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새끼들 팍팍 밀어주지 못해 가슴 먹먹
▲ 선수들과 연봉 협상 과정서 벌써 많은 에너지를 쏟은 박노준 단장. 그러나 팀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책임을 다할 것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프로야구 시즌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마무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목동야구장 우리 히어로즈 구단 사무실에서 박노준 단장을 만났다. 박 단장의 멘트를 가급적 가감없이 전하기 위해 질문과 응답식으로 인터뷰를 정리해 본다.
―야구선수로, 해설위원으로 생활하는 동안 이렇게 욕을 많이 먹진 않았을 것이다. 선수시절부터 봐 온 기자 입장에선 왜 이렇게 욕먹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일을 진행시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언론에서 날 적대시했다. 8년 동안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깔끔하게 생활했다. 부탁할 것도 부탁받을 일도 없었고 기자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제8구단 창단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연일 두들겨 맞았다. 사실이든 아니든 확인도 안 하고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었다. 날 모르는 사람들도 아닌데 왜 그렇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접근해 기사화하는지 모르겠다. 그 부분이 많이 섭섭했다.
―지난 2월에 선수협에서 연봉감액제한제 폐지론을 주도했다고 박 단장의 사퇴를 요구했다가 선수협 측에서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었다.
▲정말 황당한 일이다. 7개 구단 단장들이 모여서 이미 감액제한 폐지에 대해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난 초청 형식으로 그 모임에 나갔다가 완전히 이상한 꼴에 휘말렸고 주동자로 내몰렸다. 한심한 건 그런 내용으로 기사를 쓰기 전에 왜 나한테 확인 전화 한 통 하지 않느냐는 사실이다. 결국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긴 했지만 정말 여러 가지 면에서 실망스런 면들이 많았다.
―얼마 전 정민태가 결국 KIA로 옮겨 갔다. 박 단장에게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고도 말했다.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당시 난 정민태와 관련한 질문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 대답했다. 내가 아끼는 후배였기 때문에 감정 섞인 말을 뱉어내 상처주기 싫었다. 그런데 정민태는 기자들에게 많은 얘기를 꺼내 놨다. 심지어 ‘아들을 야구시키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하면서…. 선수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선수들 전원 승계 부분을 놓고 선참 선수들과 많은 대화를 가졌다. 선참들이 그 원칙을 고수한다면 연봉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는 얘기도 전했다. 정민태 이숭용 김동수 전준호 등이 모두 오케이를 했다. 그래서 선수들 요구를 수용했고 연봉 협상을 벌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들 연봉을 너무 깎는다고 반발했다. 연봉에 대해 견해 차이가 커서 그들을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시키려는 방법도 알아봤다. 그런데 정민태 외엔 관심을 두는 선수가 없었다. 만약 우리가 연봉 협상을 포기하면 그 선수들은 앞으로 운동할 수 없게 된다.
―아무리 그래도 선수들 입장에선 20~30%도 아니고 60% 이상 삭감당하며 야구를 해야 한다는 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선수들 마음도 헤아려 줘야 하지 않나.
▲지금 내 입장에선 선참 선수들 상황만 봐줄 수 없다. 그들 말고도 신경 써야 할 선수가 수두룩하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던 선수 입장에선 60% 이상 삭감됐을 경우, 분명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수 개인의 입장만 주장하지 말고 구단 전체를 봐줘야 한다. 내가 만약 재정이 많고 지원금이 두둑한 팀의 단장을 맡고 있다면 1000만 원, 2000만 원 깎으려고 선수들과 얼굴 붉히며 입씨름 벌이지 않을 것이다. 팍팍 밀어주고 사기도 북돋고 존경 받으면서 어깨에 힘주고 살고 싶다. 많지 않은 살림살이로 팀을 꾸려나가려다 보니 연봉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고 선수들을 아프게 해야 했다. 나 또한 그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하고 미안하다.
―박 단장도 선수 출신이고 말년에 힘든 시기도 보낸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 먹은 선수들이 갖는 남다른 피해 의식은 공감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선수들은 그런 점에서 서운해 할 수밖에 없다.
