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선수는 스타감독 될 수 없다굽쇼? 제가 그걸 뒤집어 볼겁니다
▲ 2002년의‘태극전사’에서 대학팀 코치로 변신한 김태영. 그는“월드컵 얘기를 하다보니까 정말 아쉽네요. 은퇴가…”라며 독일월드컵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쏟아냈다.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2002월드컵에서 ‘빨간 마스크’ ‘배트맨’이란 닉네임을 달고 투혼을 불사른 김태영(36·관동대 코치)은 4년 전 월드컵에 승선할 최종 명단이 발표되기 전의 초조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는 5월 11일이면 ‘아드보카트호’에 탑승할 23명의 선수들이 발표된다. 김태영은 지금 후보군에 오른 선수들의 심정이 피를 말리는 기분일 거라면서 엔트리 발표 후에도 비행기 탑승 전까진 안심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6일 소속팀이었던 전남 드래곤즈 홈구장에서 인상적인 공식 은퇴식을 치른 후 곧장 지도자 수업을 겸한 관동대 코치로 자리를 옮긴 김태영은 풋풋한 젊음의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캠퍼스에서 ‘제2의 인생’을 만들고 있었다.
선수에서 대학 코치로
오랜만의 해후였다. 은퇴 후 인터뷰 한번 하자고 말로만 약속을 했다가 결국 해를 넘겨서 만나게 됐다. 김태영과 강릉 시내에 있는 닭갈비촌으로 향했는데 음식점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저마다 사인 요청을 해오는 바람에 제대로 식사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항상 그라운드에서 대면했던 얼굴을 강릉에서 보게 되니 왠지 어색하고 적응이 안됐다. 그러나 김태영도 적응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나보다. 서로 쑥스러운 웃음만 짓다가 닭갈비를 먹으면서 가벼운 얘기부터 풀어나갔다.
“은퇴 후 처음엔 6개월 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무조건 쉬려고 했어요. 정말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죠. 그러다 고재욱 감독의 부름을 거절 못하고 이곳에 왔는데 처음엔 좀 암담하더라구요. 인조잔디가 아닌 흙 운동장인 데다가 또 다시 숙소 생활을 해야 하는 부분도 힘들었어요. 그래도 좋은 배움의 기회로 삼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남 시절 지금은 다른 팀으로 이적한 김진규와 백지훈이 자신을 ‘삼촌’이라 불렀다면서 호탕하게 웃는 김태영은 독일 월드컵에 대한 미련과 기대를 조금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 무릎 부상만 당하지 않았다면, 수술 후 재활에 대한 자신감만 있었더라면 저도 지금 독일월드컵에서 뛰기 위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을 겁니다. 전 독일월드컵까지 뛴 다음 은퇴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무릎 부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도저히 재활의 고통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거죠.”
2002월드컵 리플레이
4년 전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도 역시 수비진에 대한 문제점이 연일 기사화됐었다. 그때는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등으로 구성된 스리백 라인이 30대 이상의 노장 선수들이었고 이 부분이 체력 열세로 이어지면서 매스컴의 지적을 받았다.
▲ 지난해 11월 12일 김태영의 대표선수 은퇴식. 황선홍과 포옹하고 있다. | ||
김태영은 2002년 월드컵을 떠올리면서 ‘그땐 미쳤었죠. 완전히 빠져 들었으니까’라고 표현했다.
“더 이상 뛸 힘이 없을 것 같다가도 ‘게임장’에만 들어가면 힘이 불끈 솟는 거예요. 경기장 주변의 도로는 물론이고 관중석이 붉게 물들어 있는데 그 응원 소리, 함성 소리에 고갈된 에너지가 생성되더라구요. 포르투갈전에 이어 이탈리아전 때는 혼미한 상태로 뛴 것 같아요. 선수들이 제 정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그 게임을 2-1로 이겼으니…. 미치지 않고는 이뤄낼 수 없는 결과였어요.”
