를 피해야 하는데 세 군데에서 동시에 문제가 발생하니 알파고의 수읽기가 급격히 균열을 일으켰던 것”이라고 곽민호 대표는 알파고의 단점을 분석했다.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