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승리 앞에 겸손해야...자칫 ‘제2 열우당’ 꼴 난다”
대구 수성갑에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자는 대권보다 대구 살리기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대승을 거뒀다. 김 당선인의 승리 외에도 이번 총선에서 대구 전체가 ‘혁명’이라 일컬어질 만큼 흔들렸다.
“대구시민들이 참고 참았던 것들, 억울하고 섭섭했던 것들이 이런 결과를 냈다. 그동안 정치권에선 대구 민심을 정직하게 읽지 않고 자기네들 편리한 대로 해석했다. 대구를 무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했다. 특히 지난 재보선 때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호남에서 당선된 이후 시민들 스스로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 시점에 이 같은 과감한 결정을 해주셨다.”
―대구 수성갑 투표율이 무려 68.5%로 집계됐다. 대구에서 가장 높았고,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높은 투표율이었다.
“아침에 비가 내릴 때만 해도 투표장에 거의 사람이 없었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너무 없어서 ‘또 어렵지 않나’ 싶더라. 불안 불안했다. 그러다 오전 11시부터 다행히 비가 가늘어지고 투표장에 사람이 몰리더라. 젊은 분들이 모이고 투표율이 쭉쭉 올라갔다. ‘뭔가 변화가 있구나, 강렬한 열망이 있구나’ 느껴졌다.”
―선거 막판 김문수 후보 측이 각종 의혹을 제기하는 등 공격이 매서웠다. 평소 친분을 비춰볼 때 섭섭하지 않았나.
“사람이니까 섭섭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난 내 자신과 한 약속이 있다. 일체 상대편 공격이나 네거티브는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또한 내가 괜찮은 상품이라는 것을 유권자에 이야기하는 것도 바쁘더라. (선거 운동기간은) 짧고 짧은 아까운 시간이지 않나. 한편으론 저쪽 캠프에서 잘못 읽은 거다. 특히 (김문수 후보가 막판 내세운) 종북 프레임은 이제 먹히지도 않는다. 특히 수성구 같은 곳은 더 그렇다. 그런 공격도 하루 이틀이다. 이젠 다 안다.”
―그동안 중앙당에 대한 질문을 드릴 때마다 ‘대구를 뚫는 것이 내 우선 과제’라는 이유로 한 걸음 물러나 계셨다. 곧 전당대회인데 당권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그 얘기는 지금 드릴 시점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동안 스스로 중앙과 거리를 둬왔다. 이 때문에 솔직히 중앙당이 어떤 흐름으로 돌아가는지 잘 모른다. 그 흐름도 모르면서 섣불리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것은 있다. 이번 과정을 지켜보니, 단순한 야권 통합이 아니라 ‘재구성’ 되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지더라.”
―재구성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야당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져서는 안 된다. 공통의 비전과 가치가 없으면 어렵다. 이것조차 없으면 존립할 수 없다. 저쪽(여권)은 최소한 권력이라도 있지만 우린 없다. 이제는 야권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다부진 각오가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선전은 사실상 득승(得勝)이다. 생각지도 못한 승리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이 정말 우리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을까.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확확 바꾸기를 바라고 표를 내어 주신 것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이건 정말 성급한 판단이다.”
―더민주당이 이번 승리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인가.
“당연하다. 정말 두려운 게 있다. 열린우리당 때 탄핵 덕분에 우리 실력에 비해 너무나 많은 의석을 가져갔다. 그것을 주체하지 못하다 2년 만에 몰락했다. 이 생각만 하면 정말 두렵다. 절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지난 13일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이 확정됐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앞서 ‘재구성’이란 표현을 썼는데, 결국 통합 여부를 포함해 국민의당과의 관계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그곳엔 이제 이번 총선으로 확 힘을 받은 안철수라는 강력한 지도자가 있다. 이뿐만 아니다. 천정배를 포함한 기라성 같은 지도자들이 많다. 난 그 분들도 야권의 현실에 대해 나와 문제의식이 같다고 본다. 왜. 그 분들도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지도자 밑에서 적어도 20년 동안 야당을 지켜본 분들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것이라고 믿는다. 또 안철수 대표는 결국 대선에 꿈이 있다. 선거가 끝난 마당에 야권의 분열이 꼭 (대선의 길에) 효과적인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굳이 안 대표 스스로 대선에 나간다면 이 분열의 구도를 갖추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지를 두자.”
―어쨌든 이번에 지역주의를 넘어섰다. 주변에서는 벌써 대권 도전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너무나 성급하고 촉 빠른 관측이다. 대구시민들이 나보고 대선 나가라고 뽑아준 것은 아니다. 대구시민들이 기대하는 것은 성실한 일꾼이다. 대구를 살리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담긴 모습을 더 바랄 것이다. 그 노력이 우선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어떤 잠재적인 뭔가가 내게 나타난다면 몰라도 너무 성급하게 대선에 눈을 돌리면 나 스스로 뿌리 없는 정치인이 된다. 정말 어렵게 눈물겹게 자리를 내어주셨다. 다짜고짜 대선 하겠다고 그러는 것은 안 된다.”
―이번 승리 뒤에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다. 특히 율동팀의 셋째 따님이 큰 화제였다.
“20년째 노익장을 과시해주신 팔순 아버지의 헌신과 노력, 봉사에 대해선 더 드릴 말씀이 없다. 집사람도 그렇다. 집사람은 김문수 후보와 경쟁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10개월 동안 단 하루도 안 쉬었다. 또한 셋째 딸이 끼를 발휘해줘서 화제를 몰고 왔고 정말 선거에 도움 많이 됐다. 우리 3대가 똘똘 뭉쳐서 이 숙제를 해낸 것이다.”
대구=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