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고향서 ‘행복 야구’ 와인드업
▲ 서재응은 KIA를 과거 해태와 같은 강팀이 되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소망을 털어놓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이젠 ‘해외파’가 아닌 ‘복귀파’란 타이틀을 달고 KIA타이거즈의 재건을 위해 남은 열정을 쏟아 붓겠다는 서재응은 지난 12월 22일 출국하는 날 기자와 만나 한국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야구 인생에 대해 부담과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나이스 가이’란 별명답게 ‘인생=의리+정’으로 정리하는 서재응과 리얼토크를 나눴다.
서울의 중심부인 종로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소 밖 풍경이 예술이었다. 시내의 한 특급호텔 스위트룸을 숙소로 사용한 서재응은 출국 준비로 경황이 없을 것 같은데도 커피 한 잔 마시고 (인터뷰를) 시작하자며 여유를 보였다.
지난 9월 초 미국 출장 중에도 그의 숙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원정 경기 중에 사용하는 호텔이었는데 모자, 신발, 옷 등이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히 정리된 걸 보고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털털하고 낙천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정리정돈의 달인이라고 할 만큼 서재응은 한마디로 유난히 깔끔을 떠는 편이다. 서재응에게 KIA 입단을 마친 소감을 묻는 걸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선수 한 명이 들어왔다고 해서 팀 분위기나 성적이 확 달라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하시는 것 같아 감사하기도 하고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해요. 사실 KIA와 1년 계약이기 때문에 올시즌에 승부를 봐야 하잖아요. 다른 건 걱정이 안 되는데 올 한 해 기대만큼 잘해낼 수 있을지가 가장 걱정돼요.”
호탕한 성격에다 후배들을 잘 챙기는 스타일이라 구단에서도 서재응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올시즌 KIA 더그아웃이 시끌벅적하리란 예상도 쉽게 할 수 있는 부분. 이에 대해 서재응은 다른 입장을 밝혔다.
“제 성적도 좋고 후배들도 잘 이끌어 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러나 사람이 두 가지 다 잘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한국 프로야구에선 신인이나 마찬가진데 후배들 챙기면서 제 실력을 끌어올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그렇다고 혼자서만 운동할 생각은 없어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싶으면 후배들도 챙기고 그래야죠.”
서재응은 유난히 올시즌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다.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강도가 훨씬 높았다.
“미국에서 야구했다고 한국에서도 잘하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더욱이 이전에 미국에서 국내로 복귀했던 선수들의 성적이 저조했던 부분도 신경이 쓰여요. 모든 건 닥쳐봐야 알겠지만 닥치고 나서 후회하지 않게끔 동계훈련이나 스프링캠프 때 제대로 된 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서재응이 거의 성사 단계에 있었던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행을 뿌리치고 KIA로 마음을 돌린 ‘결정타’가 궁금했다. 발렌타인 감독이 적극적으로 서재응의 영입에 나섰고 몸값도 KIA에서 제시한 액수보다 훨씬 많았는데도 서재응은 KIA행을 선언했었다.
“제 속마음은 일본을 노크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어요. 발렌타인 감독도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냈었고 일본 야구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죠. 그런데 아내와 아버지의 반대가 결정타였어요. 일본 가서 잘하리란 보장이 없는데 다시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는 아버지의 설득도 한몫했었구요. 만약 제가 결혼하지 않은 솔로였다면 미국에 남거나 아니면 일본으로 진출했을 거예요.”
서재응은 한국으로의 복귀는 가족의 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부모도, 가정도 없었다면 미국에서 마이너리그만을 전전한다고 해도 크게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내 이주현 씨도 원래 미국 잔류를 바랐다가 남편이 마이너리그 생활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자 일본이든 한국이든 간에 일단은 미국을 떠나서 마음 편히 야구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며 남편의 결정에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서재응은 미국에서 보낸 10년간의 야구 생활에 대해 “다른 건 몰라도 인간적으로 성숙한 서재응이 될 수 있었다”고 정리를 해본다.
“2004년 시즌 개막 전에 감독, 투수 코치와 불화가 있었어요. 2003년에 9승을 올린 후 팀에서 다음 시즌은 4선발이라고 못을 박아줬거든요. 그걸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시범경기에서 부진했다고 개막 전에 마이너리그행을 통보 받으니까 큰 충격이었죠. 그때 코치 말도 잘 안 들었고 감독에게 대놓고 항의도 하고 그랬어요. 만약 지금 같았다면 그런 행동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때는 제 자신을 너무 믿었고 욱 하는 성격에 약간 건방을 떨기도 했었죠. 그 후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사람이 고개를 숙일 줄도,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절감하며 힘들게 보냈습니다.”
