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칠 때 떠나라? 나 아직 안 죽었어!
▲ 데뷔 후 처음으로 은퇴 압력을 받고 있는 KIA의 이종범. 냉혹한 프로 세계의 셈법은 프랜차이즈 스타도 비껴가지 않는다. | ||
이종범뿐만이 아니다. LG 마해영은 팀에서 ‘팽’당한 채 2군에서 와신상담 중이다. 2군 경기에조차 제대로 출전하지 못해왔다. 현대 정민태 역시 주위의 은근한 은퇴 압박 시선에 “등 떠밀려 유니폼을 벗을 순 없다”는 뜻을 밝혔다. 200승 투수 한화 송진우도 올해 부상을 이겨내고 시즌 중반 컴백했지만 예전만 못한 구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지막 기회를 달라
마해영은 은퇴 기로에 선 선수들 가운데 상황이 가장 나쁘다. 2004년 삼성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뒤 KIA를 거쳐 지난해 LG로 트레이드됐는데 이미 지난 겨울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LG가 사실상 방출 수순을 거쳐 마해영을 내놓으려 한 것이다. 마해영도 “다른 팀에서 기회를 얻고 싶다”며 LG에서 마음이 떠났음을 내비쳤다. 그런데 마침 신임 사령탑을 맡은 김재박 감독이 “마해영은 꼭 필요한 선수”라며 남겨줄 것을 요청한 덕분에 마해영은 올시즌을 LG에서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막 후 마해영의 부진이 계속되자 김재박 감독의 평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해영이 1할에도 못 미치는 7푼1리의 타율을 기록한 것과 관련해 김재박 감독은 “007 타율이라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계속 믿음을 주기엔 성적이 너무 나쁘다는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 지난 4월 23일 2군에 내려간 마해영은 4개월 넘게 1군에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2군에서도 일주일에 한두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마해영은 매일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하고 있다.
마해영은 “삼성 시절 김응용 감독님 밑에선 한 달 동안 안타 1개를 쳤어도 경기에 꾸준하게 출전했다. 반면 LG는 나를 믿어주지 않아 컨디션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말하고 있다. 구단이 기다려주지 않고, 쫓기듯 야구하다 보니 조급한 마음에 성적이 더 나빠졌다는 항변이었다. 물론 구단 측에서 들으면 굉장히 기분나빠할 만한 얘기다. 이미 지난 겨울 구단 측과 한바탕 싸우면서 양측이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태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 마해영은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올해 연봉 4억 원을 내년에 대폭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팀에서든 1년 계약을 한 다음에 제대로 뛰어보고 싶다. 그때도 안 되면 미련없이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명예회복 없이 은퇴 없다
KIA 이종범도 서정환 감독에게 불만이 있다. 시즌 중반, 서 감독은 “구차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명예롭게 은퇴하는 게 낫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직접적 언급이 없었더라도 이종범을 겨냥한 것임은 분명했다. 일종의 은퇴 압력인 셈이다. 이후 KIA 팬들 일부가 득달같이 들고 일어났다. “우리는 이종범을 보기 위해 광주구장을 찾는다. 오랫동안 팀에 기여한 간판 선수를 한순간에 은퇴하라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주장이었다. 문제가 꽤 심각해지자 서 감독과 KIA 프런트는 한발 물러선 듯한 자세로 변했다. 그러나 KIA 프런트는 근본적으로 이종범의 은퇴를 원하고 있다. 한때 “도루할 때면 공중을 걷는 것처럼 보인다” “경기당 3000명은 이종범이 몰고 온 관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종범은 과연 어떤 생각일까. 일단 스스로 약해진 것은 인정한다. 이종범은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도루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요즘은 어떻게 하면 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니 투수와의 기 싸움에서 먼저 지고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종범은 “1년 못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옷을 벗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명예회복을 한 뒤 은퇴하고 싶다. 은퇴는 내가 결정해야지 다른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고 말하고 있다. 국내에선 해태와 KIA의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 없는 이종범은 “이젠 KIA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다른 팀에 가서 연봉이 깎이더라도 제대로 한 시즌을 뛰고 그만둬야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다.
이종범은 학생 시절 선배들에게 맞았을 때 울었고, 일본 주니치에서 오른쪽 팔꿈치 복합골절상을 당했을 때에도 울었다. 일본에서 실패한 성적표를 쥔 채 2001년 여름 한국으로 돌아올 때에도 울었다고 했다. 그 때마다 남들 없는 곳에서 울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은퇴압력을 받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진짜 유니폼을 벗는 그날이 되기 전까지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
▲ 2군에서 뛰고 있는 마해영(왼쪽), 내년을 바라보고 있는 정민태. | ||
마흔두 살. 현역 최고령 선수인 한화 투수 송진우는 1년 만에 온탕에서 냉탕으로 옮겨온 케이스다. 지난해 송진우는 전무후무한 개인통산 200승을 올리며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썼다. 송진우의 200승과 2003년 이승엽(당시 삼성)의 한 시즌 56홈런을 놓고 신문사에서 ‘어느 기록이 더 깨지기 힘들겠는가’를 조사했더니 프로야구 전문가들조차 반반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그랬던 송진우가 올 시즌에는 은퇴 얘기가 나올 만큼 활약이 미미하다. 지난 겨울 동계훈련 때 팔꿈치 부상을 당했는데 이 때문에 5월 말이 돼서야 1군에 복귀했다. 컴백 후에도 인상적이지 못했다. 6월 13일 인천 SK전에 선발로 딱 한 차례 등판했지만 2이닝 4실점으로 부진했다. 그 경기를 제외하면 모두 중간 계투로 나서고 있다. 방어율도 5점대로 나쁘다.
