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이 사랑한 박찬욱과 기립박수 받은 나홍진 현장스케치
매년 그랬듯 올해 역시 칸 국제영화제의 관심은 영화를 기획하고 만든 감독에 집중됐다. 철저히 감독 중심의 영화제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키는 대목이다. 한국영화 가운데 단연 화제는 <아가씨>와 연출자 박찬욱 감독이다. <올드보이>와 <박쥐>로 연거푸 칸에서 상을 받은 감독의 신작이란 사실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를 증명하듯 <아가씨>는 칸 필름마켓 통해 총 170여 개국에서 수출됐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167개국)를 넘어서는, 한국영화 역대 최고치다. 영화제 공식 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는 박찬욱 감독을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이라고 썼다. 칸에서 체감한 박찬욱 감독을 향한 관심의 온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같은 해외 수출 성과와 무관하게 <아가씨>는 현지에서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특히 공식 상영 때는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영화의 결론 부분에 등장하는 신체훼손 장면 등을 견디지 못한 관객의 외침이다.
실제로 <아가씨>는 스크린데일리로부터 4점 만점에 2.2점을 받았다. 해당 소식지는 경쟁부문 상영작에 대해 세계 각국의 13개 매체가 매긴 점수를 합산해 평균을 산출한 점수를 평점으로 낸다. <아가씨>의 평점은 평이한 수준. 앞서 칸 국제영화제에서 두 차례 수상한 이창동 감독은 2007년 <밀양>으로 2.8점, 2010년 <시>로 2.7점씩을 기록했다. 두 작품은 각각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
칸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곡성’ 주역들. 왼쪽부터 쿠니무라 준, 나홍진 감독, 천우희, 곽도원. 사진제공=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나홍진은 한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평가
그런가 하면 <곡성>을 향한 칸의 관심도 간과하기 어렵다. 그 중심에는 나홍진 감독이 있다. 앞서 연출 데뷔작 <추격자>와 <황해>로 두 차례 칸 국제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은 나 감독은 세 번째 연출영화인 <곡성>으로 다시 칸의 선택을 받았다. 지금까지 연출한 세 편의 영화가 모두 칸에 진출한, 유일한 감독으로도 기록됐다.
칸 현지에서 공개된 <곡성>은 뜨거운 기립박수의 주인공이 됐다. 2시간 36분간의 영화 상영이 끝난 직후에도 관객은 감독의 이름이 스크린을 채울 때 가장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뤘다. 시체스 판타스틱국제영화제 앙헬살라 집행위원장은 “악마의 세계에 다녀온 듯한 생생한 기분”이라고 밝혔고, 칸 국제영화제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박찬욱, 김기덕 감독처럼”이라는 표현으로 나홍진 감독을 소개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나홍진 감독을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교하는 리뷰까지 실었다. 후배의 성공적인 상영을 축하하기 위해 박찬욱 감독은 최고급 샴페인을 <곡성> 축하 파티에 전하기도 했다.
칸에서 만난 나홍진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듯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나홍진 감독에게 ‘영화를 자주 만들라’는 주문과 더불어 ‘다음 영화는 경쟁부문에서 만나자’는 기대 섞인 말도 건넸다.
나홍진 감독에게 칸 국제영화제는 ‘자극제’가 되는 듯 보였다. “이처럼 연속해서 영화제를 경험하는 건 큰 학습”이라고 밝힌 그는 “경험이 많은 감독일수록 관객과 교감하는 데 이점도 쌓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곡성>은 국내에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 속도. 칸에서 그 소식을 접한 감독은 “내 영화가 항상 잘될 거라 믿지만 이번에는 내 기대를 한참 넘어섰다”고 고백했다.
<곡성> 출연 배우로 칸에 동행한 장소연은 공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 현지 모습이 매스컴을 통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이런 장소연의 모습이 칸 영화제 공식 영상에 짧게 잡혔다. <곡성>이 공식 상영되던 날 연인이자 주연 배우인 곽도원 뒤에 앉아 있던 장소연이 곽도원과 포옹하는 모습이 영상에 담긴 것. 그만큼 장소연은 칸 영 화제 내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곽도원을 그림자 내조했다.
# 곽도원 “사명감 생겼다”
곽도원은 칸 국제영화제가 처음이다. 어느 작품보다 치열하게 촬영한 <곡성>을 통해 칸의 선택을 받았다. 그는 “연기를 하는 동안 꿈에서도 상상한 적 없다”는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뒤 “한국영화를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는 기분”이라고 돌이켰다.
물론 감격했지만 자신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은 칸에 와서 더 커졌다는 고백도 꺼냈다. “<곡성>을 볼 때마다 부족한 면이 보인다. <곡성>은 지금 내 위치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영화 같다. 내 연기, 내 수준을 뒤돌아보게도 한다. 이곳, 칸에 오니 더 그렇다.”
사실 곽도원에게 이번 칸 국제영화제가 각별한 이유는 더 있다.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자 <곡성>에 함께 출연한 배우 장소연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부부로 출연했고 이제 연인이 됐다.
장소연은 영화 촬영을 마치고 지난해 7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고백하며 공개 구혼을 했다. 당시 장소연이 지목한 상대가 바로 곽도원이다. 이후 둘은 실제 연인이 됐고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도 동행했다. 하지만 장소연은 레드카펫이나 기자회견, 인터뷰 등 공식행사에는 나서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한 영화 관계자는 “(장소연이) 조연인 만큼 주연배우가 돋보이는 데 방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귀띔했다.
곽도원은 그림자 내조를 하는 장소연을 살뜰히 챙겼다. 영화의 공식 상영이 끝나고 극장의 모든 관객이 일어나 박수를 보낼 때 그는 뒤를 돌아 바로 뒷좌석에 앉아있던 장소연과 뜨겁게 포옹했다. 이 모습은 상영관을 비추던 카메라에 그대로 담겼다.
칸(프랑스) =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