서재응이 KIA로 복귀하면서 받는 몸값은 15억 원(계약금 8억 원, 연봉 5억 원, 옵션 2억 원)이다. 한때 50억 원설까지 나돌던 몸값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금액이란 걸 알 수 있다. 대놓고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왜 베팅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이 튕길 때와 튕기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고 봐요. 일본에서 만족스런 액수가 나왔지만 그걸 기준으로 KIA와 베팅하긴 싫었어요. 사람이라면 만 원이라도 더 받고 싶은 욕심이 있잖아요. 그러나 전 KIA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왕 갈 거라면 기분 좋게 가자, 돈 얼마 때문에 간다, 못 간다 하기 싫었던 거죠. 후회요? (웃으면서) 지금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LA다저스 스프링캠프 초청선수로 참가하는 박찬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서재응은 자신의 선택과 박찬호의 선택을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밝혔다.
“만약 저도 찬호 형처럼 돈이 많았다면 당연히 미국에 남아서 명예롭게 은퇴하는 걸 선택했을 거예요. 솔직히 전 모아 놓은 돈이 많지 않아요.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생활했지만 두 자릿 수 연봉 받은 게 2007년이 처음이었어요. 제 욕심만 내세울 상황이 아니잖아요. 부모님과 가정을 챙기려면 현실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전 명예보단 현실을 택해야 했어요.”
서재응은 미국에서 생활한 10년 동안 최고의 순간을 2003년도로, 최악의 순간을 2006년으로 꼽았다. 2003년에는 시즌 9승을 올려서, 2006년은 야구 시작한 이후 그때처럼 몸이 안 만들어진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감동도 잠시 잠깐, 국제대회에 참가하려고 몸을 너무 일찍 끌어 올린 바람에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스프링캠프에선 더더욱 자신의 몸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토로했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넘나드는 생활, 한 시즌이 끝나면 트레이드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제대로 대우 받기 힘들다는 강박관념 등등으로 서재응은 미국에 있는 동안 단 한 시즌도 마음 편히 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젠 뒤를 돌아보기보단 앞만 바라보고 가야 하는 상황. 아무리 미련과 회한이 남아 있다고 해도 1997년부터 2007년까지의 세월은 서재응의 가슴에 묻어 둬야 한다. 화제를 바꿔 서재응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KIA 이전 해태의 이미지가 어떤 그림들로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이전 해태는 강팀이란 이미지가 있었어요. 지고 있어도 언제든지 역전이 가능한 팀이었죠. 어렸을 때 본 해태는 상대 투수가 방심하고 있을 때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일시에 무너트리는 힘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KIA에선 그런 힘을 느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KIA를 보면 제가 있었던 탬파베이를 보는 것 같아요. 젊은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가? 패기가 있을 때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는데 한풀 꺾이게 되면 하염없이 추락을 하거든요. 탬파가 꼭 그랬어요.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다보면 달라질 거란 믿음이 있어요. 우선 올시즌에는 작년의 KIA가 아니라는 인식만이라도 심어줬으면 좋겠어요. ‘어 옛날 KIA가 아니네’ ‘어 어 작년의 KIA가 아니네’ 하다가 ‘어, 조심해 역시 KIA야, 해태의 저력이 살아있는 강팀이 됐어’ 하는 변화를 소원하고 있답니다.”
올시즌 목표로 하는 승수에 대해서도 서재응은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쉽게 두 자리 승수를 목표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경험상’ 그 숙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은 미국에서 왔으니까 10승 이상은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러나 10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도달하기 힘든 숫자입니다. 제가 아무리 컨트롤이 좋다고 해도 한국에서 그 컨트롤을 보장받을 순 없는 거잖아요. 2006년에 와르르 무너졌듯이 2008년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는 법이죠. 저도 중요하지만 다른 선수들도 뒷받침을 잘 해줘야 해요. 저 혼자 잘한다고 팀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서재응은 해마다 1월 1일이면 광주 무등산에 올라 새해 소망을 빌었다. 올해는 미국 뉴욕에서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고 아쉬움을 표한 그는 새해 소망으로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보내는 것, 가족들 건강, 그리고 KIA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꼽았다. 그러면서 후배들에게 남다른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전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운동할 때는 집중해서 하는 스타일이에요. 후배들도 저랑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에게 창피스런 야구를 하면 안 되잖아요. KIA가 이전 해태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신바람 나게 야구를 하고 자신도 야구를 통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길 바라요. 야구하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게 바로 제 소원이거든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