송진우 역시 당장 은퇴하는 것에 대해선 고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고 단정했다. “올시즌에는 훈련 부족으로 구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올 겨울에 준비를 잘 해서 내년에 마지막 승부를 걸고 싶다”고 말했다. 송진우의 경우엔 그나마 여유가 있다. 이글스 간판 선수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서도 한화에서 탄탄대로를 걸을 전망이기 때문. 송진우는 “내년에도 선발에 진입하지 못한다면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겠다”며 각오를 새로이 다졌다.
현대 정민태의 경우엔 오히려 코칭스태프가 걱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2005년 가을 정민태는 어깨 수술을 받았는데 작년에 2이닝을 던진 게 고작이었고 올시즌에도 8월 22일 현재 1승을 올리지 못한 채 부진한 모습이다. 직구 위력이 반감돼있어 자신감이 떨어지자 변화구 승부를 늘린 게 오히려 자충수가 된 케이스다.
정민태는 “올해는 내년을 위한 워밍업이라고 생각한다. 꾸준히 몸을 만들고 있으니 내년에 마지막 승부를 걸겠다”고 말한다. 현대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관계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현대 코치들은 “정민태를 바라보는 팀의 눈길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상황에서 너무 망가지면 본인 스스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은퇴를 강권하는 이유
대부분 팬들은 반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고참 선수들에게 은근히 은퇴를 종용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오랜 기간 스타플레이어로 활약했기 때문에 이들 선수들은 대개 연봉이 높다. 수억 원에 달하는 몸값을 받고도 활약이 미미하다면 이는 손익계산서를 두들겨야 하는 구단 입장에선 분명 골치 아픈 일이다. 그러나 단순히 이 같은 돈 문제 때문에 스타 출신 선수들에게 은퇴를 유도하는 것만은 아니다. 모든 팀들은 전력 리빌딩을 위해 노력한다. 기존 주전 선수들을 관리하는 한편, 신인급 저연차 선수 가운데 눈에 띄는 자원을 발굴해 기회를 주려 한다. 그런데 노장 선수가 버티고 있으면 전력 리빌딩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베테랑 선수에게 주전 한 자리를 붙박이로 주기 위해선 여러 명의 신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실전 경험 기회를 차단해야 한다. 새로운 피를 불어넣어 팀에 활력을 넣으려던 시도가 어려워진다.
▲ 현역 최고령 선수인 송진우는 최근 선발에서 중간계투로 밀려났다. | ||
프로야구는 스타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상업 스포츠다. 때문에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하다. 팬들은 스타플레이어의 동선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구단 프런트도 그간의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팀이 정체된다. 따라서 때로는 물갈이 차원에서, 혹은 팀 성적 추락의 희생양 차원에서 고참 선수들에게 은퇴를 강요하기도 한다. 그래서 ‘박수칠 때 떠나라’는 요구를 은근히 하게 되는 것이다.
▶위기는 부활의 기회?
69년생인 삼성 양준혁은 여러 면에서 행복한 선수다. 올해 개인통산 2000안타를 넘어서면서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반열에 올랐다. 여전히 팀내 주축 타자로 활약하면서 또 한 번의 우승을 꿈꾼다. 3년 전 “마흔두 살까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양준혁의 인터뷰 기사를 보도했을 때, 야구판에선 “웃기고 있네”란 소리도 들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절대 허황된 것이 아님을 모든 팬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양준혁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2004년 말 선동열 감독이 삼성 사령탑으로 취임했을 때 양준혁을 타깃으로 삼았던 게 사실이었다. 취임 일성이 “나이? 상관없다. 오로지 실력에 의해서 주전, 비주전을 가리겠다”는 엄포였다. 취임식 당시 맨 뒷줄에 서 있었던 양준혁은 당시 “감독님께서 나를 콕 찍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뜨끔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감독 데뷔 시절 선 감독은 팀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고참들에게 위기 의식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양준혁은 2005년 2할6푼1리, 13홈런, 50타점으로 최악의 부진을 보였다. 그것도 선 감독 취임 첫 해에 말이다. 스스로 놀랐고 걱정이 뒤따른 건 당연했다. 양준혁은 당시 그 시절을 회상하며 “아! 나도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다”고 말한다.
이듬해 2006년 양준혁은 타율 3할3리에 13홈런 81타점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올시즌에도 최근 발목을 접지르는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3할2푼7리, 20홈런, 65타점으로 활약했다. 요즘 선동열 감독은 “양준혁이 없으니 허전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양준혁은 2006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대구 팔공산에서 굿판을 벌이기까지 했었다고 기자에게 털어놓았다. 진짜 무당을 사서 하는 굿판을 벌인 건 어찌 보면 프로야구 선수로서 엉뚱한 시도였긴 하지만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2006년에도 부진했다면 2007년의 양준혁은 현재와 다른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는 이미 은퇴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양준혁은 이처럼 한 차례 위기를 딛고 일어선 케이스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