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으로 당했다” 선임병 진술만 인정…의무대 강제입실·영창까지
지난 4월 25일 동성애 인권단체들은 인권위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친구사이
2014년 육군 37사단에서 병사로 근무하던 A 씨는 선임병과 성관계를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다. A 씨는 군형법 92조6 조항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령에 따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군형법 92조6은 폭행이나 협박 등이 없을지라도 항문성교가 있었다는 자체만으로 처벌하는 법이라서 논란이 있다. 이후 A 씨는 5개월간 연대 의무대에서 생활했다. A 씨 측에 따르면 5개월 동안 연대 의무실에 있으면서 외출, 외박은 물론 휴가도 제한됐으며 전화나 인터넷 이용에도 제약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환자를 ‘정식 입실’시킨 게 아닌 병사를 위장입실시킨 ‘가입실’로 사실상 강제구금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 씨는 자신이 동성애자라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A 씨는 입대 당시 인성검사에서 동성애적 성적 지향을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고 이에 간부들도 A 씨의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었다. A 씨 측은 “선임병은 몸집도 크고 힘이 있어서 의문이 제기됐지만 자신은 일방적으로 당했다고 주장했다”며 “동성애자라는 편견 때문에 선임병의 진술만 인정했다”고 전했다. A 씨는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접한 친구사이와 희망을만드는법은 지난 4월 25일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한가람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4가지를 문제 삼았다.
우선 추행죄를 차별적으로 적용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만일 A 씨가 강제적으로 추행했다면 강제추행죄를 적용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동성애 처벌법 추행죄를 꺼내들었다”며 “A 씨의 가족들은 상대방에게 합의금을 지급하고서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친구사이 관계자도 “군형법 92조6을 적용하면 동성애를 저지른 사람 모두를 처벌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A 씨만 가해자가 됐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는 수사과정에서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것이다. A 씨는 수사 과정에서 ‘남자랑 성교한 적이 있는가’ ‘게이클럽에 간 적이 있는가’ ‘성추행을 저지르지 않았느냐’ 등의 질문을 받아 수치심과 모멸감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앞서 말한 의무대 강제입실이다. 영장도 없이 장기간에 걸친 신체와 통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 한 변호사는 “같은 대대에서 벌어진 다른 병사의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고 들었다”며 “왜 어떤 사람은 전출이고 어떤 사람은 의무대 강제입실인지 그 이유를 묻고 싶다. 이는 동성애자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영창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A 씨는 이번 사건으로 12일 동안 영창까지 다녀왔다. 한 변호사는 “어찌된 일인지 입창자들은 모두 A 씨가 동성애자라는 사실과 왜 들어왔는지를 알고 있었다”며 “정체성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알려서 안 된다는 부대관리훈령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며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전했다.
37사단 인사처 관계자는 “해당 수사는 헌병대에서 했는데 그 방법이 잘못된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재조사 등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게 없다”고 전했다.
한편 이 사건이 알려지자 다른 동성애 단체도 항의에 나섰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회원인 정욜 씨는 “군대가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동성애를 바라보는 인식과 편견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라며 “2006년 군 동성애 관련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부대관리훈령이 제정됐지만 이조차 무용지물됐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전했다.
정 씨가 말한 2006년에 일어난 사건은 다음과 같다. 당시 동성애자였던 사병 김 아무개 씨(33)가 군대 내에서 상담을 요구했으나 군에서는 동성애자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요청했다. 김 씨는 키스장면이 담긴 사진을 제출했으나 해당 사진만으로는 동성애자를 입증할 수 없었고 결국 성행위사진까지 제출해야 했다. 또한 본인의 동의 없이 에이즈와 매독 검사까지 받았다. 당시 인권위는 육군참모총장에게 해당부대 연대장과 의무중대장 등 관계자 4명에 대해 주의조치를 주고 인권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합의’ 관계도 ‘추행’…논란의 군형법 92조6 A 씨 처벌의 근거가 된 군형법 92조6은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 조항으로 꼽힌다. 성소수자 단체들은 해당 법안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2년 헌법소원 청구를 받아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해당 법이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올해 2월 51개 인권단체들은 헌재에 군형법 92조6에 관한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의견서에서 “군형법 92조6은 강제성과 공연성이 없는 합의에 의한 성적 접촉을 처벌하는 조항”이라며 “군대 내 성폭력은 군형법 제15장으로 처벌할 수 있으며 형법과 성폭력특별법에 의해서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해당 법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지난 4월 20일에는 군동성애합법화반대국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군형법 92조6 합헌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날 “군대는 상명하복의 질서가 엄격한 특별 조직체계”라며 “해당 군형법을 폐지해 군대내 항문성교를 허용하게 된다면 동성애자를 상관으로 둔 군인들은 동성 성폭행을 당할 뿐 아니라 에이즈 감염에도 크게 노출된다”고 주장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