▲난 모든 의사 결정에 일방적인 통보는 없었다. 연봉 협상을 벌이며 선참 선수 4명과 밖에서 따로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 야구 선배로서, 또 단장으로서 이해도 구하고 부탁도 했다. 장기적으로 볼 땐 팀의 코치, 감독을 할 사람들이니까 당장 돈 깎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100% 고용 승계는 요구했지만 자신들의 희생은 준비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까웠다.
▲ 쌍방울의 스타였던 왕년의 박노준 단장. | ||
▲2000만 원이 큰돈이 아니지만 경영하는 입장에선 선수 요구대로 2000만 원을 올려 1억 원에 계약하는 게 쉽지 않다. 만약 김동수 외에 모든 선수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계약을 미룬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초래되겠나. 선수는 자존심 문제라고 하지만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도’ 야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열심히 해서 구단이 제시한 옵션 2000만 원을 채우면 1억 원을 받아갈 수 있다. 김동수 혼자만이라면 2000만 원은 절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난 다른 60명 넘는 선수를 살펴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았나. 이렇게까지 욕먹지 않아도 야구계에서 보장받던 위치였다.
▲만약 제8구단이 창단되지 않았다면 7구단이 아닌 6구단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역사적인 사건’만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버리고 야구단 창단에 ‘올인’했다. 사실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발을 뺄 생각도 했다. 실제로 그룹 오너에게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가 심하게 야단맞았다. 내가 (창단을) 자신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투자를 한 건데 어떻게 여기서 발을 뺄 수 있느냐며 만류했다. 설령 욕을 먹더라도 여기서 그만둘 순 없다. 책임감 있게 구단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까 ‘도대체 선수들의 연봉을 깎는 박노준 단장의 연봉은 얼마인가?’라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연봉이 어떻게 되나.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엄청 높은 연봉을 받았다. 그리고 호서대에 강의도 나갔고 개인적인 사업도 꾸려왔다. 그렇게 해서 받은 수입의 3분의 1도 안 되는 연봉을 받고 있다면 믿겠나. 그런데 사실이다.
―제8구단 창단을 선언하면서 3년 내 흑자 경영을 내겠다고 공표했다. 지금도 자신있는 부분인가.
▲수치상으론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어렵고 간과한 점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목동야구장을 위탁 관리할 수만 있었다면 가능했다. 구장 내 매점, 상점, 식당 등등에다 보드판 광고 수익과 시설물 임대 등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관 형식이다. 하루하루 야구장을 빌려 쓴다. 그런 부분에서 착오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흑자 경영을 못할 것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분명 자신있고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코칭스태프 구성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현대 유니콘스 스태프들을 버리고 박 단장과 이런저런 인연들로 얽혀 있는 지도자들과 계약을 맺었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현대 코칭스태프 14명 중 9명과 계약을 맺었다. 김시진 감독한테는 2년 후에 감독 보장할 테니 지금은 수석코치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 우리 팀 이순철 수석코치나 강병철 2군 감독은 모두 프로팀에서 감독했던 분들이다. 그들은 자존심이 없어서 그 보직을 맡았겠나. 현장에서 야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든 걸 감수하고 팀에 들어오신 것이다. 다른 팀 지도자들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제시받고도 그 자리에서 오케이 하셨다. 학연, 지연 이런 것 없다. 서로 도움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맺어질 수 있었다. 올 가을 이후 팀이 안정을 찾으면 그분들 연봉부터 올려줘야 한다. 아니 이번에 많이 삭감된 선수들의 연봉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아직까지 선수단 분위기가 우중충한 것 같다. 어수선하기도 하고. 개막이 내일(3월 29일)인데 미계약자들도 있다.
▲시간이 약이다.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지만 강하게 자신을 조련시켜야 한다. 프로는 냉정한 세계다. 열심히 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은 선수들 표정에 웃음이 없을지 몰라도 가을 정도 되면 잃어버린 웃음을 찾게 해 줄 자신 있다.
박노준 단장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만약 지금 단장할래, 해설위원할래 하면 뭘 택하겠어요?” 박 단장은 단박에 “해설하고 싶어요. 학교 다니고 강의도 하고 골프도 치면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라고 대답한다.
사람답지 못하게 살 만큼 온갖 풍파 헤쳐 나오며 비난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박 단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무 것도 책임질 수 없는 ‘비난의 칼’ 대신 지금은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황금사자기대회가 한창인 목동야구장을 빠져 나왔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