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위트컴 장군(왼쪽)과 국제사파리클럽 대한민국본부 송기호 총재.
[서울=일요신문]박창식 기자= 국제사파리클럽 대한민국본부(총재 송기호)는 오는 6월 25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한국전쟁 때 피폐해진 부산 재건에 힘쓴 리차드 위트컴 장군(Richard Seabury Whitcomb, 1894-1982)의 제1회 추모연주회를 개최한다.
송기호 총재는 “리차트 위트컴 장군의 박애정신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기르기 위해 마련했다”며 “앞으로 매년 위트컴 장군의 추모연주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차트 위트컴 장군은 유엔기념고원에 안장된 미군 유해 32기 중 유일한 장군이다. 미국 캔자스에서 태어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한국 여성 한묘숙 씨과 결혼했으며 지난 1982년 7월 12일 부산의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위트컴 장군은 부산 미군수기지사령관을 지낼 동안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에게 투철한 사명감과 사랑의 마음으로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고 병원 건립과 교육, 구호 활동 등 부산의 재건사업에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가 부산지역군수사령관이던 1953년 11월 27일 ‘부산역전대화재’로 영주동, 중앙동 일대와 부산역 구청사를 태우고 29명의 사상자와 6000여 세대 3만 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이 때 군법을 어기고 군수창고를 개방해 그들에게 천막과 구호물자를 내어 이재민을 도왔다. 이로 인해 그는 미 의회 청문에 불려가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전쟁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발언해 의원들의 공감을 얻어낸 그는 구호금을 받아내 다시 부산으로 귀대한 일화가 있다. 또한 그는 메리놀병원 신축이 공사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자 예하 미군 장병에게 월급의 1%를 공사비를 기부하게 하고 그 자신도 한복 차림에 갓을 쓰고 부산 시내를 활보하며 기금을 모으기도 했다.
이외에도 한국정부를 설득해 장전동 부지 50만 평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데 도움을 줬으며 대학건설비용 25만 달러와 건축자재를 지원하고 공병부대로 하여금 진입로와 부지공사 등 부산대학교 건립과정에도 기여했다.
한편, 장군의 부인인 한묘숙 재단법인 위트컴 희망의 집 이사장은 `장진호 전투 때 죽어간 미군 유해를 꼭 고향으로 보내 달라`는 장군의 유언에 따라 1990년부터 25차례 북한을 방문한 바 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 13일 영하 40도가 넘는 혹한 속에 미군 해병대 1사단 1만여 명과 중공군 7개 사단 12만여 명이 18일간 벌인 치열한 전투로 함경남도 개마고원 일대 장진호에서 미 해병대 절반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남하는 2주간 지연됐고 피란민 등 20만여 명이 흥남철수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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