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배기량, 유럽은 크기, 미국은 소비패턴 따라 자동차 분류
‘준중형’에 속하는 아반떼는 유럽에서는 중형차들이 속하는 C세그먼트에 속한다.
#한국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배기량에 따라 경차, 소형, 준중형, 중형, 준대형, 대형으로 구분한다. 경차 배기량은 법적으로 1000cc 미만이다. 1000~1600cc는 소형, 1600~2000cc는 준중형, 2000~3000cc는 중형, 3000cc 이상은 대형으로 분류된다.
이 분류는 시장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경차만 법적으로 1000cc 미만으로 분류된다. 가장 많이 팔리는 현대차를 기준으로 하면 소형은 액센트, 준중형은 아반떼, 중형은 쏘나타, 준대형은 그랜저, 대형은 에쿠스(현재는 EQ900)를 떠올리면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국내에서 오랫동안 자동차세를 배기량 기준으로 매겨 왔기 때문이며 2000년 전까지는 별 문제 없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에는 전통적인 구분법이 딱 들어맞진 않게 됐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랜저가 현대차에서 가장 크고 비싼 차(세단 기준)였다. 그러나 1998년 에쿠스가 나오면서 ‘초대형’이라는 새로운 콘셉트가 생겼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랜저(당시 XG)는 ‘대형차’의 지위를 유지했다.
2008년 제네시스가 나오면서 또 한 번 분류법에 변화가 생겼다. 그랜저는 ‘준대형’, 제네시스는 ‘대형’, 에쿠스는 ‘초대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입차에서는 소형차에 고배기량 엔진을 얹기도 해서 배기량으로 차를 구분하기가 적당치 않다. 그러나 국내 브랜드는 배기량과 사이즈가 어느 정도 비례한다.
배기량 기준은 특히 세금을 매길 때 불합리한 면이 생긴다. 수입차의 경우 동일한 배기량의 국산차보다 3배나 비싼데도 보유세가 동일해질 수 있다. 2000cc 가솔린 엔진의 쏘나타와 2000cc 디젤엔진의 520d(BMW)가 동일한 자동차세(보유세)를 내는 것이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과세 기준을 배기량에서 가격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한 바 있지만 세수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우려돼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차가 아무리 오래 돼도 배기량은 변하지 않지만, 차량가액은 급속하게 하락한다. 신차 가격이 과세 기준으로 계속 적용된다면 최신의 동일 모델 중고차를 가진 사람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매년 차량가액을 새로 산정해야 공정한데, 그러다 보면 세수가 확 줄어든다. 또 다운사이징이 대세인 시대에 친환경차 구매를 유도할 요인이 사라지는 것도 문제다.
#유럽
유럽식은 크기로 구분한다. 배기량이 크든 작든, 가격이 비싸든 싸든 상관없다. 유럽 방식 구분은 A·B·C·D·E·F·S·M·J 세그먼트로 나뉜다. 3.5m 이하는 A세그먼트, 3.5~3.85m는 B세그먼트, 3.85~4.3m는 C세그먼트, 4.3~4.7m는 D세그먼트, 4.7~5m는 E세그먼트, 5m 이상은 F세그먼트에 해당된다.
A세그먼트(mini cars)는 한국으로 치면 경차와 그보다 작은 차들이다. B세그먼트(small cars)는 소형차, C세그먼트(medium cars)는 준중형, D세그먼트(large car)는 중형, E세그먼트(executive cars)는 준대형, F세그먼트(luxury cars)는 대형(초대형)이다. 한국식 분류와 비슷한 셈이다.
세단 외에는 S세그먼트(sports coupes), M세그먼트(multi purpose cars), J세그먼트(sport utility cars)가 있다. S세그먼트에는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같은 고가 스포츠카가 해당되며, M세그먼트에는 한국에서 RV(recreation vehicle)라 부르는 차들이 속한다. J세그먼트는 흔히 말하는 SUV다. 대개 수입차를 얘기할 때 ‘세그먼트’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한국에 수입되는 차들이 대부분 유럽산이기 때문이다.
유럽 기준을 보면 한국 차들은 다소 뻥튀기된 느낌이다. 일례로 아반떼는 유럽에서는 중형차, 쏘나타는 대형차에 속한다. 아반떼도 4인 가족이 탑승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크고, 쏘나타는 그랜저와 차체 사이즈에서 큰 차이가 없다. 한국인들이 큰 차를 좋아해 크기가 점점 커지다 보니 어느새 아반떼가 중형차 수준이 된 것이다.
쏘나타는 유럽에서는 대형차로 분류되는 D세그먼트지만, 미국에서는 중형차(미드사이즈)로 분류된다.
#미국
미국식 분류법은 최근 자동차 트렌드에 가장 맞아 떨어진다. 마이크로, 서브콤팩트, 콤팩트, 미드사이즈, 엔트리레벨 럭셔리, 풀사이즈, 미드사이즈 럭셔리, 풀사이즈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슈퍼카, 컨버터블, 로드스터, MPV(multi purpose vehicle), 미니밴, 카고밴, 패신저밴, SUV, 트럭 등으로 나뉜다. SUV 또한 미니, 콤팩트, 미드사이즈, 풀사이즈 등으로 구분된다. 한국식 기준과 비교하면, 경차·소형차는 서브콤팩트 카, 준중형은 콤팩트 카, 중형은 미드사이즈 카, 준대형은 풀사이즈 카, 대형은 풀사이즈 럭셔리 카로 분류된다.
유럽은 실속 위주의 작은 차를 좋아하는 반면, 미국은 덩치 큰 차를 좋아한다. 유럽에서 ‘중형차’ 지위를 얻은 아반떼는 미국에서 ‘콤팩트 카’ 신세가 된다. 유럽에서 대형차인 쏘나타는 미국에서 중형차로 한 단계 낮아진다.
사이즈가 아반떼·쏘나타와 같지만 가격대로는 프리미엄급인 3시리즈(BMW), C클래스(메르세데스-벤츠), A4(아우디)는 미국에서 ‘엔트리 레벨 럭셔리 카’라는 별도 카테고리에 속한다. 5시리즈, E클래스, A6는 ‘미드 사이즈 럭셔리 카’다. 실제 소비되는 패턴을 반영한 분류법 덕에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카테고리의 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럽에서라면 쏘나타와 3시리즈가 동일한 D세그먼트에 들어가 있으므로 구분이 쉽지 않다.
유럽에서 S세그먼트(스포츠 쿠페)로 뭉뚱그려 분류되던 차들은 미국에서 ‘그랜드 투어러’, ‘슈퍼카’, ‘컨버터블’, ‘로드스터’ 등으로 세분화된다. 이 역시 시장 흐름을 반영한 결과다. 인터넷으로 렌터카를 빌리는데 비싼 차와 저렴한 차가 동일한 메뉴에 속하면 원하는 차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세그먼트를 비교하면, 유럽은 창고형 할인마트 같은 느낌이다. 비싸든 싸든 상관없이 크기만 맞으면 한꺼번에 동일 세그먼트로 분류해 버린다. 슈퍼카, 컨버터블, 로드스터 등도 무심하게 ‘스포츠 쿠페(S세그먼트)’일 뿐이다.
반면 미국은 백화점 같다. 상품구색별로 자잘하게 잘 구분해 놓았다. 한국은 어떨까? 5시리즈, E클래스 같은 럭셔리카가 없기 때문에 한국은 배기량에 따른 분류법만으로 충분해 보인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
유럽·미국·한국 세그먼트 비교(세단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