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 단 입 열었다 “왠지 감이 좋아요”
▲ 베이징 올림픽을 생애 마지막 대회로 삼고 있는 이봉주는 하루하루를 불사르듯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그는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집이 아닌 강원도 횡계의 훈련 캠프장으로 향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인터뷰 당시 모습. | ||
이봉주(37)는 베이징올림픽 마라톤 코스를 직접 뛰어본 후 이렇게 말했다. 웬만해서는 ‘좋다’, ‘자신 있다’ 이런 얘기를 안 하는 이봉주다. 실제로 한국 방송사들의 베이징특파원들과의 인터뷰에서도 괜한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단 둘이 있을 때 이봉주는 좋은 느낌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예상이 현실화되기를 바랄 것이다. ‘국민마라토너’ 이봉주가 베이징올림픽을 1년 앞두고 마라톤코스를 직접 뛰었다. 4박5일 전 기간 동행취재를 한 <일요신문>은 지난 호에 이어 ‘봉달이, 베이징코스를 밟다’ 그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한다.
쿤룽호텔에서 출발한 시간은 8월 23일 새벽 5시 30분이었다. 5분 전에 현관으로 내려갔는데 이봉주는 이미 내려와 있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이봉주는 사람도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다. 어떤 약속이든 항상 여유 있게 자신이 먼저 나와 있는 편이다. 남들보다 걸음걸이가 빨라서 그런가.(^^) 워낙 성실하기 때문일 게다.
새벽이라 이봉주는 선글라스는 물론 모자도 쓰지 않았다. 두 차례 모발이식수술이 병원에서도 성공사례로 꼽힐 정도로 잘 된 까닭에 이제는 머리에 뭘 걸치지 않아도 보기가 좋다. 오히려 30대 초반 때보다 더 젊어 보일 정도다.
차량과 함께 미리 기다리고 있던 재중국 대한체육회의 전병호 씨와 인사를 나눈 후 이봉주, 여자 마라토너 이은정 선수 그리고 오인환 감독, 조덕호 사무국장과 함께 20㎞ 지점을 향해 출발했다. 마라톤은 초반보다는 20㎞ 이후가 중요하다. 특히 30~35㎞가 승부의 분수령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차량통제와 같은 특별한 보호조치 없이 그냥 뛸 수밖에 없기에 실제 뛰는 것은 이틀에 걸쳐 20㎞ 지점 이후 코스로 정한 것이다.
이동 중 이봉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무언가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반면 이은정은 잠이 모라란 듯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37세와 26세의 차이인가. 오 감독은 선수들의 안전이 걱정된 탓인지 “차량이 많으면 그냥 인도로 살살 조깅할 수도 있다”라고 주의를 줬다. 다행히도 아침 6시 베이징 시내는 한산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전거의 도시답게 거의 모든 대로는 옆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끼고 있었다. 인도가 아닌 도로에서 제대로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워밍업 체조를 끝내고 오 감독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이봉주와 이은정은 6시20분께 마침내 베이징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냥 뛰는 것이 아니라 구간별로 경사와 도로 상황 등을 체크해야 했다. 오 감독과 우리 일행은 차량으로 2~3㎞ 정도 먼저 가서 기다리다 선수들이 지나가면 다시 앞질러 가는 식으로 실전답사를 지켜봤다. 그런데 풀 스피드도 아닌데 이봉주의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하기야 1㎞를 3분이면 뛰는 까닭에 차에서 내려 담배 한 대를 채 다 피우기 전에 금세 이봉주가 따라왔다.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다. 21㎞ 지점 교차로에서 자전거도로가 없어졌는데 이봉주와 이은정은 하마터면 우회전하는 차량에 치일 뻔했다. 중국 드라이버들은 대체로 운전이 난폭하기 때문에 경적을 울리며 두 선수를 스치듯 지나갔다. 여기서 교통사고가 나면 정말 수습이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봉주의 적응은 빨랐다. 이후 교차로나 신호등이 나오면 미리 속도를 조절해 거의 멈추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통과했다.
▲ 새벽 베이징 거리를 뛰고 있는 이봉주와 이은정. | ||
이에 오 감독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 김완기가 훈련 도중 길을 잃어 심하게 고생을 했고 이 후유증으로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비화를 소개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거리를 뛰다보니 마라토너들은 외국에서 조깅을 나갔다가 길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이봉주는 “그래서 나는 모르는 도시에 가면 가급적 직선으로 쭉 갔다가 직선으로 온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얼마나 많이들 뛰어다니기에 이런 고민들을 할까.
훈련은 35㎞ 지점에서 끝났다. 7시를 넘기면서 거리에는 출근차량과 버스 그리고 자전거가 쏟아져 나와 점차 뛰기가 쉽지 않아졌다. 1시간 가까이 뛰었지만 오 감독은 아쉬운 눈치였다. 평소 때보다 뛴 거리가 짧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봉주는 점심식사와 낮 휴식을 가진 후 오후 훈련 때는 평소보다 더 많은 거리를 뛰었다.
저녁은 이날 한국에서 온 이병권 재중국 대한체육회장의 초대를 받았다. 이 회장뿐 아니라 베이징골프협회장을 맡고 이상운 <일요신문> 중국지사장 등 많은 유력인사들이 ‘봉달이’를 보러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봉주나 오인환 감독의 인내심도 제법 대단했다.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잘 뛸 수 있냐?”, “뛸 때 무슨 생각을 하느냐?” 등 만나는 사람들마다 비슷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럴 때마다 “마라톤 종목의 특성상 성실하게 운동하기 때문”이라거나 “경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생각은 할 수 없다”는 등의 대답을 성의 있게 했다.
베이징 체류의 마지막 날인 24일엔 바빴다. 아침 6시부터 2차 코스답사를 실시했다. 이날이 올림픽 개최 꼭 1년 전이기에 비록 베이징올림픽주경기장 안까지는 못 들어갔지만 최대한 끝까지 뛰었다. 삼성전자 베이징지사 직원이 지원을 나오고 이병권 회장 등 재중국 대한체육회에서 두 대의 차량 그리고 지상파 방송 3사의 취재차량까지 더해져 7대의 차량이 이른 새벽에 이봉주와 함께 베이징 시내를 누비는 장관이 연출됐다. 마침 이날이 한중수교 15주년이었기에 이날 행사는 더욱 뜻 깊었다.
숙소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한 후 답사단은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오인환 감독과 조덕호 사무국장은 육상세계선수권이 열리는 오사카로 향했고 필자와 이봉주, 이은정 선수만 따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은정이 ‘오빠들끼리 나란히 가도록’ 배려를 해줘 모처럼 이봉주와 편안하게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베이징올림픽 후 은퇴하면 더 뛰고 싶어도 뛸 수 없잖아. 선수시절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아. 남은 1년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운동해야지.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지. 그게 내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성원해주는 국민들에게 답하는 유일한 길이잖아.”
오후 5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봉주는 다음 날 새벽운동을 해야 한다며 기흥 집 대신 곧장 강원도 횡계의 하계훈련캠프로 향했다.
베이징=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6623@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