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빙판’ 이제는 달라지길…
▲ 로이터/뉴시스 | ||
2005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현수가 (송)시백이랑 함께 A 선수에게 엄청 두들겨 맞은 것이다. 1000m에서 양보를 안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A 선수가 현수랑 시백이에게 1등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한 걸 현수가 듣지 않고 대신 시백이를 밀어줘 금메달을 따게 한 것이 A 선수를 분노케 한 모양이다. 3000m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윤재명 코치가 선수들을 모아 놓고 여준형이 메달을 한 개도 못 땄으니 서로 도와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수는 선배가 아닌 윤 코치가 지시한 거라 여준형을 위해 스피드를 내지 않고 레이스를 벌이는데 나중에 보니까 여준형 대신 A 선수가 앞서 나가는 걸 보고 현수가 뒤따라 잡아 결국 1위로 골인하게 된다.
일련의 일들로 현수에게 앙금이 생긴 A 선수가 코치가 없는 틈을 타서 현수랑 시백이를 수십 차례 때렸는데 이 얘기를 현수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레이스에서 양보를 안 했다고 후배를 두들겨 팬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린가. 도대체 코치는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구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빙상연맹이 한 차례 홍역을 앓았는데 가슴이 아픈 건 이 일로 인해 파벌 싸움이 심화됐다는 사실이다. 국제 대회가 열릴 때마다 외국 선수들이 현수에게 이렇게 물어본다고 한다. ‘너희 나라는 참으로 이상하다. 왜 같은 나라 선수끼리 레이스를 방해하고 왕따시키고 그러는 거냐’고. 정말 창피한 현실이다.
▲ 지난 토리노 올림픽 1500m에서 안현수의 질주 모습과 금메달을 목에 건 모습. AP/연합뉴스 | ||
1500m에서 현수가 금메달을, 이호석이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마지막 레이스에서 이호석이 ‘아름다운 양보’를 하는 바람에 현수가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정말 사실이 아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도 아니고 올림픽같이 큰 국제 무대에서 양보라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현수가 그 일로 인해 금메달을 따고도 얼마나 많이 마음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양보를 해서 금메달을 땄다고 기사를 쓴 분들은 그 레이스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한 번 봤으면 좋겠다. 그럼 정답이 보일 것이다.
가끔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무척 힘들게 보낸 대표팀에서 현수가 제 정신으로 운동하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 모든 환경들을 겪고 인내하는 아들이 대견하고 대단해 보인다.
현수는 2010년 캐나다 동계올림픽 이후 은퇴할 예정이다. 은퇴 전에 세운 목표는 전이경이 갖고 있는 한국 최다 메달리스트 기록을 깨는 것이다. 전이경은 올림픽 금메달 4개와 동메달 1개를 기록하고 있다. 캐나다 올림픽에서 현수가 금메달을 추가한다면 적어도 타이나 기록을 깨는 일이 벌어진다.
처음 이 연재를 시작할 때는 솔직히 두려웠다. 내가 풀어내는 스토리들이 현수에게 도움이 될 지 어떨 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내보이기 어려운 가족사를 고백할 때는 참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주위에서 신문을 보고 격려도 보내주고 현수도 편하게 받아들여 마음이 놓였다. 막상 연재를 끝낸다고 하니 서운하지만 앞으로 현수가 갈 길, 또 내가 현수 옆에서 해줘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기에 서운함을 기대로 바꿔 본다.
공항에서 폭행 사건을 저지른 현수 아빠가 아니라 쇼트트랙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할 말 하고 사는 아빠로 봐줬으면 좋겠다. 내 아들만 생각한다면 난 그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정의와 진리가 인정받고 대접받는 그런 세상, 쇼트트랙이 그런 길로 걸어가길 바란다.
정리=이영미 기자 bom@ilyo.co.kr
다음 호부터는 프리미어리거 설기현 선수의 어머니 김영자 씨가 쓰는 별들의 탄생 신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