그래서 김태영은 독일월드컵이 너무 걱정된다고 말한다. 홈이 아닌 원정 경기인데다 상대팀의 일방적인 응원에 우리 선수들이 위축되고 긴장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98 프랑스월드컵 때 저희가 딱 그랬거든요.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갔는데 막상 경기장에 들어가니까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더라구요. 상대방 응원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더욱이 월드컵 경험이 없다 보니 그동안 배우고 익힌 걸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참패를 당해 버렸죠.”
지금의 대표 멤버들
기자가 독일 월드컵에서 뛸 베스트 11을 꼽아달라는 우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지금과 같은 시기엔 말 한 마디 잘 못해도 선수들이 상처받을 수 있다며 현답을 내놨다.
“선수들이 안 그런 척해도 언론에 굉장히 민감해요. 기사들도 꼼꼼히 읽고 자기 이름이 나왔나 안 나왔나 무척 신경쓴다니까요. 그런데 자칫 이상한 기사라도 나오면 한없이 기분이 안 좋아져요. 얼마 전에 (김)남일이 열애설도 그런 거죠. 한창 월드컵 준비해야 할 시기에 여자와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선수는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지금은 모든 기자분들이 선수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기사를 써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모두 한마음이 돼야 하는 시기잖아요.”
▲ 2002년 월드컵에서 김태영은 투지 넘치는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현 대표팀 수비진이 4년 전보다 낫다며 여전히 거론되는 수비불안 지적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 ||
이동국의 부상으로 공백이 생긴 공격진에 김태영은 조재진을 적극 추천했다. K-리그 시절 조재진을 전담했다는 그는 수비를 등지고 공격하는 플레이가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J리그에서 물오른 기량을 과시하고 있어 그 몫을 해낼 것이라는 믿음까지 보탰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핌 코치는 이미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분들이세요. 최종 엔트리를 뽑고 나선 분명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훈련에 돌입할 겁니다. 원정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이 어떤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하는지도 잘 알고 계실 거구요. 토고의 아데바요르는 알려진 것 이상의 뛰어난 플레이어라고 하더라구요. 프랑스의 앙리는 어떻구요. 일대일로 마크가 안 되는 선수죠. 어휴, 월드컵 얘기를 하니까 정말 아쉽네요. 은퇴가….”
어제의 동지들 부상 그후
황선홍, 김태영, 유상철…. 모두 월드컵을 뛰었던 선수들이고 그리고 세 명 모두 월드컵 이후 은퇴의 길을 밟은 ‘어제의 동지’들이다. 또 다른 공통점이라면 세 명 모두 부상 때문에 그라운드와 이별을 고했다는 사실이다(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세 명이 이번 월드컵에서 방송 해설을 맡았다).
“나이 들어 대표팀과 프로팀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안 아플려야 안 아플 수가 없어요. 프로에서 전 게임을 다 뛰잖아요. 그러다 대표팀에 들어가면 또 다시 체력훈련을 해요. 본프레레 감독님 때가 가장 심했죠. 한 번은 너무 훈련이 힘들어서 절 포함한 몇몇 고참들이 감독님 방을 찾아갔었어요. 지금까지 소속팀에서 정상 훈련을 하고 왔는데 무슨 체력 훈련을 또 하느냐면서 훈련량을 줄여달라고 부탁드렸죠. 정중한 요구였어요. 그 후로 조금씩 나아지긴 하더라구요.”
닭갈비를 먹으며 4년 전의 ‘월드컵 추억 여행’을 떠나보니 그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월드컵 기간 동안 방송 해설을 맡게 된 데 대한 소감을 들었다.
“제가 말을 잘하게 생겼어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기자의 반응에) 그래요. 저 말 못해요. 20여 년을 발로만 먹고 산 사람이 어떻게 입으로 먹고 살겠어요. 그래서 ‘추임새’ 역할에 만족하려구요. 선수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역할 말이죠.”
월드컵보다 지금 맡고 있는 관동대를 전국체전 예선전에서 본선에 진출시키는 게 개인적으론 더 중요하다며 활짝 웃는 김태영. 기자와 헤어지면서 이 말을 꼭 써달라고 부탁했다.
“스타 플레이어는 스타 감독이 될 수 없다면서요? 제가 그걸 한번 뒤집어 보려구요. 그게 지도자를 향해 나가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영미 기자 bo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